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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텔레비전으로 달래고

산골짜기 마을에 텔레비전이 들어왔어요!

by 진주

군대 셋째 오빠가 제대 3개월을 남겨놓고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할머니보다 먼저 간 자식이라고 울음을 참았던 엄마는 이른 새벽 터져버렸다.

그날 학교를 결석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하게 식구들 밥고 도시락도 싸 놓았다.

대평 할머니께서 자주 오셔서 참지 말고 속 시원하게 울어야 되네 ~~

울고 싶을 때 울어야지 하면서 어깨를 내어 주셨다.




그리고 그해 여름 할머니 생신에 아버지께서 선물로 텔레비전을 사 오셨다.

방 맨 윗자리에 차지한 브라운 색깔에 빛이 나는 텔레비전 우리 집 최고 가보답게 네발로 서있었다.

화면을 보려면 유리 창문 열 듯이 양쪽 문 손잡이를 잡고 열면 브라운관이 나타났다.

너무나 신기하고 좋아서 조금만 먼지가 쌓여도 닦고 또 닦았다.

할머니랑 어머니에게 손주와 아들을 잃은 아픔을 텔레비전을 보면서 달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 오셨을 것이다.




우리 집은 겨울에도 노인정이나 다름없이 동네 할머니들의 놀이터였다.

텔레비전까지 있으니 저녁밥 먹기 전에 동네 개구쟁이들까지 모여들었다. 밀려드는 관객을 큰 방에서 더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마당에 덕석을 깔고 마루 중간에 텔레비전을 내놓았다.

그해 평문이 밭에 땅콩을 많이 심었다.

마당에 쌓여 있는 땅콩을 동네 분들이 저녁마다 텔레비전 시청하면서 줄기에 주렁주렁 달린 땅콩을 따 주었다.

서로 상부상조 한 셈이다.




약을 복용하고 난 후 지팡이를 던져버린 어느 제약회사 선전이 자주 등장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들은 저 영감은 어제께도

지팡이를 던지드만 오늘 또 던지네 하며

잔소리를 하셨다.

재미있는 연속극이나 창이 나오면 "우리만 보기 아깝소 아직 대산떡, 둔덕이 떡도 안 왔는데 아껴났다 있다가 봅시다" 하고 텔레비전을 꺼버리곤 하셨다.

저 사람은 지난번에 죽었는데 또 살아났네 "아이가 이 참말로 얄궂다" 하시며 이해가 영 안 가는 표정이셨다.

저 여편네는 서방도 이 서방, 저 서방 바꾸기도 잘한다. 연속극 이야기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인물 위주로 보시다가 못마땅한 게 있으면 할머니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셨다.

그리고 저 사림은 우리 동네 누구하고

안 닮았소?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요? 누구 집 양반 하고 꼭 안 빼닮았소? 목소리도 어찌 그렇게 똑같다요 하시며 내용은 관심이 없었다.

그 속에서 연속극 줄거리를 설명을 해준 아이들도 있었지만, 시끄럽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찬 바람이 불고 초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할머니들은 방 안에서, 아이들은 문 열어 놓고 마루에서, 좀 늦게 오는 아이들은 뜰방에서 서서 보았다. 바람이 불어서 텔레비전 화면이 지지거리고 나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잽싸게 뒤 안 감나무 옆에 서있는 안테나를 돌리려고 서로 다름 질을 쳤다.

조금만 더 돌려 바 아니 조금 더 더~~ 응 됐어 이제 그대로 두고 와~~ 그렇게 우리 집은 셋째 오빠 대신 티브이가 들어와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티브이는 각 가정마다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온 식구들이 같이 모여 좋은 배역, 나쁜 배역이 현실이라도 되는 듯 서로 칭찬과

욕을 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때는 집집마다 늦은 저녁시간에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함성소리, 박수소리 끊이지 않았다

앞집, 옆집, 뒷집 문 열어놓고 서로 손뼉 치며 좋아했던 때가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자 좋아하는 취향이 달라서 집안에 리모컨을 쥐고 있는 사람이 그 집안의 실세였다.

아버지들이 실세였다가 엄마가 되었고 이제는 사춘기 자녀들이 실세가 되었다고 한다.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서 누어서 마음대로 채널을 돌리던 아버지들께서 학원 다녀온 자녀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군소리 없이 자리를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코로나가 발생하고부터 텔레비전 기능이 또 달라지고 있다. 거실 한 중앙에 버티고 있던 것이 이제는 이동식이 되어 이리저리 옮겨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만 볼 수 있는 기능이 아닌 아이들 온라인 수업도 가능해서 거실도 아이들 학습장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고양이 눈알 변하듯이 변하고 있다. 지구 저편에서 전쟁이 나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 집 마당에 덕석 깔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서 텔레비전 보던 때가 그립다.

가족들과 이불자락 끌어당기며 서로 보고 싶은 프로그램 쟁탈전도 없어졌다.

사라진 것들도 많고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아

재미난 건 껐다가 " 같이 봅시다"

했던 할머니 처럼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셋째 오빠 # 텔레비전 # 안테나 #마당 #땅콩 # 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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