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줘서 고마워요

by 고우니

친구 아들의 결혼식 날, 여유롭게 길을 나서긴 했지만 예식장에 도착한 시각이 너무 일렀다. 친구 부부와 신랑을 만나고 신부에게 인사를 마쳤는데도 예식이 시작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앉아있을 만한 곳도 없어 홀을 서성거리다가 홀 저쪽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나온 데다 시간도 일러서 예식만 보고 올 작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큰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하고 있는 한 부인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도 나처럼 혼자 온 모양이다. 나는 음식 접시를 들고 그 부인이 앉은 테이블로 가서 앉으며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부인은 마침 잘 되었다는 듯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어느 쪽 하객이세요?”

“신랑요.”

“그래요? 난 신부 쪽이에요.”

부인은 신랑이 키도 훤칠하고 잘생겼더라고 칭찬을 한다. 신부도 인물도 좋은 데다 유명 대기업 과장이란다. 신랑 신부 신상 이야기가 얼추 끝나고, 결혼할 때 마음과 똑같이 살면 불행한 부부는 없을 거라는 둥 인생 이야기까지…, 처음 만난 사람과 예의로 몇 마디 나눈다고 하기엔 수다가 길어지고 있다. 나도 심심하던 차여서 장단 맞추며 듣고 있는데, 문득 그녀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난 남편하고 잘 맞아서 참 좋아요.”


그녀는 남편과 행복하게 살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행복론에 섞인 남편 자랑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왜 굳이 만난 지 5분 된 나를 붙잡고 자랑을 할까. 이 부인은 어떤 결핍이 있는 건 아닐까? 은근 심사가 꼬이는 게, 결핍은 내게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접시가 비었다. 음식을 더 가져와야겠는데…. 이러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나가겠다. 나는 음식을 가지러 가야겠다는 몸짓을 했다.

그때, 이제껏 힘주어 이야기하던 부인의 목소리가 맞나 싶게 가느다란 소리가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행복하게 살려면 누군가 져 줘야 해요. 우리 남편이 너무 강해서 내가 평생 져줬거든요.”


나는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잘 맞아서 좋은데 평생 져줘야 했다고? 부부가 투쟁 상대는 아닐 터이니 누가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 잘 맞는 거와 평생 져준다는 게 의미가 같을 수 있나? 그러면서 행복한 게 가능한가?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다.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땐 낯선 사람들하고 몸 부딪혀 가며 다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몹시 불편했다. 반듯이 앉아 앞만 보고 가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노부인이 말을 걸었다.

삼십 분이 넘는 시간 대부분을 노부인은 자기 자식 공부 잘했던 이야기와 성공한 이야기, 며느리 사위 잘 얻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얼굴엔 자부심이 흘렀다. 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최대한 예의 갖춰 듣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왜 하나,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던 노부인이 혼잣말인 듯 문득 한마디를 흘린다.

“이제 모두 제 살길 찾아 떠나고…, 집에 들어서면 아무도 없어요.”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해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이제 다 왔다며 노부인이 일어섰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노부인이 한 걸음 앞으로 가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내게 살짝 몸을 기울이고 내 손등에 손을 얹으며 나지막이 한마디를 건넸다.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는 그저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해 무성의하게 흘려들었을 뿐인데. 노부인의 외로움이 그제야 느껴졌다. 자기가 잘못 산 게 아니라는 위로, 혹은 확신을 누군가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받고 싶은 것이었던 걸. 그 후로 한동안 지하철을 타면 ‘말 들어줘서 고맙다던’ 노부인이 생각나곤 했다.


이 부인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겨우 가져온 접시가 다 비도록 부인의 남편 자랑을 들어야 했다. 이 부인도 말을 들어줘서 고맙단 생각을 할까? 하긴, 그러고 보니 나도 요즈음 친구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수다가 끊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모임이 끝날 때쯤에야 문득 너무 말이 많았나 싶어 후회하고, 그러다 혹 실언이라도 했다 싶은 날엔 집에 돌아오면서 발등을 찍곤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인가?


시간이 되어 식장으로 들어갔다. 행복하게 활짝 웃고 있는 신랑 신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 아이들은 아무나 붙들고 말을 하고 싶은 날이 오지 않기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했다.

(2020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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