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쏟아붓던 장대비가 멈추고 가는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아침이 되자 날이 개었다. 다행이다. 엄마 때문에 나서는 길인데 날이 좋지 않았으면 엄마가 또 얼마나 불편해하셨을까.
며칠 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더는 혼자 사는 게 버겁다고 요양원 가겠다고 하시네. 마침 TV에서 요양원 소개하는 걸 보셨는데 목사님이 운영하신다나 봐. 괜찮은 것 같다고, 한번 가보고 싶으시대. 일단 가보기는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나에게는 별말씀 없으셨는데. 반대할까 봐 그랬나? 엄마는 누구에게든 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신다. 그건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동생네 근처에 사시면서도 동생 내외가 드나들며 반찬거리나 청소를 도와주는 것도 미안해하신다. 그러니 동생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예 엄마에겐 고려 대상조차 될 수 없다.
나는 엄마께 전화했다.
“벌써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혼자가 편해. 다 늙은 노인이 젊은 사람들 불편하게 하면 되겠냐. 요양원에 일인실 있다니까 어떤지 한번 가 보자.”
엄마의 의지는 확고했다.
동생네와 요양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서울을 벗어나서 한적한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길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가 많이 온 뒤라 한여름의 짙푸른 나무들은 한껏 물을 머금어 더욱 풍성했고, 하얀 거품을 내며 흐르고 있는 물줄기가 신선했다. 나는 이런 길을 참 좋아해서 마음속에 번민이 생기면 길을 나서곤 했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를 옥죄던 답답증들이 사라지고 어느새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지금은 번민이 씻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번민이 쌓인다. 차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이 먼 곳에 엄마를 모신다는 게 맞는 걸까?
포천에서도 한참을 더 지나서야 요양원 안내판이 보였다. 간판을 확인하고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높은 비탈길이 나타났다. 잠시 머뭇거리는데 동생이 주차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도 주차할 곳을 찾으며 앞에 있는 건물들을 올려다보았다. 산의 중턱까지 이어지는 비탈길 사이에 드문드문 건물 몇 채가 들어서 있다. 이런 급경사지에 요양원이라니. 나는 비탈을 오르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평지로 내려가 주차했다.
“누나, 잘 왔어?”
“응. 지금까진. 근데 이 비탈길은 당혹스럽다. 요양원이 저 위라는 거잖아.”
“사무실 직원이 저 건물로 오라네.”
동생이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봤다.
“에휴, 엄마가 걸어서는 절대 못 갈 길이네. 차로 가야겠다. 괜찮아? 내가 운전할까?”
“내가 해야지.”
나는 동생네 식구와 엄마가 타고 있는 동생 차에 끼어 앉았다. 동생도 경사진 길을 운전하기가 부담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사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원장이 나와서 안내를 해주었다. 모든 방들이 좀 작긴 했지만 일인실이다. 매일 아침 예배가 있고 요양원 내에 교회가 있어서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단다. 교회로 들어가 보았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엄마는 편히 교회에 다닐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흡족해하셨다.
“가서 생각해 보고 마음 결정되면 연락드릴게요.”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상념들을 담아둔 채 요양원을 나섰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근처의 음식점을 찾아갔다.
“돈은 내가 낼게. 나 때문에 시간 뺏기고 수고했는데 밥이라도 내가 사야지.”
엄마의 선언이다.
“아이고, 엄마. 어르신한테 밥값 내게 하면 남들이 욕해요.”
얼추 식사가 끝나갈 즈음 동생이 카드를 들고 일어서더니 이내 계산을 마치고 돌아왔다.
“벌써 계산했어? 내가 사려고 했는데….”
“아니, 이거 엄마가 준 카드야.”
암튼 대단한 엄마에 대단한 동생이다. 동생은 효도란, 엄마가 하고 싶으신 대로 따르는 거라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돈을 내겠다고 하시면 내게 해드리는 게 효도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엄마는 형제들 중 동생을 제일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일 게다.
“엄마, 그럼 커피도 사주라. 이런 예쁜 곳에 와서 분위기 좋은 카페 한 곳 안 들르고 간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
“그래. 그러자.”
우리는 산정호수에 들러 가벼운 산책을 하고 카페에 갔다.
차가 멈추자 엄마는 동생 차에 있던 트렁크를 내 차로 옮기라 하셨다.
“형님, 어머니가 트렁크를 챙기시기에 형님 댁에 며칠 계시려나보다 했더니, 형님한테 줄 옷가지 몇 개 챙겼다고 그러시네요.”
아무튼 못 말리는 우리 엄마. 이번에 요양원 들어가면 다시는 안 나올 요량으로 짐을 정리하고 있다더니 옷까지도 남김없이 버릴 작정이신 게다. 짐을 옮긴 뒤 카페에 들어가 잠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자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아직 건강하신데 벌써 요양원이라니. 미안함과 불편함이 오는 내내 계속되었다.
이튿날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요양원 가지 말고 우리 집에 와있으면 안 될까? 정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면 되잖아.”
전 같으면 말도 못 꺼내게 펄쩍 뛰었을 엄마가 얼른 대답을 안 하는 것이 마음이 흔들리시는 게 분명하다.
“우리 둘 다 아주 편하진 않을 거야. 가급적 각자 알아서 사는 걸로, 어때?”
“그래볼까~?”
며칠 들러 가신다면야 상관없지만 오래 계시려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 드려야 할 텐데….
마침 아들이 집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아들에게도 물어본다.
“할머니랑 같이 살면 어떨까?”
“나야 대찬성이지. 그럼 방을 어떻게 해야 하나? 피아노 방에 있는 책장만 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책장은 내 방으로 옮겨 넣고, TV 한 대 사서 이쪽으로 놓고.”
아들은 방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네 방이 답답해지지 않겠니?”
“좀 좁아지기야 하겠지만 괜찮아. 이쪽이 비어 있으니까 여기 두면 될 것 같아.”
나는 아들 방으로 가서 어림으로 벽면을 재어봤다. 충분하겠다.
“세 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서재를 갖는 게 소원이라는 친구도 있는데, 네 방이 딱 그렇게 되겠네.”
엄마께 전화했다.
“엄마 방 준비해 둘게.”
“아이고, 그러지 마라. 절대 나 때문에 뭐 하지 마. 가더라도 얼마나 있을 거라고. 게다가 아직 네 집에 가겠단 결심 못 했어, 집에 와서 생각하니까 요양원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옴짝달싹 못 하겠다 싶은 게, 징역살이가 따로 없겠더라. 갑갑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서 잠시 그럴까 했던 것뿐이야.”
이제 못 이기는 척 자식한테 기대도 좋을 것을…. 나는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을지, 엄마와 같이 살겠다고 한 나의 말이 진심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분명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보아도 진심이다.
그런데 그게 나를 위한 일인지, 엄마를 위하는 일인지는 좀 헷갈린다. 내가 엄마를 모시는 게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사실 우리 집에 오시라고 한 건 엄마가 벌써 요양원에 가시는 것을 내가 볼 수 없어서다. 그러니까 순전히 나 편하자고 했던 말이다. 엄마도 나도 둘 다 워낙 독립적으로 살아온 데다 그리 살가운 편도 아니어서 분명 혼자 계실 때처럼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셔서 오히려 객처럼 겉돌지도 모른다. 엄마가 주인이라고, 아무리 마음대로 하시라 해도, 설령 엄마한테 안방을 내어드린다 해도 그것은 엄마를 더욱 불편하게만 할 게 틀림없다. 괜스레 서로 상처받고 사이만 나빠지면 어쩌지? 우리 집으로 모시는 것이 엄마를 정말로 위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접어두고 일단 책장을 옮겼다. 책장 아래 손이 닿지 않았던 곳을 걸레로 힘주어 닦고 부산스레 청소를 다 마쳤는데, 이상하다. 커다란 책장 두 개가 빠져나갔는데도 방이 영 좁게 느껴지는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 방에 엄마를 모셔도 되는 건가? 위풍당당하던 이 층 양옥집의 ‘안방마님’이었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얼마 지난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평지에 있는 요양원 다시 알아봐놨다. 가서 잘 살고 있을 테니 내 걱정 말아라.”
엄마 목소리는 밝으면서도 단호해서, 그 결심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엄마가 원하는 걸 해드리는 게 맞겠지. 그것이 엄마를 위한 일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쿡쿡 찌르는 것처럼 쓰렸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나 역시 밝게 대답했다.
“그래요, 내가 자주 갈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