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앙

by 고우니

성악 선생께서 새 악보를 주셨다.

“프랑스 노래는 처음이지요?”

“네.”

선생은 가사를 읽어 주면서 발음을 하는데 필요한 설명을 해 주신다.

“발음 기호에 있는 꼬랑지 모양은 비음을 섞으세요."

"입모양은 '오'로 하고 발음은 '으'고요"


집에 와서 악보를 펴고 녹음해 둔 것을 틀어 선생이 가르쳐준 발음을 듣고 따라 해 보았다. 영어, 이태리어, 독일어 노래들은 뜻은 몰라도 어느 정도 발음이 예측이 되었는데 프랑스어는 자음 묵음이 많고 모음도 변화가 많은 것 같고, 정말 예측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가사 아래에다 선생이 불러주는 발음을 받아 적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이렇게 가사 발음을 우리말로 전부 적어 본 건 처음이다. 그 나라 고유의 발음을 우리말로 적는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인 데다 더디더라도 그 나라 언어를 직접 보면서 발음을 해야 좀더 정확하게 익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부득이 표시해야 할 때도 발음 기호로 적어두곤 했다. 그러니까 이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자존심을 세우고 살았나 보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열어 노래를 찾았다. 노래의 가락이 범상치 않다. 비음이 섞인 부드럽고 감미로운 소리가 가락에 섞여 가슴을 울린다. 프랑스어에 딱 맞는 것 같은 게 역시 그 나라 언어에는 그 나라 곡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소리가 비음 섞인 소리인가? 선생이 말해 주셨던 비음을 생각하면서 가락을 따라가며 노래를 들었다.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들리지 않는 와중에 낯익은 단어가 연거푸 들린다. ‘라비앙, 라비앙~’. 라비앙이라고? 불현듯 전주에서 살던 시절 한때 자주 들렀던 음악 카페 '라비앙 로즈'가 떠오른다. ‘라비앙 로즈’ 뜻이 장밋빛 인생이라 했지. 프랑스 가수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이십 대 내내 술집 한 번 가 본 적 없이, 그렇다고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 채, 그저 그렇게 나의 젊음은 지나가 버렸다.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던가 하는 것은 언감생심,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지 않는 걸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격했던 집안 분위기에서 나의 활동 반경은 고작 학교와 집, 교회만 오가는 트라이앵글이었으니까. 거기에 대학원 졸업장도 받기 전에 결혼했으니.


그렇게 살던 내가 마흔 살을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가게 된 술집이 음악 카페 라비앙 로즈다. 카페 사장이 재즈 기타리스트에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사람이라 음악에 대한 조예가 매우 깊었다. 우린 카페 사장의 멋진 피아노 반주에 반해 너나 할 것 없이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망설이던 나도 어느 날부터 무대에 올라갔다.


대부분 저녁 식사 후인 데다 안주를 잔뜩 먹으며 수다를 떨다 부르는 노래라 잘했을 리 없지만, 화려한 피아노 선율과 친구들의 응원에 노래 솜씨가 부족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볍게 술을 나누며 어울리는 즐거움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몇 달 못 가 시들해져서 그만두었지만, 그 문화 충격과 즐거웠던 감정은 지금껏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과 만나면 당시 일들이 수다거리로 오르곤 한다. 특히, 술 한 방울도 못 마셔봤다는 내가 친구들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밀리지 않는 주량을 보여준 일은 빠지지 않고 등장이다. 무슨 일이든 알아야 욕심도 생기고 욕망도 생기는 거여서,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나는 결핍을 느끼지도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사람들이 젊은 날의 추억을 나누며 까르륵거릴 때에야 내가 무언가 놓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니까 나조차 알 수 없었던 나의 젊은 날에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혹은 환상을 그때 그 친구들과 함께한 것으로 치유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전에서 '라비앙'의 뜻을 찾아보았다. Reviens, Reviens, 돌아와요, 돌아와요. 어라, 인생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보는 의미로 찾아본 단어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 사전을 다시 열어 라비앙 로즈의 철자를 찾았다. 아, La Vie en Rose. 그러니까 전혀 비슷하지 않은 두 단어, ‘로’와 ‘르’의 중간 어디쯤으로 소리를 내야 하는 Reviens 과는 발음도 전혀 다를 두 단어를 혼동한 거다. 추억을 당겨오는데 무지가 한몫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고 아는 것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라지만 모른다는 게 항상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프랑스어를 잘 알았다면 닿지 않았을 추억을 꺼내 들고 지금에 비하면 많이 젊었던 내 사십 대를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 사실 돌이켜 보면 나의 사십 대 역시 놓치고 지나간 게 많은 것 같다. 조금은 더 나의 젊었던 시간을 더 화려한 장밋빛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나. Reviens, Reviens, 애타게 불러도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하기야 지나간 시간에 아쉬움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있을까. 그땐 그 나름의 최선이었던 게지.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순간순간을 나름의 장밋빛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새 날이 밝고 있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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