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얼마 전 순영이와 함께 미연이를 만났다. 엄마가 계신 요양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미연이의 얼굴이 어둡다. 미연이 엄마는 사람도 못 알아보고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지 벌써 삼 년째다.
“의미 없는 치료를 받으며 죽지도 못하는 엄마가 불쌍해. 이제 그만 보내드렸으면 좋겠어. 오빠랑 언니들이랑 만나면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오빠가 그런 내색만 비춰도 크게 화를 내네. 자기는 어머니가 이렇게라도 살아계시는 게 너무 좋고 이렇게나마 얼굴 볼 수 있는 게 감사하다고. 이럴 때 우린 치료중단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큰 불효를 하는 거지 싶어서 아무 말도 못 하지. 이도 저도 못하고 차일피일 시간만 가고 있네.”
부모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인데 자식이라면 누군들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미연이는 자신의 오빠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오빠는 생활이 아주 빠듯하거든. 직장을 그만둔 지도 오래고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오히려 엄마는 저렇게 누워있어도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셔서 연금이 꽤 나와. 그 돈을 오빠가 다 관리하고 있어서 오빠한테 도움이 많이 되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결사반대하는 게 아닐까 의심, 아니 확신하고 있어.”
“설마.”
“그러게. 빤한 속셈을 ‘효도’로 포장한다 싶어 화가 나다가 이런 생각하고 있는 내가 나쁜 사람인가 싶어 죄책감 들고, 그저 엄마 생각하면 이래저래 한숨만 나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식어가는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요즈음 소생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 의료 행위를 하는 게 옳은 건지에 대해, 조금씩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호흡기를 뗄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의사나 병원의 입장에서는 연명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라도 자식 입장에서 아직 살릴 수 있는데 차마 돌아가시게 할 수 없고, 그렇게라도 이별을 유예하고 싶은 심정으로 치료를 계속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자식에게는 연명 치료의 이유가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이 될 수도 있다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가슴 한편이 무언가에 짓눌린 듯 답답해 온다. 나에게는 죽지도 못하게 할 만한 연금이 없어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제껏 연명 치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문득 얼마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연명 치료 거부를 위한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야 나중에 자식들이 혼란스럽지 않고 무의미한 치료를 받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다고. 그래서 자기는 일찌감치 해 두었다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막연해서 곧바로 잊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하고 식어버린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무심히 말했다.
“연명 치료하지 말라고 서류 남겨 놓아야겠네.”
미연이와 수다가 길어지는 동안 듣고만 있던 순영이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한다.
“어머니가 과연 연명 치료받는 것을 싫어만 하실까? 나라면…, 아이한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오래도록 살아 있고 싶어.”
아, 세상에는 이렇게나 각자 다른 생각과 형편이 있는 걸…. 지체 장애가 있어 사회생활이나 경제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는 딸을 보살피고 있는 순영이다.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조금이라도 낫게 해 보려고 이곳저곳 재활 병원을 헤매고 다니던 젊은 날의 순영이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순영이도 나이가 들었고 딸도 서른이 넘어간다. 그 긴 시간 동안 순영이는 딸을 보살피는 일을 하루도 멈춘 적이 없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자라 병상에 누워 연명 치료를 받으면서라도 자식을 돌봐주고 싶은 모정(母情)이라니. 누군가에게 있어 연명(延命)은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자식의 삶을 어떻게든 이어가게 해 주려는 모정인가 보다. 그 모정이 가엾어 내 눈에 물기가 서려온다. 순영이의 얼굴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슬며시 손을 내밀어 순영이 손을 잡았다.
장례식장에 갔다. 영정 사진 속의 미연이 엄마는 화사한 미소를 우리에게 보내고 계신다. 미연이의 어머니에게 있어, 그리고 그 자식들에게 있어 연명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 사정을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제는 어머니가 부디 세상일 다 잊고 평안히 영면에 드셨기를, 진심을 다해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