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하는 파리 여행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부리나케 일어나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너무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겨울 비수기에도 조금만 늦어지면 입장하는 데만도 한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해서다. 그런데 너무 서둘렀다. 궁전에 도착해 보니 근처를 지나는 사람조차 거의 없어 적막감마저 돌고 하얀 눈만 하늘 가득 흩날리고 있었다. 궁전 외양 구경을 하면서 광장을 거닐다 개장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출입구로 갔다. 싸라기 같던 눈은 어느새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고 줄을 선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가 금세 하얗게 변했다. 드디어 궁전 문이 열렸다.
출입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물 안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 벽을 가득 채운 조각품들과 그림들, 천장화들까지 더할 수 없이 화려했다. 고개를 바짝 올려 들고 구경하랴, 오디오 설명 들으랴 마음이 한껏 바빴다. 궁전 관람을 다 마쳤다 싶을 즈음, 제일 중요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방을 빠뜨린 걸 알았다. 이 멋진 방들 중에서도 가장 멋지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두리번거리다 일단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 앉았다. 지도를 펴 들고 방을 찾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어르신께서 말을 건넨다.
“뭘 찾나요?”
백발이 멋지게 잘 어울리는 어르신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 담겨있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방을 보지 못해서요.”
“그래요? 내가 안내해 줄게요.”
어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큼 앞서서 걷는다. 엉겁결에 우리는 어르신을 따라나섰다. 어르신은 꽤 멀리까지 같이 와서 직원에게 우리를 소개해 준 뒤 손을 흔들며 뒤돌아 갔다. 어라, 아까 들어왔던 입구 같은데?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뿐인데 다시 들어간 궁전엔 관람객들로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면서 좀 전에 들었던 오디오 설명을 생각하며 장식품과 그림들을 다시 감상했다. 여유가 생긴 탓인지 대충 스쳐가며 보는데도 멋지고 화려한 모습에만 감탄한 처음과 달리 시대 배경이나 의미들을 좀 더 생각하면서 보게 되었다. 처음에 갔던 곳을 거의 다 지난 후에야 왕비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미 나와 버린 우리를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해 주었나 보다. 어르신 덕에 다시 보기 쉽지 않은 아름다운 궁전을 두 번이나 보게 된 거다.
왕비의 방은 마리 앙트와네트가 이 궁전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머무르며 온갖 호사를 다 누렸다는 방이다. 아치형의 높은 천장은 멋진 그림으로 가득하고 벽에는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있다. 화려한 수로 장식된 침대 옆에는 마리 앙트와네트가 정말 썼을 법한 예쁜 보석상자가 놓여있다. 사치와 방탕으로 세월을 보낸 여인이라는 비난과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연민을 한꺼번에 받고 있는 한 여인이 보인다. 화려한 궁전 안에서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았던 그녀지만 막상 그녀는 그저 평범한 사내를 만나 알콩달콩 살고 싶진 않았을까.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람. 화려한 방의 모습에 감탄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렀다.
궁전 밖에는 눈이 꽤 많이 쌓여있다. 이제 막 땅에 닿은 새하얀 눈에 발자국을 찍으며 멀어지는 궁전과 작별했다.
다음 행선지인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프랑스 날씨는 변덕이 심해서 종잡을 수 없다더니 눈은 어느새 얇은 가랑비로 변해 있다. 버스에서 내린 뒤 시테 섬 안에 있는 성당으로 가기 위해 세느 강 다리를 건너는데 성당의 높은 첨탑이 눈에 들어왔다. 신께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듯 뾰족한 탑 끝이 하늘까지 닿아 보인다. 광장을 지나 성당으로 들어갔다.
여기엔 한국어 오디오가 없다는 말에 실망했다. ‘노트르담’에 대해 아는 거라곤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나온 종지기 꼽추 콰지모토와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 이야기뿐인데. 아, 성당이름 노트르담이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라 했던가? 짧은 상식에 상상력을 동원하느라 머리가 바빴다. 성당을 다 돌았을 즈음 우리말 방송이 들렸다. 한국어 가이드 설명이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성당 입구로 오란다. 베르사유도 그렇고, 오늘은 같은 곳을 두 번씩 관람하는 행운이 있는 날인가 보다.
동그란 얼굴을 한 자그마한 체구의 가이드는 도미니크 수녀회 소속 수녀인데 봉사활동으로 일주일에 세 번, 이 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단다. 성당 안에 한국 사람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외엔 아무도 오지 않아서 달랑 우리 둘만 안내를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특별 과외다. 좋긴 한데, 재미없으면 어쩌나. 딴청도 못 부리고 꼼짝없이 붙들려 공부하게 생겼다. 은근히 걱정하며 수녀의 안내에 따라 다시 한번 성당 관람을 했다. 대충 흘려보았던 그림들과 조각들이 설명을 들으며 그 의미가 새롭게 와 닿았다. 수녀는 성당 내부 안쪽 철제문으로 가더니 자물쇠를 열었다.
“여긴 저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곳이에요. 이 성당이 100여 년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지어진 곳이랍니다. 지금도 새벽 미사가 여기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 문은 미사가 열릴 때만 개방해요. 그러니까 노트르담 성당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떠나는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성당인 거지요.”
서늘하던 성당 내부가 ‘지금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성당’이라는 수녀의 말에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 따스하게 느껴졌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한 시간 반 남짓의 시간이 어느새 훌렁 지났다.
“모든 만남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어요. 저는 오늘 우리 만남이 특별한 신의 은총이라 생각해요. 자매님들 앞날을 위해 기도할게요.”
신의 은총? 기도해 주시겠다고? 귀가 번쩍 열린다. 사실 지금 딸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즐겁게 여행하고는 있지만 순간순간 초조함이 엄습하곤 했는데, 정말로 축복이 우리에게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수녀의 축복 기원을 감사히 받으며 다음 여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거리는 추워지기 시작했다. 거센 찬바람에 한기가 몸속을 파고든다. 저녁 먹을 곳으로 미리 봐두었던 식당이 꽤 멀다. 아쉽지만 가까운 곳에서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근처 프랑스 요리 전문점이 있단다. 프랑스에 왔으니까 프랑스 요리를 먹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블로그에 소개된 내용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고 했지만 일단 가 보기로 했다. 음식점 건물은 작고 소박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하여 2층으로 안내받아 계단을 올라가는데 하얀색 요리사 복장의 한국인이 인사를 한다. 셰프가 한국인인 프랑스 음식점이었던 것이다. 파리 한복판의 프랑스 음식 전문점에서 한국인 요리사를 만나다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안내된 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옆자리에 한국인 청년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뭘 먹을지 고민하며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청년이 음식을 추천해 주고 싶다고 말을 건넸다.
“프랑스에 왔으니까 그동안 먹었던 거 말고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드세요. 이거 토끼 콩팥 요리랑 농어 요린데 정말 맛있어요.”
청년이 손가락으로 음식 메뉴판 한 곳을 가리킨다. 용왕님이 토끼 간을 먹으려다 실패한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토끼 콩팥을 먹는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조금 망설여졌지만, 아닌 게 아니라 여긴 프랑스니까 청년의 권유에 따라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시켰다. 낯선 것을 찾아 길을 나서는 것이 여행이라지만 음식 하나에도 낯선 것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청년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 좀 더 익숙한 음식을 선택했을 거다.
“이건 오리 간이에요. 들어보세요.”
청년은 자기 접시에 있는 요리를 잘라서 건넨다. 그런데 많은 양의 음식을 조금 나눠준 게 아니라 넓고 새하얀 접시에 예쁘게 세팅되어 있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 음식의 반을 주는 거다. 토끼 콩팥처럼 오리 간 역시 전혀 먹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음식이기에 낯설었지만, 막상 입에 넣어보니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근데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요?”
“그냥 가까운 곳 찾다 오게 되었네요.”
“정말 잘 찾아왔네요. 여기 대표 셰프가 한국인이에요. 보셨어요? 미국 유학 중에 만난 선배인데,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아서 학교 추천으로 여기로 왔어요. 저도 요리사거든요. 선배 음식 먹어보고 한 수 배우려고요.”
잠시 후에 한국인 셰프가 후배 청년을 만나러 왔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고 우리까지 반가워한다.
잠시 주방에 다녀오겠다더니 손에 오리 간 요리 한 접시를 들고 왔다.
“서비스에요. 들어 보세요.”
“아, 고마워요. 조금 전에 후배님께서 나눠주셔서 먹어봤는데요. 정말 맛있네요.”
“역시 내 후배, 역시 한국인. 이럴 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든다니까요.”
셰프는 청년을 향해 엄지 척이다.
우리가 식사하는 중에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 여자 두 명이 들어와서 옆 테이블에 앉았다. 우린 이 청년이 요리사인 것과 우리가 추천받아 맛있게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들도 청년에게 식사 메뉴를 추천받았다.
테이블 세 개가 마치 한 팀인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프랑스는 팁 문화가 없지만 이렇게 직원이 직접 서빙해 주는 음식점에서는 팁을 주는 게 관례에요.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인들이 무심결에 그냥 나가면 살짝 뒷담화도 한대요.”
청년의 말에 지갑을 열었다. 잔돈이 몇 센트밖에 없다. 난감해하는 걸 보고 여자 친구들이 얼른 1유로를 내민다. 나는 모자라는 대로 작은 동전들을 주려했다.
“괜찮아요. 덕분에 요리 잘 먹고 있는 걸요.”
정말 기분 좋은 친절이다. 오늘 파리에서의 저녁식사는 맛에 더하여 더욱더 훌륭한 식사로 기억날 듯하다. 청년은 인천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단다. 기회가 되는대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미 바깥은 어두워졌다.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전철을 타야 하는데 좀 걷더라도 한 번에 갈 수 있는 역을 찾아가려다 추위 때문에 포기하고, 일단 가까운 역으로 가서 환승하기로 했다. 역에 도착해서 티켓을 구입하려는데 기계를 아무리 만져봐도 도통 방법을 알 수가 없다. 당혹스러워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코트 깃을 반듯하게 세운 단정한 차림새의 중년 아저씨가 역으로 걸어오고 있다. 딸이 아저씨에게 영어로 도움 요청을 했다.
“저…, 티켓 사려는데 잘 안 돼서요.”
앞만 보고 걷던 아저씨의 얼굴이 환한 표정으로 바뀌며 우리 쪽으로 왔다.
“어디 갑니까?”
아저씨는 우리에게 목적지를 물은 뒤 티켓 박스로 가서 버튼 몇 개를 빠르게 눌렀다. 그러더니 코트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얼른 카드를 내밀었지만 아저씨는 가볍게 웃음 지으며 사양하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더니 기계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 줄 티켓이 나왔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아저씨는 티켓을 꺼내어 우리에게 내민다. 그러면서 우리가 티켓을 살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파리 전철은 시내만 다니는 티켓과 근교로 나가는 티켓이 구분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시내 갈 때와 근교에 갈 때 어떤 걸 눌러야 하는지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그런 다음 따뜻한 미소를 우리에게 한 번 더 보내고는 성큼성큼 가던 길을 갔다. 우리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낯선 여행자에게 베푸는 친절에 감사했다.
“엄마, 우리도 우리나라에 여행 온 사람들 이렇게 도와주자.”
“그러자.”
오늘 다 있었던 일인가 싶게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이 너무나 많았던 하루다. 파리의 날씨는 여행하는 내내 햇빛 한 점 없이 눈과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우중충하고 추웠다. 애쓰고 찾아와서 온종일 궂은 날씨 속에서 지내야 했으니 이곳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따스한 사람들 덕에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머물며 웃음 짓게 할 파리에서의 하루다.
(덧붙임) 2019.4.15. 보수 공사 중이던 노트르담 성당 첨탑 주변에서 화재가 났다. 열 시간 남짓 계속된 불에 결국 첨탑과 그 주변의 지붕이 붕괴되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 등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어 준 곳. 나와 딸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소망, 추억을 간직한 성당이 제 모습을 잃었다. 내 어깨가 풀썩 내려앉는다. 수 세기를 지나면서 흠집이 생기고, 약해지고, 프랑스 혁명 때는 크게 파손 되기도 했지만 이제껏 건재함을 보여준 것처럼 언젠가는 제 모습을 다시 찾을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