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호텔을 나섰다. 스페인 여행 일주일차, 사흘간 머물 도시인 말라가에 가는 날이다.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의 항구도시로 푸른 바다와 청명하고 따뜻한 날씨로 자국민들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사랑받는 관광지다. 이번엔 특별히 ‘에어비앤비’라는 사이트를 통해 예약했다. 주인이 살고 있는 집에 방 하나를 내어 여행객들에게 빌려주는 곳인데, 현지인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요즘 새로이 각광받는 방식이란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에 들어갈 예정이니 그 집 식구들과 부딪힐 일은 별로 없다지만, 이런 형태의 숙박은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라서 은근히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 사람의 사는 모습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첫째 날
숙소에 도착했다. 훤칠한 키에 굵게 쌍꺼풀진 큰 눈이 선한 인상을 주는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저씨는 방과 주방, 냉장고 등 우리가 사용할 공간을 설명해 주면서 자기들이 없을 때는 편히 이용하라며 거실로 안내했다.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소파가 두 세트나 들어가고도 여유 공간이 많은 거실의 모습에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작아서 캐리어 두 개를 겨우 집어넣고 딸과 둘이 꽉 껴서 겨우 타고 올라온 터여서 집에 대한 기대가 적었나 보다. 낮은 책장이 거실 한 바퀴를 쭉 돌아 놓아져 있는 것도 멋스러웠다. 햇빛 잘 드는 넓은 거실 한 편에 잠을 자고 있던 고양이가 느리게 일어나 우리들 발치를 어슬렁거렸다. 고양이 이름이 ‘가또’라 했다.
방에 짐을 내려놓고 집을 나섰다. 숙소 근처가 유명 관광지인데 동네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지중해의 푸른 물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바다가 눈앞에 확 펼쳐졌다. 해변에는 햇살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이 다 여기 나와 있느라 동네에 사람이 없었나 보다. 햇볕은 따뜻했지만 바람은 꽤나 차가운데 사람들의 옷차림은 얇은 민소매나 반팔 티 차림이 대부분이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음식점들은 건물 바깥에 예쁜 파라솔과 테이블을 갖춰놓아서 사람들이 바람과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그중 한 집에 들어가 생선튀김요리와 야채로 식사했다. 햇빛과 바다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섞여 나도 같이 풍경이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근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갔다. 미술관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일요일 오후에 무료 개방을 한다 해서 간 것인데 공짜 좋아하는 마음은 세계 공통인가 보다.
“공짜도 좋지만 아까운 시간을 너무 낭비하는 거 아닌가? 내일 다시 올까?”
“근데 엄마, 딱 공짜로 보면 좋을 만큼이래.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들은 대부분 뉴욕에 가 있고 여긴 작품이 많이 없어서. 대신 피카소가 어릴 때 그렸던 그림들이 많이 있고.”
“그래? 그러면 좀 참아 볼까?”
줄은 길었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입장했다. 나는 피카소가 추상화를 많이 그렸던 작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엔 사실화 그림이 많았다. 피카소가 추상적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린 사실화들과 추상화로 변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전시실 벽에 피카소가 했다는 말이 영어로 씌어있다. 대충 이해한 내용에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열정과 믿음, 자신감이 드러나 있다.
젊은 날의 피카소는 가까운 친구의 죽음과 가난 등, 어려움을 겪으며 푸른 색채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입체파(큐비즘)로 불리는 새로운 정신과 개념을 창조했다. 한 세계를 연다는 것, 새로운 사유를 연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확신을 갖고 자기만의 세계를 주저 없이 나갈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고 그가 천재로 일컬어지는 이유겠다.
특이하게도, 그 미술관에서는 피카소 아버지의 그림도 볼 수 있었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직접 그림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는데, 혁신을 추구한 아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전형적인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피카소는 그런 아버지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세웠다. 피카소의 눈에 아버지의 그림은 어떻게 보였을까? 태산같이 크던 아버지의 어깨가 어느 순간 조그맣고 초라하게 보였을 때처럼 당혹감을 느꼈을까? 피카소의 아버지는 피카소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줄 거라고 확신했다.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하는 아들의 미술 실력에 감탄하던 아버지는 자신이 쓰던 화구를 모두 물려준 뒤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평생 피카소의 화풍을 이해하지는 못했다는데, 어쨌건 천재를 키워낸 아버지의 자부심은 대단했을 것 같다.
박물관 가까이에 있는 피카소 생가에는 피카소가 사용하던 물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피카소가 스케치한 그림과 소묘, 그가 썼던 방과 책상, 가족사진 등 피카소의 젊은 날을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걸 공짜로 즐겼다는 게 슬며시 미안해진다.
피카소 생가를 나와 말라가 대성당으로 갔다. 다른 날 들른 성당하고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차분하고 진지한 걸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묵상기도를 올린다. 아,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미술관 공짜 관람만 좋아했지 교회는 잊고 있었다. 딸과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들처럼 묵상기도를 했다. 눈을 뜨고 딸을 바라보았다. 아직 기도 중인 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많아서 심신이 불안정한 시간인데 모든 것 뒤로하고 시작한 여행이다. 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마을엔 대부분의 슈퍼와 음식점들이 문을 닫아서 열려있는 곳으로 가려면 해변까지 다시 가야 한다. 다행히 문을 열고 있는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띄어서 저녁거리로 바게트와 하몽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주방을 마음대로 쓰라고 했지만 어쩐지 낯설어서 그냥 방에서 먹기로 했다. 옹색하고 조그만 테이블에 놓인 가벼운 음식이었지만 만찬을 앞에 놓은 듯 충만했다. 우리의 수다는 밤 깊은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주방 테이블에는 예쁜 접시와 커피잔이 세팅되어 있고 빵과 차 등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주인집 식구들은 다 나갔는지 인기척이 없다. 고양이만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우리를 쑥 훑어보더니 다시 거실 창가 햇빛 속으로 들어간다. 커피를 곁들인 식사를 여유 있게 마쳤다. 설거지는 그대로 두라고 했지만 차마 그냥 두고 나올 수 없어 그릇을 닦는데 눈앞에 서랍장이 보인다. 서랍장에는 우리 접시들과 똑같은 접시들이 크기대로 줄 맞춰 잘 정돈되어 있다. 불특정한 누군가를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식기와 주방도구를 내어 주는 것에 전혀 부담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이 정말 대단하다. 거실로 나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잠시 앉아 있다가 집을 나섰다.
오늘은 근교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안달루시아의 산토리니’라고 불리는 프리힐리아나에 갔다.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이 강렬한 햇빛과 지중해의 푸른빛이 어우러져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바닷가로 나 있는 길 따라 놓여있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식사하고 있다. 햇빛 속에 몸을 맡기고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생동감이 돈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섞여 앉았다. 햇빛과 바람이 우리 머리 위를 사이좋게 넘나들었다.
버스를 타고 이십 분 남짓 지나 도착한 ‘네르하’의 해변은 항구인 말라가의 해변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스페인 국왕 알폰소 12세가 이곳의 전망에 반해 ‘발코니’라 불렀다 해서 그 후로 ‘유럽의 발코니’란 이름을 갖게 되었단다. 발코니 맨 끝으로 다가가 양팔을 넓게 펴고 가슴 깊이 숨을 들여 마셨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아름다운 유럽의 발코니가 ‘나의 발코니’가 되었다.
말라가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어둠이 찾아든 차창 밖으로 석양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어느새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딸과 하루 온전히 같이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이런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버스에서 내린 뒤 해변으로 나가 조금 더 산책하고는 저녁거리로 면 요리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주방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하루를 지나고 나서야 이 집이 좀 편해졌나 보다. 주방에는 주인 딸이 나와 있었다. 와인을 따르고 있던 주인 딸은 가볍게 몇 마디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 와인 두 잔을 들고 거실로 갔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중문 유리창 너머로 거실에 앉아 있는 부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와 딸이 나란히 앉아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평화롭다. 나라면 틀림없이 커튼을 달거나 불투명 유리로 바꿨을 텐데…. 저녁에 식구들과 있는 자리조차 보여주는데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깊을 수 있다는 게 낯설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집과 이 집 사람들이 진심으로 편해졌다.
셋째 날
말라가 근교여행을 할 만한 곳은 다했기에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조금만 걸어도 물집이 잡히는 내 발가락은 이번 여행에서도 여전히 나를 괴롭게 했다. 딸이 약국에 들러서 보호 테이프를 사 왔다.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고 테이프를 붙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길거리에서 양말 벗는 정도도 해보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이런 게 자유인가?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 하긴, 터미널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어떤 여자는 겉옷을 홀랑 벗고 갈아입기도 하던 걸.
테이프 덕에 나아진 발로 좀더 거리 구경을 하다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딸을 위해 괜찮은 옷 한 벌이라도 척하니 사주고 싶건만,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 딸은 정장에도 캐주얼한 옷에도 진지하게 눈길을 보내지 못한다. 가방 코너에서도 역시나 마찬가지다. 아닌 게 아니라 만약 합격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일 년을 책에 파묻혀 보내야 하는데 뭐가 눈에 들어올까.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밝게 웃고 있다가도 순간순간 절벽으로 떨어지는 듯,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딸이다. 우리는 넓은 매장 이곳저곳을 샅샅이 둘러보며 명품 백 하나쯤 사려는 것처럼 긴 고민 끝에 작은 가방 하나를 골랐다.
저녁 식사하려고 봐두었던 음식점으로 가는 길에 큰 슈퍼를 발견하고 구경삼아 들어갔다. 물값이 놀랄 정도로 싸다. 오렌지를 직접 갈아 주스로 만들어 병에 담아 가도록 해 놓은 코너도 있고. 우린 어느새 이것저것 욕심껏 바구니에 담고 말았다. 계산을 끝내고 보니 짐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와 짐을 내려놓고 집 근처 음식점으로 갔다. 돼지고기 스테이크가 기대 이상이다. 일일이 인터넷으로 평가 좋은 곳을 찾는 딸의 수고 덕이다.
집에 들어와 거실로 나갔다. 거실 한쪽에 놓여있는 빨래건조대에 이 집 식구들의 옷가지들과 함께 우리 옷들이 걸려있다. 식사 도구들도 같이 사용하더니 빨래도 같이 했나? 메이드가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라고 했지만 차마 내놓지 못하다 재차 당부하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아침에 빨래를 맡기고 나갔던 터다. 이렇게나 타인에 대한 경계가 없이 살 수 있는 마음에 또 한 번 놀라며 옷가지들을 챙겼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를 슬며시 밀고 들어와 일어나라고 채근한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아름다운 마을과 이 집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을 나서는데 막 출근하려는 아저씨를 현관에서 만났다. 인사도 못 나누고 가는 건가 싶었는데 다행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를 길게 쓰다듬어주고 다음 여행지를 향해 집을 나섰다. 아, ‘가또’가 스페인 말로 고양이라나. 예쁜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말하자면 ‘고양아, 고양아’ 이렇게 부른 거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