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엄마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인 것 같아. 우리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자. 가능한 빨리. 어쩌면 이제 엄마한테 여행이 의미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동생의 제안에 곧바로 1박 2일 강촌 여행 일정이 잡혔다. 구곡폭포 아래 식당에서 만나 이른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약속해 둔 음식점으로 갔다. 동생네 세 식구와 엄마가 막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는 중이다. 식당 주인 할머니가 동생네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동생네가 자주 들르는 집이란다.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응.”
딸이 엄마를 껴안으며 살갑게 인사를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단답형이다. 손녀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 얼핏 미소가 떠오르나 싶다가 곧 무표정해진다. 딸과 나는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았다. 푹 고아진 닭백숙이 일품이다. 주인 할머니는 우리가 엄마를 모시고 온 걸 아주 대견해하면서 자꾸 먹을 것을 더 가져다주신다. 연세가 아흔다섯에 투석한 지 삼십오 년이나 되었다는데, 걷는 게 약간 불편해 보일 뿐 말소리나 표정에 힘이 있다. 당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잘 먹는 걸 보는 것이 즐거워서 지금껏 일을 계속하신단다. 마음 써 주시는 게 고마워서 배가 부른데도 가져다준 접시들을 다 비웠다.
식사를 마친 후 리조트로 갔다. 동생이 해가 남아있을 때 멋진 곳을 보여주겠다며 산책하자고 한다. 리조트 건물을 지나 조금 걸었다. 조경이 잘 갖춰진 제법 큰 규모의 공원이 보인다. 공원 가운데 있는 호수에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사이좋게 내려앉아 있다. 호수를 따라 나 있는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어느 결에 옆에 온 딸과 팔짱을 끼었다. 몇 걸음 앞에서는 올케와 조카가 손에 깍지를 끼고 도란거리며 가고 있다. 뒤를 돌아보았다. 저만치에서 동생이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엄마 걸음에 맞춰 느리게 걸어오고 있다.
“그림 좋다. 각자 자기 엄마들 잘 챙기고 있네.”
엄마를 동생에게만 맡겨두나 싶은 마음에 괜스레 너스레를 떨었다.
산책을 마치고 리조트로 들어왔다. 마주 보고 자리 잡은 숙소 두 개 중 하나는 동생네가, 다른 하나는 나와 딸과 엄마가 쓰기로 했다. 잠시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 숙소로 들어갔다.
나는 침대 사용이 어려운 엄마를 위해 거실에 얼른 자리를 폈다. 엄마는 자리에 눕더니 이내 잠이 드셨다.
잠시 후 동생네가 왔다. 올케가 챙겨온 과일과 과자를 식탁에 늘어놓고 앉았다. 가끔씩 우스갯소리도 하고 까르륵 대기도 했지만 대부분 엄마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 눈이 갑자기 잘 안 보인다는 엄마의 말에 동생이 병원으로 모셨다. ‘거대세포동맥염’이라나,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병이다. 곧바로 입원하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엄마는 결국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아직도 수시로 열에 들뜨거나 기력을 잃으시고 염증 수치도 높아 다른 눈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마음도 심란하고 수시로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느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녘에 설핏 잠이 들었나 싶은데 어느새 아침이다. 느리게 몸을 일으켜서 거실로 나갔다. 곤히 주무시고 계신 엄마를 살폈다. 상태가 더 나빠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다행이다.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밤새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듯하다.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엄마가 일어나 계시기에 목욕할 건지 여쭈었더니 좋다고 하신다.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씻어 드렸다. 연세가 드셔도 꼿꼿하기가 젊은 사람들 못지않았던 엄마의 등이 언제 이렇게 구부정해졌을까. 굽은 등을 따라 내려가는 나의 손이 뿌옇게 흐려졌다. 목욕을 마치고 대강 옷을 입혀 드린 뒤 탕 밖으로 나오시게 하려는데 도무지 일어나지 못한다. 결국 동생이 와서 힘을 보탠 후에야 겨우 나오실 수 있었다. 엄마께는 목욕도 무리였나 보다. 거실로 돌아온 엄마는 쓰러지듯 자리에 누우셨다.
아침 식사하러 갈 시간이다. 엄마를 살펴보던 동생이 말했다.
“내가 남을 테니 얼른 식사하고 와. 엄마가 식당에 다녀오는 건 어려울 것 같네. 먹을 것 있으니까 일어나시면 엄마 챙겨드리고 나도 먹을게.”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식당으로 가면서도 발걸음이 무겁다. 그런데 맛깔스럽게 잘 차려진 뷔페 음식을 보니 언제 그랬나 싶게 식욕이 인다. 야채볶음, 불고기, 연어회 등 음식들을 맘껏 가져오고, 과일과 커피까지 다 챙겨 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에야 엄마와 동생에게 슬며시 미안해진다.
방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엄마와 식사를 했다는데 엄마는 내가 나가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계신다. 주무시는 건지 그냥 까라진 건지. 엄마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공연히 우리 마음 편하자고 고생만 시켜드린 건가. 동생 말처럼 이제 엄마에게 여행이란 게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 숙소를 나왔다. 엄마와의 짧은 여행이 끝났다. 동생네와 엄마는 춘천으로, 딸과 나는 서울로 출발이다.
서울에 다 왔을 즈음 딸이 찻집을 가자고 한다. 문득문득 표정이 무거워지는 내가 마음이 쓰였나 보다. 창 넓은 찻집을 찾아 창가로 가 앉았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가는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진다.
엄마를 어쩌나. 지금껏 큰 병치레 한번 없던 분인데 그렇게나 한순간에 무너질까. 눈빛 하나만 달라져도 우리 남매들 중 누구도 엄마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을 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보이던 엄마였다. 누구에게 폐 끼치는 걸 죽도록 싫어한 엄마가 이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동생이 했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엄마가 늘 하던 말처럼 어쩌면 엄마는 떠날 준비가 다 되셨을 수도 있어. 우리가 보낼 준비가 안 되어있는 거지.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지금 우리에게 보낼 준비할 시간을 주고 계신 거야.”
굵은 빗줄기가 유리창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