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 여자
늦은 오후, 한양의 북적이는 종로 뒷골목을 왜소한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다. 그는 잘 다려진 하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비록 왜소한 체구였지만, 또렷하고 아름다운 눈빛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아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도 그 사실을 아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봐 몹시 조심하는 듯했다.
더 일찍 나서려 했지만, 오늘이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이라 밭을 갈기 시작한 아버지 곁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닭 울기 전부터 동네가 떠나가라 제 이름을 부르며 깨우더니 호미를 챙겨라, 똥 거름을 옮겨라, 집에서 일을 돕는 끝명이에게 직접 해도 될 말들을 꼭 저를 거쳐서 하는 아비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쳤다.
날도 어찌나 좋은지 밭갈이를 일찍 마칠 수도 없었다.
그는 지금 한양에서 그 이름을 모르면 오랑캐라는 효원각 뒤편에 이르렀다.
효원각 사람들만 드나드는 쪽문에서 한 번 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빛에서는 뜻 모를 설렘이 느껴졌다.
그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효원각의 양조장이다. 효원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막걸리인 이화주를 만드는 곳이었다.
이화주에 곶감이나 서양홍시(토마토), 각종 꽃잎을 얹은 이것은 좋아할 요(樂), 어찌 거(詎), 그녀 타(她). 즉슨 그녀들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냐는 ‘요거타’라 불리며 한양 여인네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간혹 사내들도 숙박을 빌미로 효원각에 와서는 요거타를 찾고는 했었다.
양조장으로 들어온 사내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아무렇게 놓여 있는 장독대 하나를 밀어 그 밑을 받히고 있는 짚을 치우고 지하로 내려가는 뚜껑을 열었다.
그는 가볍게 폴짝 내려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올라왔다.
그는 그녀였다. 허름한 하녀의 옷을 입고 얼굴에는 여기저기 주근깨가 가득했고, 눈두덩이는 잔뜩 부어있었다. 그녀는 옷고름을 매만지며 싱긋이 웃었다. 이렇게라도 본래 여인이었던 그가 여인으로 다시 돌아가 밖을 돌아다닐 수 있으니 어찌 신나지 않을까.
그때 양조장 문이 벌컥 열렸다.
"아후! 어찌, 볼 때마다 놀랍니다.”
효원각 객주 설향의 아들인 도현이였다. 싱글벙글 사람 좋은 미소을 지닌 그는 제 어미와 쏙 빼닮아 속을 쉽게 알 수 없고 능글맞기가 구렁이 담 넘듯 했다. 게다가 미모가 빼어나고 다정해 효원각 매출에 단단히 한몫했다.
효원각을 찾는 이들의 이유가 이러하니 도현의 보조개에 빠진 것이 2할, 술맛과 음식 맛이 좋은 것이 8할이었다.
“잠깐만. 지우 도련님은 어찌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것입니까?”
도현은 고운 손을 뻗어 지우의 머리에 붙은 지푸라기를 떼 주었다.
“지우 도련님이라니! 여기서는 강단이라고 부르라니까!”
지우는 누가 들을까 입에 손가락을 대고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무도 없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우가 예서 일한 지는 반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늘은 대제학 대감 댁에 가셔서 저녁도 거기서 얻어 드시고 늦게 오실 거래.”
“어르신이 아시면 기함하실 것입니다. 본인 이름 강백단에서 백만 빼서 강단이라니.”
“시중들면서 내 이름을 묻는 아씨가 있을 줄 내가 어찌 알았겠느냐? 당장에 생각난 게 아버지 이름인 것을 어찌한단 말이야.”
지우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는 초하루에 담갔던 술독을 찾아 귀를 대었다. 차가운 술독이 뺨에 닿을 때의 서슬한 느낌이 좋았다.
“흠~. 잘 익었다. 오늘 저녁에 내놓아도 되겠어. 너도 귀를 대고 들어 봐.”
저문 해가 옅게 들어오는 양조장 안은 술지게미 냄새가 고소하면서도 알딸딸하게 나고 주홍빛 선이 그어진 지푸라기들이 호롱불같이 흔들거렸다. 도현도 술독에 귀를 대어 보았으나 술독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제 심장이 뛰는 소리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지우의 눈을 지그시 볼 뿐이었다.
“도련님 덕분에 기생 춘영이 영도가 있는 월도각을 제치고 저희 효원각이 종로 여각들 중 제일이 되었지 뭡니까. 이화주를 1년 내내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여간 객주하고 너는 돈밖에 모른다니까. 들어 봐. 뽀로록 뽀로록. 술이 살아있는 거 같지 않아? 정확히 이 소리 듣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게. 여기 온도를 1년 내내 일정하게 맞출 방도를 찾느라고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잖아.”
“누가 들으면 도련님이 정말 순수하게 술이 좋아 그런 줄 오해하겠습니다. 저희보다 더 눈에 쌍심지를 켜시고 돈!돈! 하시면서. 이걸 개발하면서 한양의 돈은 다 쓸어 담을 거야~! 라고 몇만 번은 말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큰 도련님 때문.”
지우는 도현이 제 오라비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정색을 하고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어서 가자. 여기 더 있다가는 객주가 노닥거렸다고 경을 칠 게 뻔하니.”
일어나며 코를 찡긋거리는 지우의 얼굴에 도현은 제 얼굴을 바짝 붙였다.
“왜? 뭐? 내가 이윤의 8푼을 가지고 간다고 날강도가 따로 없다며 또 타박할 셈이야? 효원각이 이만치 된 것에 내 지분이 상당하다고 아까 네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어? 게다가 너하고 나는 객주의 쭈쭈를 공유한 사이인데 너무한 거 아냐?”
지우는 납작한 제 가슴에 설향의 풍만한 가슴을 손으로 그리며 히죽거렸다.
“아~ 그 손! 얼른 내려놓으십시오. 제가 도련님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 제가 이런 꼴까지 봐야겠습니까? 형님이나 오라버니라고는 못 부를망정.”
“기분이다. 오라버니~!”
도현은 기대하지도 못한 말을 지우가 실실대며 서슴없이 해버리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채신머리없이. 쯧쯧. 도련님은 너무 쉽습니다.”
나비와 매화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인 비단 옷소매를 훌훌 털며 도현이 나가자 지우는 해달라 할 때는 언제고 해주니 또 채신머리가 없다느니 고딴 소리를 한다며 쭝얼쭝얼 혼잣말을 하며 따라 나갔다.
“강단이 왔니?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소객주님 일 돕고. 너만치 부지런하면 금세 기와집도 사겠는데! 농사짓는 땅도 너희 땅이지?”
부엌에서 일하다 나오는 칠복 어멈은 강단이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객주 설향이 요거타를 개발한 강단이에게 남쪽 외곽에 있는 땅을 사줬다는 소문이 있었다. 괜히 둘러서 찔러본 말이었다.이화주로 요거타를 만든 거며, 강단이가 제안해 개발한 요리인 홍달홍달은 북촌의 양반들이 찾는 고급 안주로 소문이 자자했다.
서양 홍시(토마토)에 달걀을 풀어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들기름을 둘러 볶은 요리인데 강단이가 준 누르팅팅한 덩어리(염소 치즈)를 넣으면 더 맛있어져서 다른 요리 집에서는 따라 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객주 설향이 강단이를 가까이 두고 다른 객잔에 뺏기지 않기 위해 대단한 대우를 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네~. 기와집 한 채 마련하면 칠복 어멈도 오셔요. 칠복 어멈이면 내가 볕이 잘 드는 별채 하나 내어드리지요.”
“그려. 말만 들어도 먹은 거 없이 시원하게 똥 싼 거 같구나. ...기와집 사기 전에 옷이나 좀 사 입지 그래? 어찌 맨날 그 낡은 옷이야? 돈도 많은 년이.”
“이 옷이 편하고 좋아서요. 그리고 저 돈 많이 없어요.”
“돈이 없어?”
“네. 오라비가 술꾼 잡것이어요.”
“쯧쯧. 가여운 거. 남일 같지 않구나. 나도 말이야. 내가 태어났을 때...”
앞서가던 도현이 가던 길을 갑자기 멈추고 뒤돌아보며 지우의 소매를 끌며 말했다.
“어멈! 우리 지금 바빠서. 나중에.”
도현이 지우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칠복 어멈 연세가 마흔이 넘으셨어요. 저 얘기 다 들었다가는 오늘 밤새야 해. 오늘은 객주님 옆에서 좀 도와드려요. 나는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갔다 올 곳이 있어요. 객주님이 도련님을 찾기도 했고요.”
“어디 가? 아니. 소 객주님! 재밌는 데 가시는 거면 저도 좀 데리고 가주세요. 네에?”
지우가 두 손을 마주 잡아 가슴에 모으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데도 도현은 코웃음을 치며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지우가 도현에게 콧소리를 섞어 말을 높일 때는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중에 곱씹어보면 뭔가 말려들었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알면서도 기꺼이 말려드는 도현이지만.
“객주님은 어디에 계세요?”
“충의원에.”
“오늘 높으신 분들이 오셨나 봐요?”
여러 객실 가운데 충의(忠義)원이 가장 좋은 방이었다. 연못이 있는 정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별채였고 효원각의 다른 객실과는 꽤 떨어져 있으면서 충의원으로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었다.
객주가 충의원으로 지우를 부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별채 안에 마련된 은밀한 곳에 들어가 별채 안에 계신 손님들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객주 설향이 지우를 신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서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일하고 있어요.”
“네!”
지우는 머리 위로 손을 동그랗게 말고 몸을 갸우뚱거리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충의원에 가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도현을 따라나서지 않아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상당히 흥미로웠고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지우는 종이와 식초를 들고 충의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