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들어와 책장을 들여다보았다. 책장 안에는 수학 책들이 가득하다. 삼십 년이 넘도록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내 전공 책들이다. 매사에 미련이 많은 편이 아닌데 유독 이 책들은 버리지 못했다. 나의 가장 좋았던 날들을 통째로 버리는 것 같아서다. 사실 이사 할 때를 제외하고, 아니 이사할 때조차 이삿짐센터 직원이 대강 책꽂이에 끼워주고 가면 다시 정리를 조금 했을 뿐 거의 손을 댄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책장 안에 눈길이 닿으면 나는 그나마 열심히 살았다 싶은 내 젊은 날의 추억을 붙들고 행복해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책을 버려야겠다는 생각도 같이하긴 했다. 젊은 날의 추억을 붙들고 살기에는 내 나이도 많아졌고 집도 줄여야 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 이사 때까지는 버릴 생각이 없었는데…. 책들을 만지작거리며 옛 추억을 되새기다 마침내 결심했다.
‘버리자. 이만하면 오래 간직했지, 뭐.’
책장 앞에 섰다. 그런데 막상 책을 꺼내려니까 또 섭섭하다. 마음을 다잡고 사진을 찍었다. 여기저기에 사진을 올리며 ‘내 젊은 날과 이별을 고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아쉽다는 친구, 왜 버리냐는 친구, 시원하다는 친구들까지 역시 자기의 스타일대로 반응이 왔다.
드디어 책장을 비우기 시작했다. 맨 윗줄에 있는 내 논문을 꺼냈다. 이제는 다 잊어버려서 그걸 쓴 나조차 읽기 어려운 책이다. 영어로 쓴 본문은 말할 것도 없고 맨 앞장 한글로 된 요지문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거 한 권은 놔둘까? 마지막 미련이 끝내 나를 붙들어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두기로 했다. 그 옆에 있는 원서들도 꺼냈다. 수학과인데 웬 원서로 수업을 했는지 몰라. 책을 꺼내면서 책갈피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내 문제풀이 메모쪽지나 친구들이 보내 준 엽서들을 챙겼다. 하나하나 읽어보며 책을 꺼내자니 책을 꺼내 놓는 것만 해도 시간이 길게 걸렸다. 그러다 노트 사이에 몇 겹으로 접어진 채 꼽혀있는 빛바랜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모퉁이가 누렇게 변색되고 접힌 부분에 스카치테이프로 다시 마무리를 한, 도화지 세 장을 이어붙인 것보다 더 큰 종이다. 내가 종이 한 면을 열자 모퉁이에 겨우 붙어 달랑거리던 스카치테이프가 부스스 떨어져 나왔다.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쳤다.
유안진의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전문이다. 한때 이 수필 엄청 유명했는데. 책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도 이 글이 들어있는 책을 사서 읽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읽어주기까지 했다. 이런 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고, 어떤 친구가 이런 친구일까 생각하며 주변에 있던 친구들을 저울질했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기를 소망했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서 쓴 정갈하고 반듯한 필체다. 그런데 이걸 누가 써줬지? 이걸 언제 받았을까? 죽 아래로 눈을 내렸다. ‘천구백팔십 육 년 사월 오일, 애란이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여’ 그러니까 1986년 내 생일 선물로 써주었구나. 그땐 내가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면서 막 강의를 시작하던 때다. 그때의 내 상황이 그대로 펼쳐지는데 도무지 이 글을 써준 친구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누구더라. 나에게 이런 선물을 해줄 친구가. 내 이름은 제대로 써놓고선 자기 이름은 이니셜로만 쓰다니. 써준 사람을 기억해 내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그러다 문득, 기억 속에 한 얼굴이 떠올랐다. 맞아, 그 친구다. 무척이나 책 읽기를 즐기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메모할 노트를 항상 손에 지니고 있었지. 필체도 좋았고 글씨 쓰는 것도 좋아해서 펜글씨나 붓글씨로 예쁜 엽서에 시를 써서 나눠주곤 했다. 그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을까?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걸 알면 깜짝 놀라고 반가워해 주었을 것을. 아차, 그런데 그는 직장동료라 애란이라고 불렀을 리가 없다. 친한 동료끼리도 호칭은 선생님이었으니까. 특별히 이름을 불렀을 만큼 친하게 지냈을까? 자신 없다. 그럼 누굴까? 대학 동창들 얼굴을 쓱 머릿속에 펴본다. 수학과 친구 중에 누가 글씨 쓰고 수필 읽는 걸 좋아했을까. 어느 한 친구가 어른거리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다시 한번 종이를 펼쳐 들었다. 이렇게나 정성스럽게 글을 써 준 사람을 기억조차 못 하다니. 너무나 미안해서 또다시 이니셜을 보고 추정을 하느라 애썼지만 내 머릿속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기억해 내는 건 무리다. 나의 무심함을 탓하다가, 세월을 탓하다가. 그런데, 그 친구도 지금쯤 나에게 이런 글을 써 준 사실조차 잊었겠지? 싶어서 미안함을 슬며시 서로의 망각 속에 구겨 넣었다. 적어도 그 시절의 우리는 지란지교를 꿈꾸었다는 것으로 혼자서 급한 마무리를 지었다.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설령 억지로 기억해 내고 그 친구를 찾아 다시 만난 들, 잠시 반가울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젊은 날을 기억해 내는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을까. 서로를 위한다는 건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젊은 날의 어느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고 이제는 잊음으로써 서로에게 자유로워진 것이다.
내 젊은 날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수십 년 동안 책을 끌고 다녔는데, 정작 그때를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보냈다.
책을 꺼내는 시간이 짧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