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본 적이 있다. 걸어 다니기엔 좀 멀다 싶어 한 번 다녀온 뒤로 다시는 가지 않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정문, 후문, 아파트 단지 내까지 슈퍼가 세 개나 있어서 굳이 재래시장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사 년이 지나는 동안 아파트 주변은 큰 길이 뚫리며 사천여 세대의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상가들도 새롭게 단장되어 아주 말끔해졌다. 아파트 전세 계약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어느 날, 나는 근처 부동산 사무실에 들르느라 새로 지어진 아파트 건물들 사이를 지나 걷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자 시장이 아주 가까이에 보인다. 내친걸음에 시장까지 갔다. 오랜만에 들른 시장은 낯설었고 게다가 장보기를 할 생각이 없이 왔기에 호주머니엔 달랑 천 원짜리 두 장뿐이다. 돈이 없다 싶으니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면서도 관심이 가지 않아서 무심하게 스치며 걸어가는데 비좁게 나 있는 시장 골목길 한 곳에서 마늘을 까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마늘 사 가세요. 갈아도 드려요.”
“미안하지만 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네요.”
집에 마늘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났지만 어쩔 수 없지, 하고 지나치려 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필요한 만큼 그냥 가져가세요. 돈은 다음에 가져다주시면 돼요.”
“아니, 절 어떻게 믿고 그냥 준다 그러세요? 가진 돈이 이천 원밖에 없는데 그만큼이라도 주실래요?
설령 그 친절함이 상술이었다 할지라도 그 말에 감동해서 가진 돈을 다 털어 마늘을 샀다. 고작 이천 원일 뿐이었지만.
그 후 며칠이 지났다.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봄빛이 예사롭지 않다. 산책 삼아 시장 구경이나 하자 싶어 집을 나섰다. 지난번보다 시장 풍경이 낯설지 않아서 좋았다. 꼭 필요한 게 있어서 시장을 간 게 아니었기에 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다니다 딸이 좋아하는 딸기를 샀다. 물건들이 예쁘게 포장되어 잘 정돈된 진열대에 놓여있는 마트의 풍경에 익숙해져 버린 내게 좁은 시장 골목 사이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구경하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했다. 잠시라도 시선이 머문다 치면 가게 주인이 물건을 사라고 권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시선을 재빨리 돌려 가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아이들도 제 할 일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에 식사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시장 사람들에게 별로 좋은 고객이 아니다. 달랑 딸기 한 바구니 사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골목길 가운데에 반찬 대여섯 가지가 놓여있는 가판대 옆을 지나게 되었다. 상큼한 김무침 향내가 코를 자극했다. 내 시선이 멈춘 걸 느낀 할머니가 얼른 말을 건다.
“반찬 사 가세요. 내가 직접 만든 건데 맛있어요. 한 번 맛본 사람들은 수십 년씩 단골이라니까. 내가 이 자리서 장사한 지 삼십 년도 넘었거든.”
반찬을 사서 먹는 게 왠지 편하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한 부인이 깻잎 김치를 사 간다. 나도 사 볼까? 나만 반찬을 사려는 건 아니라는 위안이 살짝 든다.
“식구도 없는데.”
망설이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재빨리 말을 받는다.
“걱정 말아요. 조금씩도 파니까.”
이 시장 골목이 좋아졌다.
양손에 딸기와 반찬거리를 나눠 들고 돌아오는 길에 지난번에는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골목으로 들어섰다. 참기름을 짜주거나 고추를 빻아주는 집들이 모여 있다. 가게마다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드러나 보이는 기계들이 가게 안쪽으로 죽 놓여 있다. 미숫가루 가게 앞을 지나는데 주인아저씨가 말을 건다.
“미숫가루 들여가세요. 원하는 대로 곡식을 넣어서 직접 만들어드려요.”
가게 앞에 줄지어 있는 커다란 함지박에는 여러 곡식들이 가득 담겨있다. 나를 유혹하는 구수한 냄새들을 기분 좋게 맡으며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바로 옆 가게가 비어있다.
주로 채소나 과일들을 파는 앞쪽 골목과는 다르게 이 골목에는 빈 가게가 많았다. 나무쪼가리들과 뜯어진 상자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나뒹굴고 있고 다리가 삐뚤어진 채로 서 있는 테이블에는 먼지가 수북하다. 빈 가게들 사이로 드문드문 열려 있는 가게들이 위태해 보인다. 이 시장 골목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때 내 손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반찬을 담은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반찬으로 자식들 건사했겠구나.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장사했다는 할머니의 인생 한 자락이 내 손 안에 들려있다.
골목을 미처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내 시야에는 곧바로 딴 세상이 펼쳐졌다. 새로 길을 닦아서 노란색, 흰색 줄이 선명하고 진한 사 차선 아스팔트 도로 건너에 고층 아파트들이 키를 하늘 높이 치켜세우고 있다. 그 위풍당당함이 위협적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동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재개발된 덕에, 상가도 많이 생기고 밝아져서 좋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문득 시장 사람들이 걱정된다. 아직 동네 재개발이 끝나지 않았다던데 이 시장도 그 계획 속에 들어있을까? 시장 골목 한 귀퉁이에서 반찬 댓가지 놓고 장사하던 할머니가 높은 임대료를 줘야 하는 상가 건물로 들어가서 계속 장사를 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제야 뒤늦게 재래시장에 맛을 들인 나의 봄빛 나들이가 심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