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 속의 발라드

by 고우니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쇼팽의 '발라드'가 들린다. 쇼팽의 곡은 서정적이며 애절하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함을 고루 갖춘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후대 사람들이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 말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아름다운 선율은 나를 열심히 피아노 치던 때로 돌아가게 했다. 여러 작곡가들의 곡들 중 특히 쇼팽의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피아노를 배울 때 쇼팽의 곡을 칠 수 있게 될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다가 드디어 쇼팽의 발라드가 담긴 피아노 책을 사던 날, 너무 기뻐서 누가 채어 갈세라 책을 두 팔에 꼭 안아 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새하얀 표지에 ‘CHOPIN’이라 적혀있던 까만 활자도 사랑스러워 손가락으로 철자를 따라 그려보며 행복해했다.


수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음악을 좋아하고 가까이했던 나는 시간이 흐른 뒤, 음악을 좀더 공부하기 위해 2년제 음악대학에 들어갔다. 2학년 2학기 졸업 연주곡으로 쇼팽 발라드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남들 앞에서는 글 한 줄만 읽으려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이 가빠지는 지독한 무대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쳐왔기에 제법 실력도 있었고 음악성도 부족하지 않은데 늘 긴장감 때문에 만족스런 연주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졸업연주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잘하고 싶었다. 연주를 위해 매일 몇 시간씩 매달려 연습했다. 그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는 무대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연주회 날, 마지막 연주자였던 나는 멋진 자태로 서 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다가갔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처음에 긴장하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편해진다는데 나의 경우는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불편함이 더 심해졌다. 페달 위에 올려진 발은 덜그덕 덜그덕 저 혼자 밟아대느라 정신이 없고 검은 건반이 위인지 흰 건반이 위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건반들은 눈앞에서 어지럽게 흔들렸다. 건반 위의 손가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의 새가슴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치고 있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내달리고 있는 내 손가락과 심장 박동 소리가 뒤엉킨 나의 연주는 클라이맥스에 가서 여지없이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열심히 준비했던 나의 졸업 연주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동안의 수고가 다 무너진 것 같아 내 얼굴은 흙빛이 됐는데 사람들은 잘 쳤다고 칭찬해 주었다. 정말로 내 피아노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겐 그런대로 괜찮게 들렸을까?


뒤돌아보면 얼굴 붉혀지지만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내친걸음에 공부를 더 할까 고민하다 멈추기로 했다. 내가 음악 애호가로서는 훌륭하다 칭찬받을 수 있겠지만 전문가로서의 기대치와 책임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수학 석사 백수인 내가 또 하나의 학위 꼬리표를 갖는 것보다는, 그냥 ‘피아노 잘 치는 수학 전공자’로 남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 곡을 무대에 올려서 연주하기까지는 여러 달이 걸린다. 그것도 꽤 열심히 해야 작곡가가 원하는 느낌을 흉내라도 내보는 정도다.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도 피아노는 항상 가까이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전문 음악인의 수고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한 학기에 한 번씩 연주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둘까 고민했다. 그때마다 나를 붙든 것은 좋아서 선택한 일조차 견디지 못한다면 남은 일생 동안 어떤 일도 새롭게 도전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나면 한동안은 그 곡을 다시 연습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그 곡이 생각나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연주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열심히 연습했던 곡이라 잘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어설픈 손가락과 기억력은 나를 실망스럽게 했다. 책을 펴고 몇 번 연습을 한 뒤에야 겨우 비슷한 느낌의 음악이 나왔다. 그 뒤 한참 동안 애쓰고 완성한 곡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해 자주 연습을 해서 기억의 끈을 쥐고 있었다. 그러다 새로운 곡들을 연습하며 잊혔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버려서 그 곡을 연주 때처럼 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피아노는 편한 마음으로 만나는 친구처럼 내 옆에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서로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때의 인연들은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친구들로 남아 있다.


모든 시간예술이 다 그렇듯 음악은 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오래전에 어떤 곡을 칠 수 있었다는 것은 단지 내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음악은 인생과 같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도 인생도 다 안타깝고 소중하다. 애잔하고 사랑스럽다. 녹음해 두는 것 같이 시간을 붙들어 놓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사진 속의 내가 지금의 나는 아니듯 음반 속의 나는 온전한 나일 수 없다. 오래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은 자신의 추억 속에 묻어두어야 할 듯싶다. 더 이상 좋은 곡을 연주할 수 없는데 내가 이런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면 지나간 세월 속의 자랑거리를 붙들고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은 연주를 반드시 해내야 했던 그때처럼 독하게 연습하지는 않아서 예전의 솜씨로 피아노를 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래도 나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나의 음악이 좋다. 나중에 더 많이 나이가 들어 손이 아프거나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도 딱 그만큼의 내 친구로 남아 있어 주면 좋겠다. 그때가 되어도 어린 손자 손녀들의 노래에 맞춰 동요 정도는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 둘 다 아직 학생이니 결혼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벌써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고 싶어 하니 나는 세월 가는 게 그다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발라드(Ballades)란: 서사시에 부드러운 선율을 붙인 가곡을 말한다. 악상과 형식이 자유롭기 때문에 노래를 듣는 듯하다. 19세기에는 대부분 피아노 소곡으로 만들어졌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발라드 곡 작곡자는 쇼팽, 브람스가 있다.

오랫만에 쇼팽 책을 꺼냈다. 이 멋진 곡을 다시 치기는 쉽지 않겠지. 하지만 피아노와 함께했던 그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나 가슴 속에 뜨거움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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