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개랑 산책하는 사람의 끄적임

by 심심한 사람

얼굴은 치와와이지만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의 몸매를 가진 강아지와 매일 산책을 나선다.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에는 밤에 산책을 나가곤 한다.

산책하다 보면 어두운 바닥에서 반짝 빛나는 조각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는데,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깨진 유리 조각이다.

날카로운 단면의 예리함을 뽐내듯 반짝이는 모습에 서둘러 강아지를 품에 안아 발바닥을 살펴본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이지만 이럴 때에는 매번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인간들도 똑같이 맨발로 다녀봐야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전에 일본의 어느 골목에서 목격한 일이다.

그분은 가지고 가던 테이크아웃 아이스 음료를 아스팔트 위에 쏟았다.

비닐 장바구니 안으로 플라스틱 컵과 얼음을 담더니 손수건과 휴지를 꺼내 바닥의 쏟아진 음료를 닦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누군가가 보고 있기에 하는 것이 아니었고 당연하게 나오는 몸짓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의 문화 같은 것이다.

그때 나는 진정한 양심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있다.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누군가 보고 있기 때문에 지키는 일, 혹시 벌금을 낼까 처벌이 두려워 지키는 일을 양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양심이라는 것이, 배려라는 말이 때로는 오로지 인간들 사이에서만 누리는 단어로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인간들 중에서도 나의 배려와 양심은 본인들이 정한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재들도 있다.

본인의 가치관이나 신념, 삶의 수준에 따라 '인간답게 사는 것'의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밖의 존재를 무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존재, 특히 나보다 작은 존재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품격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들처럼, 우리가 무심코 남기는 흔적들이 누군가에게는—혹은 무언가에게는—날카로운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근래 카페나 식당, 하물며 호텔을 가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는 노키즈존, 노펫존이다.

무엇을 향해 우리가 'NO'라고 외쳐야 할까.

진정 'NO'라고 외쳐야 할 것은 작은 존재들을 향한 배제가 아니라,

노력 없이 편하게 생각되는 것들이어야 한다.


귀찮음을 이기는 행동, 편안함을 이기는 의식, 무관심을 이기는 마음이 모여 진정한 인간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밤길에서 반짝이는 유리 조각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우리의 작은 배려가 누군가의—혹은 무언가의—발바닥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배려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다워지는 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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