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진정한 주인은.
공주는 효원각에서 궁궐로 돌아오자마자 주상의 첩이자 무녀, 조선의 단 한명 뿐인 제사장인 장 숙원을 찾았다. 이름은 지화(止火).
장 숙원은 시골의 한낱 떠돌이 거렁뱅이였다. 그런 그녀가 궁궐에 들어온 건 십 년 전, 임금의 어가 행렬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외쳤기 때문이다.
“전하~. 궁궐에 박쥐가 있습니다. 그 날개를 꺾고 주둥이에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장차 이 나라 종묘사직에 큰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제가 모시는 관악산 산신이 알려주신 곳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이는 허름한 옷에 땟국물이 흘렀지만, 그냥 지나지 수 없는 기묘한 구석이 이었다. 낭창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관악산 산신을 모신다는 말에 솔깃했을까.
선왕은 아이가 건넨 지도를 받고 그 뒤에 쓰인 글의 글씨체가 숙부의 것임을 확인하고서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선왕의 숙부가 무기를 밀수해 숨겨 놓은 무기고의 위치를 표시해 둔 지도였다.
당시 중전이었던 윤씨는 신료들과 성균관의 거센 저항에도 지화를 세자의 후궁으로 들였다. 어린 꼬마는 당돌하게도 자신이 궁에 있어야 관악산 ‘화기‘가 피해갈 것이라 하였다. 종 5품 소훈이 되었다.
세자 휘랑이 죽고, 지금의 왕인 휘우의 후궁 종5품 숙원이 되었다. 소훈이었을 때나 숙원이 되었을 때나 지화는 누구와도 첫날 밤을 치룬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지화와 밤을 보내길 꺼려한 형제로 인해 첫날 밤을 치룰 수가 없었다.
공주는 숙원 장씨를 아꼈다. 가끔은 ’지화야.‘라고 부르며 애살맞게 대하기도 했다. 적적한 궁궐 안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건 오직 지화밖에 없다고 여겼다. 지화 또한 지아비에게 냉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지화가 건넨 반짝이는 가루 덕에 그럴듯하게 아파 보일 수 있었다. 아프다는 핑계로 유진을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었다. 장 숙원은 공주가 돌아와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얼른 달려가 그 앞에 바짝 엎드렸다.
“나 상궁이 찾아 왔었습니다. 귀하신 공주께서 그 험한 일을 직접 하시다니요. 제가 손이 떨렸나이다. 혹여 죄책감에 목숨을 가벼이 여기실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제가 세자 저하를 그리 보내고 얼마나 상심했었는지 아시지요? 좌승지 영감에 대한 마음을 접으십시오. 공주님과 인연이 아닙니다. 사주가 그렇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공주는 ‘인연이 아닙니다.’라는 장 숙원의 음성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제 손으로 유진을 죽이길 원했지만 정말로 죽였다면 견딜 수나 있었을까? 며칠 뒤 저자에 유진이 멀쩡히 걸어다니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 내가 오라버니를 죽이려고 했지. 그런데 죽이지를 못했어. 죽였다면 속이 시원했을까? 어떻게 다시 얼굴을 본다. ...어떻게 살았을까?’
머릿속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했다. 오늘 받아 본 부마 간택 후보에 역시나 없었다.
“아... 아.”
공주가 거친 신음을 내자 밖에 있던 나 상궁과 때마침 공주를 보러 온 장 숙원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공주 자가!”
장 숙원은 정체 모를 환을 꺼내어 공주의 입에 넣어 주었다. 나 상궁이 건넨 물을 마시고 시간이 좀 지나자 공주는 이제야 살겠다는 듯 자신을 잔뜩 걱정하고 있는 장 숙원의 팔을 토닥였다.
“장 숙원께 또 신세를 졌습니다.”
장 숙원은 가늘고 긴 눈에 새초롬한 입, 복스럽고 뽀얀 볼을 가진 여인이었다. 차분하고 단아했으나 다가가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눈꼬리를 길게 늘여 웃으며 말했다.
“뭘요. 제가 치성을 드려 만든 약이 있어 다행이었지 큰일 날 뻔하였습니다. 이건 임시방편이니 이제 독 가루는 먹지 마셔요. 해독될 때까지 참으셔야 합니다.”
공주는 가루의 쓰면서 아릿한 맛, 그 맛 뒤에 가빠지는 호흡이 묘하게 흥분되는 기분이 생각나 마른 침을 삼켰다.
“장 숙원이 없었다면 저희 가문은 어찌 되었을지 아찔합니다. 휘랑 오라버니가 떠나시기 전에 이리 고운 숙원을 외면하시고. 휘우 오라버니까지. 내가 장 숙원께 면목이 없습니다.”
“사람 마음을 어찌한답니까. 이렇게 궁에 있고 나라와 백성을 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무녀주제에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제가 뭘 더 바라겠습니까?”
“내 성격이 꽁한 것을 담아두지를 못해 미안합니다. 전하와 장 숙원 사이를 더 소원해지게 만든 건 아닌지.”
“괜찮습니다. 형님의 후궁이었던 여인을 전하께서 후궁으로 들이셨으니 쉽지 않으시겠지요. 그나저나 이번 부마 간택에 전 시강원 이사(貳師)였던 강백단의 둘째 아들도 있다 들었습니다.”
“전하의 스승이셨으니 기회를 주신 거겠지요.”
“이상하지요? 첫째도 아직 혼인 전이라 들었는데 공주보다 세 살이나 어린 둘째 아들을 보내니 말입니다.”
장 숙원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차를 들이켰다.
“장자에게는 한자리 내어줬으면 했겠지요. 둘째는 사석(捨石)일 뿐이고.”
“듣자니 둘째는 집 밖에 거의 나오지 않고 아비와 농사를 짓는 비실이라 하던데.”
“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비실이면 어떻고 모지리면 어떻습니까.”
“그런 말씀 마시어요. 마음을 굳건히 잡수셔야지요.”
“고맙습니다.”
장 숙원은 공주의 몰골이 마음에 들었다. 집착의 결과는 늘 저런 식이다. 제 속을 헤집어서라도 사모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한다. 지화는 공주의 사랑같은 건 아무렴 했다. 그저 조선이 갖고 싶을 뿐.
“공주마마. 저는 사가에 며칠 나가 있으려 합니다.”
“또요? 장 숙원이 없으면 저와 대비께서 많이 불안해한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봄 가뭄에 어제 단비가 내렸으니 지덕이 좋은 곳에 가서 감사제를 드리려 합니다. 그래야 신령님이 해갈될 때까지 비를 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부족합니다.”
“자나 깨나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시는군요. 한 나라의 공주는 이모양이거늘. 알겠습니다.”
“쉬시어요.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오래 나가 계시지는 마시어요. 보고 싶습니다.”
“공주님도 참. 이런 표현은 아껴 두셨다가 부군께 쓰십시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장 숙원은 방에서 나가 나 상궁을 따라오라 일렀다. 나 상궁은 대충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싱글벙글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장 숙원이 말했다.
“나 상궁. 우리 공주 자가를 잘 보필해주어 고맙소. 숙부께서 자네 동생을 한양에 머물게 하려 한다고 들었네. 숙부께서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다오.”
나 상궁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연거푸 감사하다고 했다.
“동네 건달이나 하다 죽을 줄 알았는데 숙원 마마 덕분에 사람이 됐습니다.”
“아니네. 이리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사람 사는 것 같지 않겠나.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궁에서 말일세.”
“네. 마마.”
“앞으로도 이때까지 한 것처럼 하면 될 것일세.”
“네. 마마.”
나 상궁은 장 숙원이 뜰에서 사라지기까지 허리를 들지 않았다.
장 숙원은 궁을 나서며 궁궐 뜰을 둘러보았다. 깊은 숨을 들이켜며 눈이 부신 햇빛이 가소로운 듯 한쪽 입꼬리를 치켜세웠다. 가마를 타고 나가도 되었지만, 장 숙원은 광화문까지 걸어간 뒤 육조 거리를 둘러보고 가마를 타는 것이 좋았다. 둘러보는 건 파악하기 위함이고 파악은 다스리기 위함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다 입궁하는 유진을 보고는 장 숙원은 뒤에 있는 궁녀에게 말했다.
“윤강아.”
“네. 마마.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다. 오랜만에 그리웠던 걸 보니 너의 이름이라도 불러야겠다 싶어서 말이다. 어서 가자.”
“마마. 싱거우십니다.”
장 숙원은 고개를 숙이며 큭큭거렸다. 유진을 모두가 탐내나 가질 수 없는 남자로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다. 제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이어지고 기진맥진해서 기가 꺾여야 다른 사람들처럼 간절히 저를 찾을 것이다.
“윤강이 너는 별말 아닌 것도 웃음이 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밖에 나가면 너는 본가에 가도 좋아. 신당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부정을 타니. 갈 때 돼지고기 한 근이나 사 가거라. 조카들이 목을 빼고 너만 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느냐?”
윤강은 지화가 준 두둑한 돈주머니에 입이 귀에 걸렸다.
“마마. 매번 이렇게 챙겨주시니 감사합니다.”
“결국에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
장 숙원은 유진의 옆모습을 흘깃 보더니 뭐가 재미있는지 다시 큭큭거리며 궁을 빠져나갔다.
지우가 시큰둥하게 유진이 사는 별채에 들어서자 개천이 잽싸게 나와 지우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며칠 전에 보았던 그 옷 그대로에 주근깨는 더 많아진 듯하고 눈은 더 부은 듯했다. 결론적으로 더 못생겨져서 온 지우를 보며 개천은 혀를 끌끌 찼다.
“도련님이 너 같은 걸 업고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아느냐?”
지우는 짐짓 놀랐다.
“업으셨다고요?”
“네가 풍한이 들었다고 의원이 지어준 약을 달여 너에게 먹이면서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너도 밤새 네 몸을 아끼지 않고 도련님을 돌봤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지우는 말이 새어나갈까 유진이 전전긍긍해 자신을 붙잡아 두려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유진의 방에 어떻게 누워있게 되었는지는 생각 못 했다. 집에 가자마자 백단이 한 말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다른 건 생각하지 못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갚겠습니다.”
“그래. 싹수가 아예 없는 애는 아니구나.”
“저는 어디에서 지내면 됩니까?”
개천은 별채 바로 옆에 있는 행랑채로 안내했다. 문을 열어 보이며 이곳에서 지내면 된다고 했다.
“아저씨는 어디에서 지내셔요?”
“나는 안채에 딸린 행랑채에서 마누라하고 같이 있지.”
“네~.”
“도련님은 별채에 여인을 들인 적이 없다. 돌아가신 마님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