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 장독대는 그대로 있답니다
얼마 전 집 앞 맞은편 화단에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제법 쓸만한 항아리가 예닐곱 개 나와 있었다.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서 혼자 살기 힘드시자 아들 집으로 가시면서 젊은 시절부터 보물처럼 간직하셨던 항아리를 내놓고 가신 것이다.
화단 한쪽에 놓여있는 항아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논 두럭에 심었던 콩으로 메주 쑤고 띄워서 시렁에 매달아 놓았던 메주로 이듬해 장을 담갔을 것이다.
갈색 빛으로 익어갈 때 장 가르기를 하고 된장은 항아리에 담아 꼭꼭 눌러 담고, 시간만 나면 행주로 닦아 반지르르하게 윤기 나는 장독대를 바라보며 뿌듯했으리라
그런데 몇십 년을 함께 살았던 항아리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신 할머니 마음이 어땠을까?
교회 목사님 아버지께서 임자도에서 염전을 하셨다. 연세가 많아지시니 더 이상 힘이 부쳐서 그동안 쌓아두었던 천일염을 싼값에 파신다고 했다. 그때 사두었던 소금이 몇 년 동안 포대에 그대로 있었다. 제법 큰 항아리 두 개를 가져와서 포대에 쌓아 두었던 소금을 가득 채워 넣었다.
나는 어디를 가나 옹기종기 키순서대로 나란히 서있는 장독대만 보아도 마음이 푸근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뒤 곁에 자리 잡고 있던 장독대에 사계절이 만들어낸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리라 ~~
이맘때쯤이면 세 그루 서있던 감나무 잎도 다 떨구고 간들간들한 높은 가지에 빨갛다 못해 검붉게 익어버린 감이 앙상한 가지에 달려있었다.
서너 번 서리가 내리고 나면 뒤 곁에 익은 감은 껍질에서도 하얀 분이 서려있었다.
홍시가 된 감도 과육이 하얗게 서리처럼 빛이 났다. 해년마다 축 늘어진 가지에 달려있는 감은 쉽게 따서 망태에 넣었다.
그러나 제법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감은 긴 간짓대에 매미채처럼 둥글게 망을 만들어서 나까 채 서 땄다.
다른 방법으로는 간짓대 끝에 낫을 매달아서 가지를 베어내기도 했다.
우수수 떨어진 감으로 저녁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곶감을 깎았다.
나근나근한 싸릿대 열 개씩 주판알처럼 끼워 옆에는 새끼줄로 엮어 처마 밑에 걸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축 늘어지며 빨갛던 감이 하얗게 분칠하고 말라갈 때 빼서 먹으면 달달함은 설탕의 맛과 비교할 수 없었다.
곶감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쪽쪽 빼서 먹어치웠다. 할머니께서 수사반장이 되어서 어느 손이 곶감 빼서 먹었느냐 형제들을 다그쳤지만 아무도 범인은 없었다.
그중 끝까지 살아남은 곶감은 동글납작하게 만들어서 차곡차곡 대나무로 만든 석작 속에 쌓아두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 수정과 만들 때 사용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장독대 뚜껑은 화선지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제일 큰 장독대는 까치발 하고 독 안을 내려다보면 그 속으로 처박힐까 봐 겁이 났다. 엄마 뒤를 따라서 장독 뚜껑이 열릴 때 호기심이 많아 내려다보면 마른 고추나 미역, 멸치 등을 보관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장독대 옆에 묻어놓은 항아리에 동치미를 담가 두었다. 동짓날 동지 팥죽과 함께 새로 헐어서 꺼내온 동치미 국물에는 얼음이 둥둥 떠 있었다.
봄에는 감나무 잎이 연두 빛으로 피더니 연이어 감꽃이 피어 장독대 위에도 꽃이 피었다. 긴긴 봄날 떨어져 있는 감꽃으로 목걸이도 만들었다.
입이 궁금하면 목걸이에서 한 개씩 빼먹으면 떨떠름한 맛이 입안 가득히 배어있었다.
여름이 되면 장독대 주변에는 채송화, 맨드라미가 피었다. 채마밭에는 아욱, 솔이 나불거리고 가지가 보랏빛으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담장을 타고 올라간 호박 줄기에는 노란 호박꽃이 핀 자리에 둥그런 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간들간들한 줄기에 호박이 매달려있는 모습도 신기했다.
이제 며칠 후면 동짓날이 돌아온다.
언니가 다리 수술하기 위해 어제 병원에 입원하셨다.
해년마다 언니 덕분에 동지죽을 끓여서 먹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옛날에는 뒤 안 장독대 옆에 나란히 묻어놓은 단지에서 동치미를 꺼내다 뜨거운 죽과 함께 먹으면 시원하고 톡 쏘는 그 맛은 어떤 음료와 비교할 수 없었다.
우리 집 뒤 곁 채마밭, 감나무, 대대로 내려오던 장독대도 새 집을 짓느라 사라졌다.
시집 장독대는 양조장 안집답게 엄청나게 큰 간장, 된장 항아리가 몇 개나 있었다.
어른 둘이서 팔을 펴서 안아도 될 만큼 큼직 막 한 항아리였다.
봄만 되면 시어머니께서는 동네분들과 함께 된장 가르기를 하시느라 시끄러웠다.
시어머니께서 이사할 때 사주셨던 항아리는 간장 담글 때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고추장, 젓갈, 된장, 배추김치 담아서 보관해 놓은 단지 몇 개 있지만 다 비어 있다.
팡파짐하니 둥글둥글 모난 곳이 없는 항아리를 보면 왠지 마음이 넉넉해지지만 나도 언제까지 보관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오래전부터 항아리 대신 김치 냉장고가 겨울철 김장 김치를 여름까지 맛을 보장하고 있다.
얼마 전 천수 무로 담았던 동치미도 김치 냉장고에서 알맞게 익었다. 벌써 한통은 아들, 딸 퍼주고 나니 얼마 되지 않아서 다 먹었고 두 번째 통을 꺼내서 먹고 있다.
굳이 항아리가 아니어도 땅 속에 묻어 두었던 김장김치처럼 맛있게 발효되어 편리하게 먹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장독대는 사라졌지만 나의 추억 속의 장독대는 아직도 그대로 살아 있다.
# 된장 # 간장 # 곶감 # 동치미 #동지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