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떡(고흥댁) 여덟 번째 이야기
어머니!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는 2020년 12월 마지막 주에
지팡이를 놓았다.
주간보호센터를 가시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순간 일어 난 일이었다.
휠체어를 마당에 놓고 올라온 나는 엄마!
왜 그래? 금메 다리가 힘이 없다 나 인자 교회도(주간보호센터) 못 다닐랑갑다 엉금엉금 거실로 기어 들어가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몸져누우셨다.
그해 여름 쓸개관에 돌이 차서 시술 한 후 건강이 회복되셔서 다시 주간 보호센터를 다니시던 중이셨다.
그런데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소화가 안 돼서 병원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급히 어머니 누울 자리 봐드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주치의는 대수롭지 않게 염증이 좀 생겼나 봅니다. 일주일 후에 병원 입원하셔서 검사를 해보지요 하셨다.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말씀도 잘하시고 웃기도 잘하셨다.
밥상을 안방에 차려드린다고 하면 '내가 중병 들었냐' 니그들이랑 같이 먹을란다 하시며 엉금엉금 기어서 나오셨다.
그러나 눈만 뜨면 만지기 좋아하시던 천 조각은 색깔만 맞춰진 채 찬밥 신세가 되었다. 할 것은 많은디, 어떻게 만들지 상상은 된디 통 손대기가 싫다 하시며 그대로 반짇고리를 놓으셨다. 밤잠도 주무시지 않고 천조각 만질 때는 얼른 주무시라고 소리 질렀는데 이제는 엄마 부를 일이 없어졌다. 아버지 전쟁터로 떠나시고 구슬피 부르시던 노래도 이제 들을 수가 없다.
한 뱀이 고모님도 얼마 전 치매로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틈만 나면 옛날이야기로 한 시간씩 통화하시던 소일거리도 사라지셨다.
옛날에 시골에는" 새 농민"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주로 농약 선전, 농기구 선전이 많았고, 농사에 관계된 내용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엄마는 겨울농한기 때 잠시 틈이 나면 뒷방에서 "새 농민" 잡지에 나온 "김말봉" 씨 연재소설도 보셨고 색다른 요리가 나올 때는 스크랩을 해두시기도 하셨다.
개봉된 영화를 소개할 때도 있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일까 엄마랑 처음으로 영화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김진규, 김천만 씨 주연으로 내용은 전혀 기억이 없지만 “자고 가는 저 구름아”라는 영화였다. 중앙극장 뒤를 돌아오면서 영화 속에서 보았던 큰 건물이나 사람은 없는데 내가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읍내를 빠져나와 먼지 나는 비포장 도로를 걸어오는데 모처럼 버스 한 대가 휘발유 냄새를 풍기며 지나갔다.
지름길로 가기 위해 ‘오지리’를 거치지 않고 철도를 가로질러서 들판 길로 들어섰다. 얼어붙은 들판에는 바람도 미끄럼을 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머이! 극장 뒤에는 집도 없고 영화에 나온 사람도 없드만.
나는 그게 너무나 궁금했지만 엄마의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은 채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엄마도 아마 내가 이해하도록 설명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누에 칠 때가 돌아오면 읍내에서 두 집 살림을 하셨던 아버지 집에서 신문을 가져왔다. 누에가 한잠 자고 올라갈 때마다 채반에 새로운 신문을 깔아주었다. 누에 똥과 오줌이 말라서 누렇게 된 신문을 엄마는 방바닥에 깔아놓고 읽어보셨다. 특히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셨고, 옛날 궁궐 사진이 나오면 꼭 스크랩을 해서 반짇고리에 넣어두셨다.
96세 마지막 끝자락인 그해 12월 우리 집에 오셨다. 심심할 때면 무조건 엄마는 책을 보셨다.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 그냥 읽는 것이제 하셨다.
젊은 시절 상할머니께서 석유 닳는다고 호롱불을 꺼버려서 읽고 있던 이차돈(신라 법흥왕 때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해 늘 아쉬워하셨다.
하루는 남편이 그 책을 찾아보려고 헌 책방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그 대신 동대문 시장에서 비단 자투리 천을 사다 드렸다. 재봉틀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사셨던 분이라 천을 보시자마자 두 눈이 반짝거렸다. 유서방! 참말로 좋네 이 천조각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겠네 하시며 좋아하셨다.
주간보호센터 다녀와서도 잠시 쉬었다가 천을 접고 자르고 색깔 맞추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꿰매시더니 예쁜 상보를 만들어 놓으셨다.
직장에 다닌다고 유세를 떨며 나는 엄마가 천을 만지고 접고 자르고 꿰맬 때도 관심조차 없었다. 잠도 안 주무시고 방안 가득히 천을 늘어놓고 다림질하고 계실 때도 혹시 치매가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지금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랑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게 회환으로 남는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난 후 좀 더 잘할 걸 미안해! 미안해! 엄마 혼잣말로 두런두런 거릴 때가 많다.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는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제목처럼 지금도 어머니는 내 곁에서
살고 계신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시던 숨소리,
들꽃을 보며 꽃은 야생화가 더 이쁘다며 한참을 들여다보고 오셨던 소녀 같았던 어머니
바쁜 농사철 흰 수건 머리에 쓰고 몸 베 바지 입고 애똥 밭, 평문이 밭, 풀 메려 다니시 던 엄마 모습이 지금도 어른거린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색보( 재봉틀도 아닌 바늘로 한 땀 한 땀 꿰매서 만든 작품)
증손자들 위해서 만든 복주머니!
어머니 작품들! 붓글씨 쓸 때 사용하던 팔꿈치 쿠션과 등받이 쿠션
99세 어머니 모시고 아버지 기일에
우리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 잘 다니시다 지팡이를 놓으신 지 19일 만에 (2021년 1월 15일 101세 되시던 해) 이 세상 소풍 끝내시고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2022 0115 엄마 기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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