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일을 앞두고 고향을 내려갔다.
짐을 풀고 난 후 구시장을 가려니 마음이 설렌다. 오일장 서는 지방이라 평일에는 옛날 중앙극장 골목에 몇몇 가게가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이 옛날에는
시장터로 지금은 구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방앗간을 가니 벌써 설 대목으로 떡가래를 빼고 있었다. 추운 날씨지만 떡 찌는 김이 안개처럼 뿌옇게 올라와 젊은 부부는 얼굴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인심 좋은 방앗간 사장님 덕에 갓 나온 떡가래를 공짜로 얻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쑥 넣은 인절미 한말 주문하고 오니 잔칫날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제삿날이나 잔치가 돌아오면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해서 이 집 저 집 나누어주길 좋아하셨다. 어머니 기일이니 엄마가 했던 대로 할 수 없어도 흉내는 내고 싶었다.
형부가 고기랑 생선을 사 오셨고, 막내올케가 사놓은 생선도 손질해서 장만하면 한상
푸짐하게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모일 때는 기름냄새를 풍겨야 제격이어서 오는 길에 배추도 샀다.
어린 시절 잔칫날에 배추 전, 무 전은 맛보기도 싫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 한 번씩 맛보는 배추 전, 무전이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에 가끔 부쳐 먹기도 한다.
기름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무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크기로 잘라서 솥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닳아진 놋숟가락으로 기름을 두르고 골고루 기름이 퍼지도록 무로 솥뚜껑을 둘러주고 전을 부쳤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몇 근 사면 소기름을 덤으로 줄 때도 있었나 보다. 부엌 한쪽에 매달아 놓았다가 전을 부칠 때 솥뚜껑 위에 올려놓으면 기름이 지글지글 끓었다. 고소한 냄새가 담장을 넘으면 오늘 누구 제사요~~ 하시며 할머니들이 들어오셨다. 그때마다 배추 전 무 전을 부쳐내셨고 우리들에게는 고구마 전을 부쳐주셨다.
지금도 나는 동그랑땡, 삼색전, 동태 전, 육전보다 고구마 전이나 어린 시절에는 먹지 않았던 배추전이 훨씬 더 맛있다. 삼색전도 예쁘게 꼬지에 꿰어서 부친 것보다 투박하게 당근, 대파, 돼지고기, 큼직하게 썰어서 대꼬쟁이에 꿰어서 걸쭉하게 갠 부침가루를 넉넉하게 붓고 도톰하게 붙여낸 산적이 훨씬 맛있다.
아침에 누가 전을 드실까 했지만 배추 한 포기 씻어서 물기를 빼고 전을 부쳤다.
서로 배추 한가닥씩 찢어서 나누어 먹는 부침개의 고소함이 마당까지 풍기니 그동안 잠들어 있던 마당에 잔디도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홀로 외로이 겨울 꽃밭을 지키고 있던 동백나무도 붉으스레 한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 수줍게 꽃잎을 내밀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이 그래도 제일 젊은 날이니 작은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동백꽃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서로 헤어져 오는 길에 부산 사시는 작은 아버지랑, 오빠는 멸치 한 박스씩 막내오빠는 사과 박스로 서로에게 안겨주었다. 형제들이 만나는 일에는 늘 이렇게 오고 가는 정이 풍성하다.
마지막 청소까지 마치고 현관문을 잠그고 나왔다.
마지막 대문까지 나오자 구부정한 모습으로 두 분이 서서 기름기 없는 손을 흔들어 주시던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겨울 꽃밭을 지키는 동백이는 지금 쯤 꽃을 피웠을까?
20220122
# 동백꽃 # 겨울 꽃 밭 # 장날 # 중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