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할 대로 해라

by 고우니

대학교 시절 활동했던 합창단이 벌써 창단 50주년을 맞이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50주년 행사인 만큼, 1박 2일로 진행한다고 했다. 내 입단 기수가 15기인데, 벌써 35년 세월이 흘렀다. 반가운 마음에 일단 왕복 기차표를 예약해 두었다. 이번 기회에 친구들도 만나고 엄마도 뵙고 와야겠다.


행사 날이 두 주쯤 남았을 때 다시 문자가 왔다. 버스를 대절해 놓았으니 12시까지 종합경기장으로 오라고 한다. 다들 애쓰는구나. 그런데 12시면, 딱 교회에 있을 시간이다. 하루 정도는 결석할까 싶은 마음이 들다가 ‘에이, 그럴 순 없지.’로 돌아온다. 대학교 시절에 합창단원이었듯, 지금은 성가대원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 빠진다고 성가대에 무슨 대단한 영향이 있을까만, 그래도 기왕 하고 있는 일에 성실해야지 뭐. 이건 하나님 사랑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사람과의 약속 때문이다.


행사 날 아침, 예정대로 교회에 다녀온 후 홀로 길을 나섰다. 전주역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 순희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냥 교회 빼먹고 같이 버스 타고 오지 그랬어. 진짜 재미있었을 텐데. 따로 차비도 안 들고. 암튼 하나님이 너 엄청 예뻐하겠다.”

“그러게나. 예쁘니까 하나님이 기차 값 맘껏 쓸 정도는 주시겠지?”


행사장에 도착했다. 사실 너무 오랜만이라 누가 과연 나를 맞이해 줄까, 내가 누구를 보고 반가울까,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선배가 손을 번쩍 들며 반갑게 맞아준다. 선배는 가판대에 연잎 차와 다과 등을 놓고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있었다. 슬며시 배도 고프던 차에 가판대 옆에 서서 차와 과자를 먹으면서 선배와 같이 사람들을 맞이했다.


축사와 내빈 소개를 마치고 지난 50년 동안 합창단 활동 모습이 동영상으로 화면에 띄워졌다. 한창 꽃피던 젊은 날의 선배 후배들이 화면 속에서 튀어나온다. 이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같이 꾸민 무대다. 관객석에 앉아 바라보는데 예전에 함께 노래했던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드레스도 예쁘고 표정들도 하나같이 화사하다. 저 설레는 기분 나도 알지 싶고, 나도 같이 무대에 설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싶고. 내 앞자리에 앉아있는 후배도 꼬마 아들에게 뭐라 귓속말로 무대에 있는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웃는 것이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싶다. 옆줄에 꽃다발을 들고 앉아 무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남자의 표정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아내가 무대에 서 있나 보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회장 옆 건물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관객들도 거의 합창단 회원과 가족들이었기에 오백 명 남짓의 사람들 대부분이 식사를 같이 했다. 꽤 질서 정연 했지만 많이 북적여서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자연스럽게 우리 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몇몇 남자 동기들이 기왕 줄 선 김에 많이 가져오겠다고 나서 주어 나와 여자 동기들은 가져다준 음식을 편히 먹게 되었다. 음식을 가져다 나르기 바쁜 친구, 자칭 새치기 선수라며 재주껏 음식을 들고 자리에 앉는 친구 등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다. 우리는 서로를 챙겨주면서 오랜만에 맛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자리가 정돈되고 행사 시작을 알리는데, 벌써 시간이 열 시다. 엄마 집에 가야 하는데….


사실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 엄마께 전화할 때 넌지시 늦어질 것 같으니 주최 측에서 마련해 둔 숙소나 최근 집을 사서 독립한 싱글 친구 집에서 자면 어떨까 한다는 말을 했다.

“너 편할 대로 해라.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할 대로 하고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걸려서 그냥 엄마 집에 가겠다고 했다.

일어날 마음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민이가 한마디 한다.

“섭섭해서 어떻게 해. 그러니까 전화하지 말고 그냥 오지. 낼 아침에 일 있어서 다니러 왔다고 들러도 될 걸.”

“그럴까 했었지. 그런데 차마 그렇게 안 되더라고.”

언제 나갈 건지 묻는 민이에게 “삼십 분 후.”라고 말하고 딱 삼십 분이 지난 뒤, 이제 막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너스레가 물이 오르기 시작할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희가 데려다주겠다며 같이 일어섰다.

민이가 잘 가라는 인사를 해주며 한마디 한다.

“아쉽지만 잘하는 거야. 부모님께 효도하는 이애란. 복 받을 거야.”


복은 무슨…. 억지로 일어나는 자리인데. 이런 억지 효도도 복을 받을 수 있나? 복을 언제 받아? 벌써 내 나이가 몇인데…. 언제 자유로워지고? 대학생 때도 합창단 연습이 끝나면 단원 대부분이 남아 가벼운 뒤풀이를 했다. 그때도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엄마가 걱정할 일이 부담스러워 뒤풀이 한번 참석 못 했는데 지금까지 여전하다. 몸은 이미 행사장과 멀어져 주차장에 다 와 가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꽁시랑이다.

“내일은 어떻게 갈래? 12시에 버스가 출발한다던데. 버스 타고 갈 거 아니면 전화해. 내가 역까지 태워다 줄게.”

“기차 예약해 뒀어. 오랜만에 왔는데 엄마한테 효도는 좀 하고 가야지. 그렇게 일찍 훌렁 가버리기 그렇잖아. 하나님께 충성, 부모님께 효도다.”

엄마 집에 도착했다. 반가워하는 엄마를 보며 뒷풀이 안 하고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다. 엄마와 함께 시원한 계곡에 다녀오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목에 있는 둘째 오빠네 아로니멜라 농장에도 들르고 전주에서 다니던 교회의 어른도 잠시 찾아뵙고. 엄마는 내내 밝은 표정을 짓는다. 좀 더 있다 가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일이지 싶다. 이러니 언제나 내 아쉬움은 뒤로 밀릴 수밖에.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전주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아들 딸 모두 나더러 답답하단다.

“엄마,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런 모임이 있어서 전주에 가면 말하지 말고 조용히 놀고 와. 아니면 아예 하루 더 묵고 오던가. 친구들이랑 실컷 놀고 할머니하고도 충분히 시간 보내고.”

“얘, 차마 말없이 다녀오는 건 못하지. 그리고 니들 다 컸다지만 그래도 난 얼른 돌아와서 니들 챙겨주고 싶은 걸?”

“아이고. 우리 엄마 못 말려.”

“그럼 너희들은 나중에 엄마 안 챙기고 몰래 놀다 갈 거임?”

“응!”

“응!”

둘 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힘차게도 대답한다. 에휴! 그래. 그렇게 해라. 진심으로, 정말로 진심으로 너희들 편할 대로 살아라.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런데 문득, 우리 엄마도 내게 그렇게 똑같이 말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엄마의 그 말도 나처럼 정말 진심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전주에 몰래 놀러 가 볼까?

아마도 영영 그런 일은 없겠지. 어쩌겠나. 답답해도 이게 나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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