김장하는 날

뻐꾸기, 소쩍새, 벼락, 소나기, 고향 들판이 통째로 왔다

by 진주

지난주 금요일 아들이 김장 속 넣을 야채를 구입하는데 도와주겠다고 학교를 마치고 왔다. 언니랑 같이 아들 차 타고 일명 유명한 깡 시장을 찾았다. 아들, 딸보다 서너 살 정도 위인데 결혼하자마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깡 시장에 야채 장사를 시작한 지 벌써 십여 년이 지나고 있다. 금방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너무나 잘하고 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건 참 현실적인 부부이고 요즘 시대에 예쁘게 살고 있는 집사님 부부이다 거리가 있어서 자주 애용하지 못하지만 김장 때만큼은 좋은 물건을 구비해 놓은 집사님 가게로 야채 사러 간다.

동글동글하니 귀엽고 예쁘게 생긴 아내 집사님이 함박웃음을 띠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창 멋을 부리고 싶은 나이인데 머리는 뒤로 질끈 묶고 청바지에 헐렁한 티를 입고 주머니가 큰 앞치마 차림으로 장사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손님이 골라 놓은 무 다발이나 다른 야채도 거뜬하게 들어서 비닐봉지에 담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집사님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절임배추 3박스에 사용할 무 두 단, 파 두 단, 대파 한 단, 갓 두 단, 미나리 석단을 구매했다. 시금치랑 두부도 후하게 덤으로 넣어주었다. 아들과 딸이 형님, 오빠로 부르는 야채 사장님은 새벽 4시에 가락시장에서 물건을 가져와 가게에 풀어놓고 한숨 자야 하는데 요즘 김장철이라 쉬지도 못하고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젊은 부부가 서로 에제르가 되어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언니랑 함께 야채를 다듬어서 씻고 칼질해서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두었다. 센스쟁이 언니가 큰 비닐봉지를 챙기길래 어디다 사용하려고? 했는데 야채 썰어서 저녁 동안 담아둘 봉투였던 것이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미리 하지 못할까? 아들은 채칼을 이용해서 무 채를 썰어놓은 뒤 정리를 말끔하게 하고 토요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 김장 돕는다고 시집간 딸도 친정으로 퇴근했다.

젊은 시절 양조장에서 술밥과 누룩을 함께 버무리고 막걸리 만들었던 경력이 있는지라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 속 버무는 일은 아들과 함께 남편이 맡아서 해주었다.

먼저 무채를 고춧가루로 색깔을 입힌 다음 차례대로 각가지 야채와 양념을 넣어서 김치 담을 속을 만들었다.

배추도 간을 보려고 노란 속잎을 뜯어서 먹어보니 알맞게 절여져서 씹히는 식감도 꼬실꼬실하니 달고 맛있다. 며느리는 결혼 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났는데 자연으로 임신을 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칠 주째 접어들고 있어서 오지 못하게 했다. 사위도 바쁘다고 오지 못했고 결혼하기 전에는 김장해도 거들 떠 보지 않던 자녀들이 이제 결혼해서 자기 집 가져갈 거라고 군소리도 하지 않고 잘 도와주었다.


점심에는 푸짐하게 돼지고기 수육과 생굴, 생태 탕 끓여서 먹고 자기들이 가져갈 것 챙기기 시작했다.

형부께서 올해 처음으로 농사 지었다고 갓 찧은 햅쌀이니 김치에 하얀 쌀밥과 함께 먹어보라고 쌀 한 포대를 주셔서 아들과 딸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고향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는 오빠가 김장 마치고 나니 사과 택배가 와 있었다. 무르익어가는 늦가을에 부사는 수확을 시작한다. 올해는 비가 자주 오지 않아서 열매가 크지 않아 작년보다 수확량이 조금 줄어들었다고 한다.


겨울부터 열매를 준비하며 사과나무 정전하고 봄이 되면 꽃이 피어도 자연적으로 벌이 날아와 수정을 해야 하는데 양봉하시는 분들이 벌통을 가져다 놓아야 수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과 속아주는 일이 시작되고 가물 때는 스프링 쿨러로 물도 뿌려주어야 한다. 모든 먹거리가 마찬가지겠지만 한 알의 사과를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앉아서 택배 상자만 가위로 뜯어내면 먹을 수 있다.

바쁜 철에 도와주지도 못하고 매년 받아먹기만 해서 미안하다.

또 아는 집사님께서도 충청도에서 배를 가꾸셨다고 한 상자 보내주셨고, 고향 사는 국민학교 친구가 단감과 장두 감을 보내주었다. 순천 사시는 형님께서는 된장, 고추장, 갈치젓까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김장 담그는 토요일에 다들 보내주셨다.

남편이 너무나 고추장을 좋아해서 끼니때마다 고추장 단지를 보물처럼 끼고 밥을 먹는다고 흉을 보았더니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이다

형제, 고향 친구, 교회 지체로 맺어진 사이다. 그런데 뻐꾸기 소리, 소쩍새 소리, 태풍, 소나기, 자연과 함께 고향 들판을 통째로 보내주었다. 진액을 다 빼고 농사지은 사랑으로 보내준 손길로 마음이 뭉클하다 못해 고마운 마음이 오히려 아픔으로 다가온다.

김장김치, 동치미 담아서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택배 상자까지 현관에 줄줄이 있으니 재벌이 부럽지 않다.

옆에 있는 사람 오늘 한끼 사 주는 사람이 제일 부자라고 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인심이 넉넉한 부자들이 많다.


나도 김장김치 한 포기라도 아는 지인들과 나누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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