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크기

일기에 썼던 어느 날

by 심심한 사람

군자역 정원이의 자취방에 놀러 갔다.

도자기 공방 수업이 생각보다 늦게 끝났다며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그곳은 방이라곤 좁은 화장실 한 칸이 전부인 작은 반지하의 원룸이었다.

침대 위 방범 창살에 쪼개져 들어오는 빛 그리고 창틀에 매달려 꾸역꾸역 생명력을 다해 자라 가고 있는 몬스테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원이가 오기 전까지 천천히 시선을 옮겨가며 방을 둘러보았다.

방의 중간에 좋아하는 초록색 천을 달아 나름 드레스룸을 꾸며둔 친구의 센스가 귀여워 미소가 지어졌다.

곳곳에 반지하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 피워둔 향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다리고 있던 정원이가 왔다.

"오늘 생각보다 색 입히는 작업이 너무 늦게 끝났어,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요즘 한창 재미 들린 취미에 대해 재잘거리는 정원이의 말을 들으며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같이 준비했다.

피자와 직접 만들었다고 내어준 과콰몰리 그리고 후식, 맥주와 와인까지 거하게 마시고 친구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천장을 보고 있으니 한 참을 먹고 떠들며 놀 때는 잊고 있었던 친구의 집 크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요즘 회사는 어때?, 이직 생각은 있고?"

정원이와는 이전 직장 동료였던 사이이기도 했고 당시 난 직업에 대해 여러 고민이 있던 때라 제일 궁금했다.

정원이는 나의 혼란스럽고 걱정 많던 미래라는 주제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펼쳐 말했다.

짧게 요약하면 정원이는 지금 직장에서 만난 좋은 팀장과 열심히 경력을 쌓아 나중에는 외국으로 취업을 하겠다는 말이었는데 그 과정과 목적지가 아주 선명했다.

이 이야기의 내용과 말하는 자신감, 태도가 너무 쨍한 것이 청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그 좁은 공간의 제일 안쪽 끝 모서리에서 반대편 모서리 끝을 눈으로 따라가 봤다.

집의 제일 안쪽 끝이 입구에서 한눈에 볼 수 있듯 자신의 미래가 바로 앞에 보이는 것처럼 말하는 정원이의 그 청춘이 부러웠던 것 같다.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방이 4개 딸린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우리 집에 오면 넓고 깨끗해 꽤나 부러워했다. 나 역시 우리 집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그날 정원이의 집에서 느낀 부러움은 내가 낼 수 없는 쨍한 색이었다.


우리 집은 입구에서 안방까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의 미래도 그런 것이었다.

입구에서 거실까지의 긴 복도처럼, 방으로 가는 여러 갈래의 문들처럼 선택할 것도 많고 하나를 선택하면 포기할 것들이 생각나 막막했다.


그날 우리의 삶이 마치 살고 있는 집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많이 가졌다고 부러움을 받는 삶은 그만큼 무겁고 챙겨야 할 짐이 많다.

단출한 집은 언제든 허물고 새로 지을 수 있고 짐도 적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나의 안정감과 여유 이것은 바꾸고 싶지 않고 내가 쌓아온 나만의 고유한 행복이다.

이날의 일기는 단지 잊고 있던 어떤 나의 초록빛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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