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청년인 사랑스런 후배 애란에게,
늘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기도하며 ”
인쇄된 글씨에 익숙해진 요즘, 오랜만에 다시 꺼내보는 선배의 손 글씨는 지금도 힘차다.
어느 여름 날, 장성역에 도착했다. 아담한 시골 역사를 빠져나가자마자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선배는 항상 ROTC 제복을 입고 있었다. 빳빳하게 깃을 세운 하얀 와이셔츠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밭일을 하다 막 나온 것 같은 행색이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영락없는 촌부의 소탈한 차림새까지,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았다. 건강하고 밝은 표정 속에서 예전에 보았던 서글서글한 눈매가 낯익어 보이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서들 와라. 먼 길 찾아줘서 고맙다. 오느라 힘들었지?”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아이고, 오랜만이다. 애란인 여전하네. 다들 그대로구나.”
추억을 함께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거의 삼십 년 만의 만남인데 그대로라니. 우린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갔다.
대학 때 같이 활동했던 합창단 동아리 친구가 담양에 있는 선배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대학 선배가 우리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담양’이란 말을 듣자마자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이 먼저 떠올랐다. 내가 그간 다녀본 여행지들 중 정말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선배를 핑계로 겸사겸사 할 수 있는 담양 여행이라 얼른 승낙했다.
선배는 우리가 일 학년 때 지휘를 했다. 합창 연습을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이 날 법도 하련만, 그럴 때는 오히려 멋쩍은 웃음만 지어 보이곤 했다. 지휘를 어떻게 했나 싶게 숫기도 없었다. 전국대학생합창경연대회에 나가게 되어 큰 무대에 섰을 때 긴장해서 벌그레 달아올랐던 선배의 얼굴이 선하다. 선배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는데 몇 년이 지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지휘할 때를 빼고는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말수가 적었던 사람인데 목회를 잘 할까 싶었다. 얼마 후 선배가 목사 안수를 받고 담양의 교회에서 목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뭘 해도 도시로 나오려 하는데 왜 오히려 작은 도시로 들어갔나 싶었다. 하지만 약삭빠른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선배의 성격에는 이웃들과 정을 더 나눌 수 있는 작은 마을에서의 목회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 교회에 계속 사역하고 있었나 보다. 선배가 있는 교회는 설립된 지 99년 되었는데, 너무 낡아서 이번에 선배의 주도 아래 교회를 새로 건축했단다.
며칠 후 친구가 담양에 가면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니 특별찬송을 준비하라고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예배? 우리 놀러 가는 것 아니었어?”
“물론 놀러 가는 거지. 그래도 기왕 교회에 가는 거니까.”
친구는 입당예배 날에 맞춰 갈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 편한 날에 가는데, 우리끼리라도 예배를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미처 생각 못했다. 모태 교인인 나는 평생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제대로 된 신앙인은 아닌가 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왜 노래를? 합창단 친구 중에 노래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일이니 함께하잔다. 강요는 아니지만 거절하기 어렵게 말하는 게 강요와 뭐가 다르담. 어쩔 수 없이 그러마고 약속하고 말았다. 여행할 생각에만 들떠 있던 나는 갑자기 곡을 준비하고 가사를 외우느라 머릿속이 바빠졌다.
마중 나온 선배의 차를 타고 교회에 도착했다. 대전에 사는 친구가 식구들까지 모두 데리고 먼저 와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반긴다. 다 모였다. 다들 대단한 애정이다. 교회는 담도 없이 ‘월곡교회’라 적은 큰 돌만 앞에 세워져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자그마한 교회는 주변 경관과 아주 잘 어울렸다. 교회는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선배의 지론에 따라 언제나 열려 있어서 마을회관을 대신하여 동네 어르신들의 놀이터가 되었단다. 교회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선배의 부인이다. 밝게 웃으며 남편을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부인 역시 소박한 차림새다.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말쑥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을 때는 생각도 못했을 터인데, 시골 작은 교회 목회자의 사모가 되었다. 부인에게 도시의 세련된 흔적이라고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준비해간 대로 예배드렸다. 나도 특별찬송을 즐겁게 마쳤다. 열댓 명 남짓 밖에 안 되는 우리 동기생들끼리의 예배지만 모두 한마음이다. 이 작은 교회는 앞으로도 교인 수가 갑자기 많아지거나 대형 교회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 자리를 귀하게 채워갈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선배의 부인이 직접 준비해 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누군가 선물해 준 거라며 예쁜 상자에 담겨있는 커피를 꺼내 손수 내려준다.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커피잔 탓인지 맛이 훌륭하진 않았지만 뭐든 대접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친구들이 서울에서 연주 활동하며 찍어둔 동영상도 같이 보았다. 친구의 권유에 못 이겨 내가 어설프지만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자 다른 친구들이 즉석에서 각 파트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4부 합창이다. 합창단 활동을 같이 하던 때 수다 떨고 놀다가도 누군가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면 어느새 가벼운 유행가 하나도 멋진 4부 합창이 되곤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우리의 놀이는 여전했다.
교회를 나와서 메타세쿼이아 길에 갔다. 여름에 이 길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푸른 잎들이 강한 햇빛을 몸으로 받아내며 빛을 발하고 있다. 길 따라 산책도 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버렸다.
“선배님, 내년 100주년 기념 예배 때 다시 올게요.”
“그래, 그때 꼭 다시 보자.”
선배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다.
“우와, 신난다. 우리는 일 년 후 여행 계획이 잡힌 거네.”
밝게 웃으며 배웅하는 선배를 뒤로 하고 우리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휴대폰에 문자가 뜬다. 담양에 같이 갔던 친구에게서 온 문자다.
“K선배 오늘 소천하셨대.”
무언가 둔탁한 것이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아니, 왜? 담양에 다녀온 지 불과 석 달 남짓인데, 그토록 건강미가 넘치던 선배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선배는 그동안 당뇨와 합병증에 간경화까지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우리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격히 심장이 나빠져서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은 괜찮았는데 다시 문제가 생겨서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번엔 일어나지 못했다고.
“그래서 우리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구나.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선배는 자기의 건강 상태를 알고, 떠나기 전에 교회 완공을 하기로 마음먹고 더 열심히 모든 일들을 손수 처리했다고 한다. 이미 약해진 몸이 과로 때문에 더 빨리 망가졌지 싶다.
우리를 만났을 때 이미 다시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을 터인데 그렇게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다니. 나에게 선배는 구릿빛으로 그을린 건강한 얼굴에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던 사람으로 남았다.
일 년 후에 만나자고 한 우리들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일 년 후에 담양의 메타세쿼이아를 보러 가리라는 생각도 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선배는 아픈 몸을 이끌고 낡고 허름해진 교회를 새로 건축하여 하나님께 헌당하고자 했던 신과의 약속은 기어이 지켜냈다. 선배는 갔지만 햇살이 모이는 곳, 담양, 이름처럼 아름다운 그곳에 따뜻한 성소가 다시 태어났다. 선배의 분신 같았던 교회는 그곳에서 선배의 마음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선배는 자신의 혼이 담긴 교회를 신께 바치고 어쩌면 행복하게 갔을지도 모르겠다.
예배 안내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앞면에는 ‘30년 만의 재회’라고 쓴 타이틀에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사진이 실려 있고 뒷면에는 예배 순서가 있다. 서울에서부터 예배를 계획하고 순서지를 준비해간 친구가 선배 사인 받자고 제안한 덕에 순서 아래에 선배의 글이 남았다. 힘찬 필체 속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던 선배의 목소리가 담겨 나온다.
“여전히 청년인 사랑스런 후배 애란에게,
늘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도 힘을 내어 말해본다.
“네, 선배님, 이제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