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은 너를 비추고.
지우는 약과를 베어 물며 배시시 웃었다.
“영감님은 저를 보면 볼수록 정이 뚝뚝 떨어질 것입니다. 생긴 것은 못났고 하는 짓은 괴팍하니 말입니다. 이거 먹고 어서 부윤댁에 가 보아요. 하영 아씨가 눈이 빠지게 영감님을 기다리실 것입니다.”
“어제 일은 잊어라. 내 본분을 망각하고 네게 결례를 범했다.”
지우는 유진이 밤새 마음을 다잡았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놓인 게 맞을 것이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괜찮습니다. 혼례 전에는 마음이 요동친다 들었습니다. 이제 혼례만 잘 치르시면 뵐 일도 없는데요 뭐.”
“...”
지우는 유진의 침묵에 아랑곳하지 않고 등에 지고 온 작은 봇짐을 상에 내려놓고 펼쳤다. 안에는 지우가 만든 미안수(美顔水)와 광염(光染), 도현의 머리카락을 조금 자른 것을 싸 놓은 것과 물고기 지느러미를 끓여 만든 아교(阿膠)풀이 있었다.
그리고 유진에게 입힐 낡은 옷과 올이 몇 개 풀린 갓도 들어있었다.
“맹인 행세를 하며 눈을 감는다고 하여도 영감님의 얼굴 골격까지 감추지는 못하오니 수염을 붙이시고 검은 천을 두른 갓을 쓰는 게 어떠십니까?”
지우가 천을 펼쳐 안에 든 머리털을 보였다.
“이것은 어디서 구한 것이냐?”
“도현의 것입니다.”
“도현?”
“아! 효원각의 소 객주를 말합니다.”
“평소에 서로를 다정히 부르는 모양이구나?”
“네.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합니다.”
지우는 도현이 ‘도련님~.’이라 부를 때 다정했던 것 같다. 도현이 끝명이를 부를 때나 칠복 어멈을 부를 때, 아버지 백단을 ‘어르신’이라고 부를 때도 언제나 다정했다. 특히 어머니인 설향을 부를 때는 꿀을 바른 듯 목소리가 좋아 듣는 효원각 식구들이나 손님들이 껌뻑 죽었다.
지우는 도현을 놀리려 따라 하다가 도현처럼 하는 것이 버릇되었다.
“너는 또 누구를 그리 다정히 부르느냐?”
“같이 사는 끝명이를 다정히 부릅니다. 다정하게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까? 가족이니 당연하지요.”
“너에게는 다정이 쉽구나?”
연정이란 그랬다. 옹졸해지고 자신이 만든 세상에 쉽게 갇혀버렸다. 유진은 유치한 질투였음을 인정하는 듯 헛기침을 두어 번 하였다.
“영감님.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입니까? 제가 다른 사람을 어찌 대하든 신경 쓰지 마시고 영감님의 신부를 구할 생각부터 하십시오. 소란당의 똥식이를 어제 효원각에서 우연히 만났었는데 하영 아씨의 병세가 호전되었다가 다시 시름시름 앓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알려다오. 변장이라면 네가 나보다 고수이니. 네 얼굴은 어찌 달라지게 한 것이냐?”
유진이 지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지우는 유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눈썹을 그릴 때 쓰는 미묵(眉墨)으로 얼굴에 주근깨를 찍고 기름과 밀납을 섞을 것을 옅게 바릅니다. 그럼 물에도 쉽게 씻겨나가지 않습니다. 눈두덩이에는 잣을 우려낸 물을 바릅니다. 제가 그것을 먹다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피부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씻으면 다행히 바로 가라앉고요.”
“그런 음식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자기의 체질과 맞지 않은 음식 말이다. 그럼 일단 수염을 붙여야 하느냐?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야?”
“가만히 있어 보십시오.”
지우는 유진의 옆에 가 유진의 턱과 입 주변에 아교를 바르고 도현의 머리털을 집어 하나씩 정성스럽게 붙였다. 붙이면서 ‘잘 붙어라.’ 하고 후~후~ 입으로 불어대는 통에 유진은 어젯밤 폐가에서의 짧은 입맞춤이 자꾸 생각나 입이 마르고 목이 탔다.
날이 선 작은 칼로 털을 샥샥샥 정리까지 하고 나니 유진은 평소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고 느낌이 사뭇 진중해진 듯도 했다.
“거울에 비춰 보십시오.”
“사내가 여인네들처럼 제 얼굴이나 가꾸며 한가한 줄 아느냐! 여기에 거울은 없다.”
“그러시면 제 눈에 비친 모습을 보시어요.”
지우는 눈을 부릅뜨고는 유진의 모습이 눈동자에 비치도록 좌우 아래위로 천천히 얼굴을 이동시켰다.
“영감님. 보이십니까?”
지우의 원래 눈 크기의 반도 안 되는 눈에 쌀알보다 조금 크게 보이는 눈동자에 유진의 모습이 비칠 리 만무했다. 엉거주춤대는 모습이 하도 웃겨 유진은 크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 너는 어디 마당놀이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영감님! 저는 진지합니다. 집중하지 않으실 거면 저는 포기하고 가겠습니다. 제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부윤댁 딸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냐?”
“술 마시면서 장가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땐 언제고.”
“내가?”
“네. 니.가.”
“니. 가? 방금 나에게 니. 가. 라고 한 것이냐? 처음 이 방에서 눈을 떴을 때도 응! 이라고 하더니 너는 법도 같은 건 배우지를 못한 것이야? 어쩜 이리도 방자하냐 말이더냐. 백단 어르신은 성리학에서부터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는 멀리 양인들의 문물까지 모르는 거 없이 박식하시고 세자께 제왕의 품격을 가르치신 분이라 들었거늘 어찌 너는 이 모양인 게야?”
유진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지우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지우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손으로 제 이마를 세게 비볐다.
“제 말은 이 니.가.가 그 니.가.가 아니라 요즘 종로 거리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려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니가 왜 거기서 울어.’라고. 울면서 장가가고 싶다고 하셔서.”
“그런 노래가 분명 있더냐?”
유진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분명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혼인하자 했는데 돈이 없어 거절당한 노총각이 뒷간에서 울자 친구들이 그러는 겁니다. 니가 왜 거기서 울어? 라고.”
“그런 노래가 민가에 돌 정도면 노총각이나 노처녀가 많은가 보구나. 혼인을 장려하기 위해 혼례에 드는 비용을 나라에서 대거나 두 칸 초가집을 빌려주는 제도 같은 게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전하께 상소를 올려보아야겠다.”
‘거짓말을 한 것인데. 뭘 또 굳이 그렇게까지.’
지우는 유진이 진지한 사내구나 싶었다. 틈만 나면 백성을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이런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 혼례에 그리 목을 맨 것이 아니다. 이 혼례를 방해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목 매신 것 같던데요?”
“그저 주사였다.”
“아닙니다. 마음의 소리입니다.”
“...”
지우는 유진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제가 보기에 수염이 잘 붙여진 것 같습니다. 이 옷으로 갈아입으십시오.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지우는 바삐 말을 돌리며 봇짐을 다시 정성껏 싸더니 방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유진이 허름한 두루마기를 걸치고 나왔는데, 너른 어깨며 젊고 곧은 골격을 숨길 수가 없어 지우가 ‘허리를 숙여라! 어깨를 말아라!’ 하며 지적을 이어나갔다.
마당으로 데리고 나와 손에 흙을 문질러 손톱 밑에 때를 만들고 자신이 쓰는 미묵을 손과 얼굴에 콕콕하며 늙은이로 만들었다.
지우의 감촉이 스쳐 가고 옅은 숨결이 피부를 쓰다듬자 유진은 아침에 마당에서 했던 다짐들을 어느 때까지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계집애는 꺄르르 웃는 소리가 졸졸 흐르는 계곡물 같고 장난스러운 얼굴 모양은 뒤따라 오는 동네 강아지마냥 정답구나. 깊이 입 맞추며 밤의 고개를 함께 넘고 싶으니 나는 어쩌면 좋으냐.’
검은 천을 덧댄 갓을 씌우며 끈을 묶는 지우의 입술을 보던 유진은 지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에그머니! 영감님!”
지우는 어젯밤 일이 생각나 지레 놀랐다. 유진의 발등을 세게 밟았다.
“앗!”
유진은 조그마한 계집의 발뒤꿈치가 매워 왼발을 잡고 콩콩 뛰었다.
“어. 그게. 갑자기 손을 잡으시어 놀라서.”
“미안하구나. 맹인이라 하니 네 손목을 잡아야 하나 싶어. 연습 삼아.”
“언질도 없이 갑자기 그러시니. 양반의 법도를 배우신 분이 행동이 막... 여인네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시고 그러시면 안 되시지요. 지팡이를 짚으십시오.”
“처음이라 어색하지 싶은데. 지팡이만 짚고 길을 다닐 자신이 없다. 내가 너의 아비라고 하였다면서?”
“그럼 제 손목을 잡으... 시던지.”
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고 네가 이끌어라. 네가 가는 데로 난 따라가마.”
“제가 어디로 데리고 갈 줄 아시고요? 저에게 빚이 좀 있는데 영감님을 제 빚쟁이들에게 팔면 제 땡빚이 다 탕감될 듯한데요? 창질(매독)에 인간의 간과 쓸개가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 간과 쓸개가 없는 시신이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영감님을 넘길지도 모릅니다.”
지우가 음흉하게 웃었다. 빚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절로 어깨춤을 출 판이다. 어깨춤은 자제했다.
“도대체 빚이 얼마나 남은 것이냐? 얼마길래 맨날 이러는 것이야?”
“매달 30냥씩 이제 한 해 남았습니다. 한꺼번에 갚아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백 냥이 이리 불어난 것이었다.
“그럼 360냥?”
“그것도 중간에 그쪽에서 이자를 바꾸겠다고 하면 늘 수도 있고요.”
“그런 불한당 같은 놈들이 한양에 있단 말이냐?”
“한양에는 영감님 같은 샌님은 상상도 못 하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일들이 매일 일어난답니다.”
“어두운 뒷골목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한 곳이 내가 있는, 앞으로 네가 갈 곳이다. 탐욕을 숨기지 않는 곳이지. 혹은 숨겨진 탐욕까지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다음에 네가 겪은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려무나. 이 나라에도 국법이 있으니. 이만 가자. 너와 얘기를 하다 보면 끝이 없으니 말이다.”
대로로 나가기 전까지 유진은 지우의 손을 잡고 앞장섰다. 유진은 손안에 가득 찬 지우의 손을 꼭 잡았다. 지우가 사내로, 강단이로 살았던 삶이나 앞으로의 삶도 녹록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니 이 손을 놓지 않고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지우는 유진의 마음도 모른 체 대로로 들어서며 유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영감님. 잘 따라오십시오. 혹시 모르니 어떤 일이 있어도 눈을 뜨시면 안 되십니다.”
유진은 손을 흔들며 알았다는 표시를 했고 지팡이로 제 앞이 있는 땅을 어설프게 짚었다. 지우는 유진을 데리고 사람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아부지. 조심하셔요. 오른쪽에.”
지우가 유진을 힘껏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