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 나서듯

by 고우니

여느 때와 같았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가 넘어졌고, 바닥에 무릎을 크게 부딪쳤다. 엄청난 통증에 마른 눈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계속 흘러나갔다. 한참을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지만 일어날 수가 없다. 앉은 채로 겨우 몸을 움직여 거실로 나와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더 커지며 심하게 부어오르고 있다. 또 뼈가 부러진 걸까. 무섭다.


아이들에게 문자를 했다.

“엄마가 넘어져서 다쳤어.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그날은 하필 딸은 야근 중이었고 아들도 멀리 있었다. 그나마 아들이 조금 빨리 올 수 있을 것 같다. 통증을 참으며 그저 아들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두 시간이 다 지난 후에야 아들이 구급 대원과 함께 들어왔다. 곧바로 응급실로 가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당직 의사가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한다.


“왼쪽 무릎뼈가 심하게 부러졌네요. 수술 밖에 다른 방법이 없겠어요.”

다음 날로 수술 일정이 잡혔다. 간호사가 내 팔에 링거를 꼽고 임시로 다리를 고정시켜 주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격리 병실로 갔다. 입원 수속을 마칠 즈음 도착한 딸이 병실에 남았다.


아침이 되었다. 수술실로 가는 동안 딸이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수술대 위에 누웠다. 이게 벌써 몇 번째람. 조그마한 충격에도 부러지고 마는 뼈를 갖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얼굴 바로 위에서 커다란 조명등 불빛이 쏟아지고 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 한 방울이 쪼르르 얼굴을 타고 내려간다. 잠시 후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며 나를 깨웠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내 의식보다 더 먼저 찾아든다.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눈을 떴다. 간호사가 나를 입원실로 데려갔다.

병실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간호사가 침대에 누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손을 내려 수술한 다리를 만져보았다. 다리는 고정된 채 붕대로 두껍게 감겨 있다. 부기가 빠지고 상처도 나으면 통기브스를 할 거라고 했다. 통기브스를 하는 게 좋아진 상태라니. 가슴 깊은 곳부터 한숨이 흐른다.

딸이 간호를 도맡고 아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고 딸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 메워 주었다. 아이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며칠 후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되었지만 병실에 여유 공간이 없고 화장실 문도 좁아서 휠체어를 탄 채 들어갈 수가 없다. 게다가 공동 화장실이 아래층에 있어서 매번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이들을 번거롭게 하는 걸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어서 가급적 물 한 모금도 입에 넣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수액 때문인지 화장실에 가야 하는 건 여지없다.

“이렇게 큰 정형외과 병원이 왜 이 모양이라니.”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병원 시설이 열악한 것에 대해 구시렁거렸다.


어스름한 저녁이다. 어느덧 3월인데 창밖에는 하나 둘 눈발이 날리고 있다. 외출했던 딸이 돌아왔다. 아들이 집으로 가려다 말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화장실 안 갈래? 휠체어 밀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내가 더 나을 테니까. 옥상 구경도 시켜줄게.”

옆에 있던 딸이 얼른 대답한다.

“좋아, 오빠. 나도 같이 가 볼래.”

옥상으로 올라가 정원으로 통하는 입구 문을 열었다. 그리 넓지 않은 정원에 그새 눈이 새하얗게 쌓여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쏟아지고 있는 눈으로 달빛도 없이 어둑한 하늘이 하얗게 보인다.


“와! 예쁘다. 와! 시원하다. 살 것 같아.”

아이들이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딸이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내 사진을 찍으려 한다.

“이궁, 이런 몰골로 무슨 사진을…”

“아냐, 엄마 즐거워하는 거 찍어둬야지. 게다가 우리 엄마는 다리가 부러졌어도 예쁘다구.”

아이고, 딸의 너스레를 누가 말리나. 우린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누가 보면 꽃구경이라도 나온 줄 알겠다.


오늘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나 앉았다. 아들이 얼른 복도에 있는 휠체어를 가져온다. 나는 두 손으로 여기저기 붙들고 식은땀을 흘려가며 느리게 몸을 움직였다. 그런 나를 옆 침대에 누워계신 할머니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당신 딸에게 말을 건네신다.

“나도 휠체어 타고 화장실 가면 안 되끄나?”

“엄마도 참…, 이 언니는 그나마 다리를 다쳐서 앉을 수 있지만 엄마는 엉치뼈를 다쳤는데 어떻게 그래.”

할머니의 풀죽은 눈빛이 나의 등 뒤에 꽂힌다. 한동안 말없이 계시던 할머니 입에서 한숨처럼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부러워서 그러지.”


부럽다는 말이 불쑥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다. 자기 힘으로 먹을 것을 챙겨 먹을 수 있고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것,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키며 사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지금의 나는 할 수가 없다. 나 때문에 직장 일에다 뮤지컬 공연까지 병행하느라 바쁜 딸이 딱딱한 간이침대에 몸을 누이고 병원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들도 마찬가지로 긴 시간을 뺏기고 있고.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어쩌면 끝이 아닐 수도 있는 나의 현실에 수시로 우울감이 몰려오곤 하는데, 이런 내가 부럽다니!


드디어 휠체어에 앉았다. 그저 앉았을 뿐인데 숨이 트인다. 숨을 한껏 몰아쉬며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엉치뼈와 발가락이 부러진 할머니는 내가 입원하기 한 달 전부터 지금껏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계신다. 두 딸이 번갈아 병상을 지키며 대소변 처리와 목욕 등 할머니를 돌보며 지내고 있다. 할머니가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 딸들 고생은 또 얼마나 컸을지…, 내가 편해야 주변을 돌아볼 마음도 생기는 건지, 내 고통에만 꽂혀서 다른 사람 고통은 살펴볼 생각을 못 했다. 병실을 나서고 있는 나는 분명 할머니에게 부러운 사람이겠다.


“할머니도 곧 일어나실 거에요.”

진심을 담아 할머니께 인사를 건넸다.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이 봄날, 꽃구경 나서듯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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