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도 없니?

by 고우니

TV를 돌리다 무심히 켜놓은 프로에서 나름 유명인으로 성공한 의사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난 꿈이 없었어요. 내가 의사가 되어있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을 학창 시절에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찌하다 보니 의대를 갈 수 있을 만큼 성적이 나왔고 그 당시 공부를 잘하는 이과 학생은 의대, 문과 학생은 법대라는 공식에 별반 거부감 없이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지요.”

세상에, 나처럼 사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꿈이 없이 살아도 의사도 되고, 만족한 삶을 산다면야 그리 나쁠 것도 없겠다. 하긴 나도 꿈도 없이 살지만 그런대로 자족하며 사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꽤 오랫동안 새 학년이 되면 선생들이 가정환경 조사서를 들고 와서 적어내게 했다. 그 항목들 중 장래 희망을 적어내는 칸은 빠지지 않고 있었다. 그 장래 희망이라는 것이 너무나 막연해서 꼬박꼬박 적어 내야 하는 일이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그 꿈이라는 것을 옆 친구가 써내는 것을 따라 적기 일쑤여서 짝꿍이나 친한 친구와 꿈이 대개 같았다. 한창 피아노를 배울 때는 피아니스트라고 쓴 적도 있었지만 사실 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우연히 S대 출신 피아니스트가 우리 옆집으로 이사 오는 바람에 시작했던 일이었고 매일 만나는 우리 엄마와 피아노 선생의 친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다갔다만 하고 있었으니까. 연습하는 것을 지겨워했던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나에 대한 우리 엄마의 꿈이 하나 없어지긴 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여전히 멈칫거렸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를 아껴주는 예쁜 수학 선생을 만난 덕에 일 년 내내 수학을 잘했다. 숫기 없던 나는 다른 선생들이 멀리서 오고 있으면 슬그머니 피하곤 했는데, 수학 선생이 잘 다니는 길목에서는 일부러 서성거리기까지 했다. 사실 수학을 좋아하거나 잘했던 게 아니라 단지 수학 선생이 좋았을 뿐이었는데 내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던 중, 동기들이 대학 교수가 되고 싶은 꿈도 없이 대학원에 가겠다고 입시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친구 장래 희망을 따라 적은 꼴이다. 그런 내가 좀 한심한 생각이 들어 교수께 찾아갔다.

“교수님, 졸업할 때가 다 되도록 대학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 같은 사람도 대학원 시험 봐도 될까요?”

“대학원 별거 아냐. 들어와. 너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갈 때 왜 가야 하는지 고민했니? 대학도 마찬가지일 걸? 그냥 자연스럽게, 기회가 되면 하는 거야.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애도 낳고 하듯이.”

“힘들지 않을까요? 저 아시다시피 공부 싫어하는데.”

“하나도 안 힘들어.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학교 나오면 되는데 힘들 일이 뭐 있대?”


나는 교수에게 속았다. 그것도 완전히 속았다. 수업시간도 얼마 안 되고 게다가 당신이 지도교수 해줄 건데 힘들 게 뭐 있냐는 말과 달리 막상 입학한 후부터 교수는 끊임없이 숙제와 발표를 시켜댔다. 졸업할 때까지 이 년 동안은 내 평생에 비추어 가장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시간으로 기억 남을 만큼 힘이 들었다. 대학원 다니는 동안 조교 생활을 했던 나는 졸업할 즈음 운이 좋게도 시간 강사를 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얻은 뒤에도 한동안 강의를 계속하다 어느 해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갈등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 강사를 무작정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나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그만두게 된 사실을 말했다.

“넌 남들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쉽게 얻으니까 귀한 줄 모르는구나. 사람들이 강의 몇 시간 얻어 보겠다고 얼마나 아쉽게 나를 찾아오는 줄 알기나 하니? 넌 강의를 하면서도 공부 더해서 교수가 되고 싶은 꿈이 안 생기든?”

교수의 얼굴에서 진하게 실망스러운 표정이 흘렀다.

“교수님. 그냥 대학원 오라 그랬지, 교수 되고 싶으면 오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민망해진 나는 어물쩍 농담으로 교수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박사과정 들어오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흘려버렸다. 시간 강사라는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사실 박사학위를 생각하긴 했다. 고민하고 있던 즈음에 많이 기다렸던 작은 아이를 얻게 되었고, 나는 공부보다는 아이 키우는 것이 더 좋았다. 하지만 교수한테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힘들어도 참아내며 일과 가정 두 가지 일을 다 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현실 속 내 앞에서 생글거리는 아이에게 내 모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미래의 교수에 대한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나에 대한 변명에 불과할지라도. 교수가 되기 위해서 강의를 계속하고 박사 코스를 밟았다면 전임 교수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확고한 꿈이 없었기에 그만둔 것에 대한 미련도 없다. 그 대신 나는 우리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주 가끔씩, 그때 교수가 한 말은 가시처럼 툭툭 튀어나와 허술하게 살고 있는 나를 찌르긴 한다.


꿈 없이 산다는 것은 뭘까. 어떤 사람들은 방향키도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방향키를 잘 잡고 자기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이 나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처럼 정처 없이 망망대해를 돌아다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신세계를 발견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아주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한 곳만을 향하여 방향키를 잡고 나갔더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글을 만나,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수필의 섬에 한 발을 디뎌 밟게 되었으니. 주어진 방향대로만 직진했더라면 글을 전혀 안 썼거나 쓰더라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는 길이 다르면 말하는 방법이 다르고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다를 터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된 것도 이 섬에 당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꿈은 지금도 여전히 꾸지 못하지만, 매일 마주치는 현실에서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꿈이 없으니 욕심도 없어서 무엇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도 없고 아쉬움도 없으니 자족하며 살면 그만이다.

이것이 “넌 꿈도 없니?”라는 질문, 나를 찌르는 가시에 대한 작은 항변이다.


나에게 꿈이란 언제나 아득하다. 지금, 걷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꿈이란 그저 걸을 수 있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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