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해 전부터 추석 명절에 넷째 시숙께서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식구들이 모인다.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내가 결혼한 지도 서른 해가 넘었고 모두들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화제가 우리가 죽은 다음 산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로 흘렀다.
문득 시누이가 한마디 한다.
“난 장 씨 집안에 묻히고 싶지 않아. 장 씨 문중에 안 들어갈 거라고. 내가 죽어서까지 장 씨한테 휘둘려야겠어?”
막내로 오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살아온 시누이다. 오빠들 앞에서, 남편과 시댁을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투정을 한 것이다. 목소리도 밝고 호탕한 성격의 시누이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당당해 보인다. 오빠들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웃어준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의 입에서 나도 모르게 짧은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갔다.
“나도”
순간 식구들의 표정이 멈칫한다. 아차,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시댁 식구들이 편하다고 해도, 시누이가 제 오빠들에게 투정하는 걸 내가 따라 하고 말았으니…. 나는 무슨 말이라도 변명을 덧붙여야 했다.
“뭐, 대부분 여자들은 그러지 않을까요?”
쌩하고 바람이 부는 분위기와 묵묵부답. 처음보다 더 냉기가 도는 것이 이걸로는 사태 해결 부족이다.
“아니 그냥, 좋고 싫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죽어서는 살아있을 때와는 뭔가 다르게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 그러니까 훨훨 바람에 날아다니고 싶다거나 먼바다를 떠다니고 싶다거나….”
변명하려다 보니 말이 두서없이 길어진다. 시누이에게 눈길을 보내며 SOS를 청했다.
“그치?”
“그럼~, 우리 죽어서나 자유롭자고.”
다행이다. 그러는 사이 이야기의 주제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그게 내 진심이었나? 그게…, 아마도….
2.
젊은 친구들이 명절에 친척집에 가길 싫어하는 이유는 어른들의 고정적인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취직하면 결혼해야지, 결혼하면 애 하나는 낳아야지, 애 하나 낳으면 둘은 있어야 외롭지 않지…. 그 모든 것을 다했다 해도 새로운 잔소리들이 관심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어 계속되지 않을까.
이번 추석의 고정 잔소리는 시누이의 입에서 나왔다. 결혼이 늦어지고 있는 딸을 향한 타박이다.
“에휴, 네가 결혼 못 하고 있으니 내가 속이 타서 죽겠다. 내년에도 결혼 못 하면 나는 죽어버리고 말 거야.”
“잔소리는 엄마만 할 테니, 다른 사람은 잔소리하지 말라는 경고인 거지?”
나의 말에 열을 올리던 시누이와 옆에 있던 조카가 까르르 웃는다. 시누이는 딸이 일에 묻혀 사느라 데이트할 시간도 없으니 어디 결혼이나 할 수 있겠냐는 하소연이다.
조카 나이가 어느덧 서른 초반이 되었다. 조카는 웬만한 배우 뺨치게 예쁜 외모에 외국계 회사에서 꽤 많은 보수를 받으며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 또 승진까지 했단다.
“아까워서 결혼을 어떻게 시키려고. 인물 좋고, 능력 좋고.”
나는 진심으로 말했지만 시누이의 얼굴엔 걱정이 한가득이다.
우리 교회 성가대에 예쁘고 멋내기를 아주 좋아하는 서른 넘은 아가씨들이 여럿 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결혼을 했더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모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결혼하는 건 일단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가야 하는 거라, 자기를 꾸미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예쁜 시간을 마감해야 한다는 건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정말 결혼은 예전과는 다른 생활을 인정하고 양보하며, 때론 희생해야 하는 것을 감수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결혼하라고 등 떠밀 생각은 없어. 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지. 감당할 수 있을 때. 뭐 안 해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고.”
내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건 지금은 진심이다.
“와. 숙모, 쿨한데요?”
조카가 만족해하면서 웃는데, 옆에 있던 큰집 조카가 곁에 있던 자기 아이들을 무릎에 끌어 앉히며 말을 한다.
“이구, 작은 엄마. 혼자 살면 외로워서 어쩌라고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마디가 쓱 튀어나왔다.
“결혼했다고 외로움이 없나?”
“헐~ 숙모. 술 한 잔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조카는 진짜 술을 가지러 일어날 태세다. 아차!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뱉은 거지? 또 실언이다. 소파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시어른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는 게 느껴진다. 이걸 또 어떻게 주워 담나….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내 말은, 인간이란 원래 외로운 존재라는 거지. 외로움은 근원적인 거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는 없다, 뭐 이런…. 다 그렇지 않나?”
시어른들의 얼굴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표정이 흐른다. SOS를 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대충 내 말에 고개 끄덕여주던 시누이도 안 보이고…. 마침 조카가 과일을 가져오려고 일어나려는 걸 굳이 앉히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 다행이다. 시댁에 와서 외로움 타령이라니, 아무래도 나는 시댁이 너무 편한가 보다.
그나저나 그게 내 진심이었나? 그게…,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