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에 가는 길이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무려 천 년 전,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몬세라트 산 위에 지어진 수도원이다. 세계 3대 소년 합창단 중 하나인 ‘몬세라트 소년 성가대’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스페인의 3대 순례지이기도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한 시간에 한 번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다가 점심거리 준비는커녕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나왔다.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너무 서둘렀나. 역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넉넉히 남았다. 기차에 올라서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창 밖으로 먹거리를 파는 자판기가 보였다. 딸이 먹을 걸 사 오겠다며 기차 밖으로 나갔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차창 밖의 딸은 느긋하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딸이 타기 전에 기차가 출발해 버리면 어쩌지? 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홀로 머나먼 타지에 떨어지게 된다면? 내 불안을 눈치챈 딸은 장난기가 발동하는지 활짝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고 한껏 여유 부리면서 얼른 들어오라고 채근하는 나를 놀렸다.
산악열차 정거장에 도착해서 기차를 바꿔 탔다. 톱니바퀴를 단 기차는 꽤 높은 산을 향해 한참 동안 꼬불꼬불 달려 올라갔다. 기차에서 내리자 시원한 공기가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역사 출구를 향해서 나가는데, 백발의 어르신과 그의 아들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기차에서 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은 허공을 향한 채 아들의 어깨에 매달리다시피 기대어 겨우 발을 떼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아무래도 건강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우리는 무심히 스치며 역사를 빠져나갔다.
넓은 광장 너머 성당, 수도원 건물 뒤로 거대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 자리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울퉁불퉁하면서도 모나지 않은 바위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며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웅장하고 위엄이 있다. 가우디가 이 산의 멋진 모습에 감탄하고 영감을 받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연립 주택 까사밀라를 설계했다는데, 과연 예술가에게 큰 영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는 다양한 소품들과 크고 작은 검은 얼굴의 마리아상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소년 성가대과 함께, 이곳 몬세라트 수도원의 또 하나의 명물은 바로 이 검은 얼굴의 마리아상이었다. 검은 성모는 옛날부터 카탈루냐 주의 성인으로서,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검은 성모상은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가 만들고 베드로가 몬세라트로 옮겨 왔단다. 후에 사람들이 아랍인들에게 검은 성모상이 파괴되거나 빼앗길 것을 우려해 동굴에 숨겨두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목동들이 근처를 지나다가 동굴 속에서 밝은 빛과 함께 천상의 음악이 들리는 것을 기이히 여겨 가보니 그곳에 검은 성모상이 있었다. 목동들은 이를 주교에게 알렸고 주교가 성모상을 옮기려 했지만 꼼짝하지 않자 여기가 성모상이 있을 곳이라 여기고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한 검은 성모상 앞에 섰다. 검은 얼굴의 마리아라니. 색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도 조금 낯설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었다. 성모상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천상의 성모가 지상으로 내려온 걸까. 성모상의 얼굴은 너무나 소박하고 수더분하고 심지어 평범해서, 마치 어디선가 만난 듯, 혹 어디서든 만나 볼 수 있을 듯 친근하게 느껴졌다.
성당으로 가기 위해 광장을 지나는데 기차에서 내릴 때 봤던 두 사람이 앞서 걷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느린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면서 계속 말을 건네고 있다. 아버지는 해맑은 얼굴로 짧고 어눌하게 ‘어~,어~’ 거릴 뿐 제대로 아들의 말을 이해하기나 했나 싶은데, 아버지의 표정에서 정말 기뻐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참 보기 좋다. 아버지와 아들이겠지?”
“그런 것 같아. 여기가 많이 걸어야 하는 곳이라 어르신 모시고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더디 걷는 두 사람을 앞질러 성당으로 들어갔다.
예배 중인 성당 안에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예배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미사 후에 시작하는 소년 합창단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다. 한참 동안 예배는 계속되고, 일어났다 앉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서 있는 시간은 또 왜 그리 길던지…. 성경 강독과 기도 시간인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앉으면 얼른 앉는 등 눈치로 따라 하는 예배의식은 그저 번거롭기만 했다. 예배 중간에 소년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성가는 가뭄 속 단비처럼 시원하고 따스했다. 덕분에 그나마 지루함을 좀 덜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자세를 정돈했다.
예배를 마치자 흰옷 입은 신부들은 격식에 맞춰 퇴장하고 양옆에 서 있던 소년 대원들이 가운데로 나와 합창대열로 섰다. 합창 준비가 끝나자 예배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을 구분해 놓았던 줄을 치웠다.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몰려들고 자리가 정돈되자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소년 성가대이자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너무나도 감미로웠다.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얼른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런 소리를 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어떤 작가가 ‘아름다움은 언제나 슬픔과 붙어있다’고 했다던가? 예배시간 내내 어른들보다 더 진지하게 예배의식을 치르고 다시 노래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노래에 감동한 만큼이나 아이들의 수고가 깊이 느껴져서 가슴 저리고 코끝이 찡했다. 이 아이들은 성당 가까운 곳에 있는 기숙 음악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과 함께하는 아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성당 제단 뒤편 이 층에 있는 검은 성모상을 눈으로 찾았다. 검은 성모상은 유리로 만든 보호벽으로 감싸져 있는데 오른손 부분을 뚫어 놓아 사람들이 만질 수 있게 해 놓았단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 있는 사람들 줄이 아래층을 지나 성당 밖으로 이어져 있다. 줄을 따라 성당 밖으로 나왔다.
“줄이 너무 기네. 어떻게 할까?”
“그냥 가자. 아무려면 만져야만 소원을 들어주실까. 들어주실 생각이면 안 만져도 들어주시겠지.”
호기심이건 어떤 번민을 치유 받기 위한 진심이건 성모상을 보고 만지려고 긴 줄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호기심도 진심도 번거로움을 참을 만큼 크지 못한 우리는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다.
산악열차를 타려고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저분들 또 만나네.”
“그러게, 우리가 꽤 오래 있었는데….”
“저분들도 마리아상은 못 봤겠다.”
“그치? 계단 올라가는 건 무리셨을 거야.”
초점 없는 눈이지만 한없이 맑고 환한 얼굴을 한 아버지는 아들의 곁에 바짝 붙어 손 하나는 아들 어깨에 걸치고 다른 손은 지팡이에 기대고 서 계셨다. 자기를 지켜줄 유일한 끈이라는 듯 전적으로 아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는 아들의 하얀 손이 새삼 예쁘다. 아들의 밝은 표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하는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하는 진심 어린 기쁨이 느껴졌다.
마리아가 살아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성모상은 기품 있는 우아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때 묻지 않은 순백의 여성 이미지였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 마리아의 모습은 검은 성모상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세상의 때가 묻고 햇빛에 검게 그을릴지라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 그를 위해 기쁘게 손을 내어주는 마리아. 검은 성모상을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지만 두 사람을 보면서 마치 살아있는 마리아라도 만난 듯 가슴이 충만해지는 것이 그야말로 무언가를 치유받은 느낌이다. 검은 성모상의 순박하고 평범한 얼굴처럼, 마리아는 세상 곳곳의 평범한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나 보다.
열차가 도착했다. 나는 딸과 함께 다음 일정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