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목이를 보면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by 심심한 사람

대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동아리 회장이었던 그놈은 같이 홈커밍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꽤나 관심이 생겼었나 보다.

본인은 쌍문동에 살면서 분당까지 나를 데려다주곤 했다.

쌀쌀한 아침에 수업이 있는 날에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병음료를 챙겨 역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내 생각이 났는지 김이 서린 창문에 내 이름과 하트를 그려 사진 찍어 보냈다.


카페 테이블이 흔들려 커피가 찰랑일 정도로 다리를 달달 떨며 말하는 그의 고백에 나는 피식 웃음 지으며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가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얼마 못 가 그놈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연락이 잘 안 되고 나와의 약속을 번번이 지키지 못했다.


한 번은 연애를 하면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고 말하며 나에게 자신이 자주 먹는 학식을 소개했다.

학교 식당 중에 제일 저렴했는데 솔직하게 나는 너무 맛이 없어서 한두 수저 정도 맛만 보고 내 것까지 먹으라며 그에게 양보했다.

한양대 앞에 유명한 소곱창을 먹으러 갔다. 꽤나 나온 금액에 그놈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내가 계산했다.

나는 카페에서 공부하고 싶어 했고 그는 학교 중앙도서관에 있고 싶어 했다.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다. 극이 시작하기까지 여유가 있어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데이트라는 생각에 나는 근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는데 그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삼십 분 즘 지났을까 자신은 동아리 일 때문에 늦을 것 같다고 카톡 하며 나보고 먼저 밥을 먹으라고 했다. 거의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리며 꾸역꾸역 그 테라스 자리에서 홀로 식사를 끝내고 계산을 마쳤을 때 그놈이 왔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느꼈던 그 감정은 내 생에 처음 느껴본 불쾌함이었다.

그런데 처음이라 그 감정을 딱히 무엇이라 정의하지 못해 화를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연극을 보러 갔던 기억이다.


오후에 연락하면 다음날이 되어서야 답장이 왔고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빌렸던 책을 다시 돌려주던 그날 그놈은 나에게 헤어지자고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헛소리를 했다.

나는 돌려주려 가져온 책을 벤치에 집어던지며 "네가 한 말에는 책임져, 우리는 이제 끝이야"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잊고 지냈었다.

넷플릭스에서 정목이와 이도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이제야 최근에 깨달은 것이다.

정목이가 말하는 결이 안 맞는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달까.

이도는 자신이 무엇을 바꾸면 될지 고민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대의 변한 마음에 괴로워했다.


어른이 되어서 비슷한 직장에 다니고 소득 수준이 비슷하다고 해도 어린 시절에 누렸던 생활에 따라 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10만 원짜리를 누군가는 지나가다 마음에 들면 쓸 수 있는 돈으로 여기고,

다른 누군가는 정말 필요한지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금액이라 판단한다.

누가 더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태도와 가치를 가진 것뿐이다.


단지 아쉬움이란, 좀 더 솔직하게 말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근데 아마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다.

상대는 알아차리지 못한 다름이었을 수도 있고

맞춰보려 애써보기도 전에 끝나버려 수습하기 어려운 남아있는 감정이었던 것 아닐까.


프로그램을 통해 서툴지만 절절한 진심들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이불 킥하고 싶은 낭만의 대사도, 무서워서 풀 숲에 엎드려 숨어버리는 모습도, 헷갈린다고 말하며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다 나였고 그리고 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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