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에 묻어 둔 불씨

옛날에는 성냥불도 귀했다

by 진주


갓 시집온 새색시가 불씨를 도맡았다.
부삭에 묻어둔 재를 당그랭이로 조심스럽게 꺼낸다. 부지깽이로 살살 뒤적이다 보면 반딧불보다 작은 불씨가 반짝한다.

바싹 마른 솔갱이를 불씨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살살 불어대면 작은 불씨에 불이 붙었다. 불씨가 제법 큰 불이 되어 추운 겨울에는 물부터 데웠다.

설거지 통에도 뜨거운 물을 채우고세숫물도 데웠다.

그리고 밥 짓고 옆 아궁이에 불을 붙여 국도 끓였다.
가끔 불씨를 관리 못한 작은집에서는 나뭇가지에 불 붙여서 반짝반짝 불똥을 날리며 마당을 가로지르며 뛰었다.

할머니는 마루에서 긴 곰방대를 놋 재떨이 탕탕 털며 예펜네가 뭐 하느라. 혀를 끌끌 찼다.



작은 불씨가 때로는 초가삼간, 기와집도 태웠다. 주로 쇠죽 끓이던 뒤안 정제에서
뒷정리가 소홀해서 불이 났다.

부삭에서 나온 불이 미쳐 치우지 못한 나뭇가지에 붙어 나무청을 태우고 기와지붕까지 태웠다.
불이야! 불이야! 뒷집 아재가 소리를 질렀다. 순식 간에 작은 동네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위아래 살던 모든 동네 사람들이 양동이와 함박을 들고 나왔다.

너도 나도 내일처럼 동네 가운데로 가로질러 흐르는 냇물 퍼 나르기 시작했다.
소방대원도 아니었지만 동네 청년들 중 행동대장들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물을 퍼부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달리기 선수들이 되어 물을 퍼 나르던 이웃들은 땀방울로 범벅이 되었다.




작은 불은 금방 꺼졌지만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웃집까지 번진 불길 잡느라 힘이 들었다.가지붕은 이차로 불이 난 경우가 더러 있다. 켜켜이 쌓인 볏단으로 엮은 지붕 속에 잔불로 바람이 불면 다시 불이 났다.

그래서 초가지붕은 낫으로 속까지 뒤집으며

껐다. 불씨가 튀어와 얼굴과 손에 화상 입었다. 그러나 자기 일처럼 모든 일을 제쳐두고 한걸음에 달려와 불을 꺼주던 이웃들 덕분에 불도 잡았다.



불 때서 난방을 했던 시절이라 겨울철에는 마른 솔갱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밥때가 되면 장정들은 지게에 집채만 한 나뭇단을 지고 대문을 들어섰다. 아낙들은 동글동글하게 단을 만들어서 머리고 이고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뭇단이 걸어온 것 같았다.

이때 나무 심기 운동으로 벌목을 금지했다.

그러나 당장 나무로 밥 짓던 이웃들은 다시 산으로 갔다.

나무 한 짐씩 하다 산림직원에게 나무단을 뺏기기도 했다.

제일 기억에 남은 건 나뭇단을 뺏겨 그 앞에서 불을 지른 산림직원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아저씨 얼굴이다.

다행히 한 사람 몫만 불을 태우자 한 짐은 서로 나누어 지게에 지고 가던 아저씨들 뒷모습이 오래도록 남아 밥 먹을 때마다 식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차츰 석유곤로가 집집마다 재래식 부엌 한쪽에 자리 잡았다.

간단한 국이나 찌개를 끓일 수 있어서 주부들에게 인기였다. 명절에는 방안에서도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편리했다.
연탄이 산골마을에도 들어오자 새롭게 아궁이를 만들었다. 밤새 연탄 불에서 데워진 물을 자유롭게 퍼서 세수하고 머리 감았다.
전기밥솥이 보급되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코드만 꼽으면 밥이 되니 할머니들은 좋은 세상에 사는 며느리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무쇠솥에 누른 누룽지나 숭늉을 마시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결혼하고 신혼 때 곤로와 연탄도 같이 사용했다. 그 후 집집마다 LPG가스레인지 열풍이 불어서 월부로 사서 부엌 싱크대 옆에 두고 사용했다.
이제는 도시가스가 집집마다 보급이 되어 난방과 취사도 하게 되니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성냥개비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다방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거나 연인들이 만나서 성냥개비로 탑을 쌓던 놀이 대신 이제는 핸드폰으로 게임하거나 모든 정보를 얻고 산다.
요즘 가스레인지도 점점 사라지고 인덕션이 보급되는 중이다.
집집마다 옛날 어르신들이 지켜내야 했던 불씨로 대를 이어오며 살아왔다.
이제는 육신은 쇠하여 가지만 후손들을 위해서 지켜가야 할 불씨는 무엇일까?




믿음의 대를 이어갈 성령의 불씨가 아닐까?



# 솔갱이 # 아궁이 #성냥 #연탄 #LPG가스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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