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필
나는 내 기억 속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시절이 통째로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누가 나를 힘들게 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또렷하다.
그런데 정작 그때의 내 마음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는지, 그 시절의 구체적인 모습이 흐릿하다.
나는 분명 기숙사에 살았고, 하루하루가 힘겨웠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어떤 하소연을 했는지, 내가 울었는지, 그때 무슨 생각으로 버텼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절을 설명해 달라고 하면, 마치 빈칸이 가득한 일기장을 건네는 기분이 든다.
중요한 사건 몇 줄만 남아 있고, 그 사이의 모든 순간이 비어 있는 그런 일기장 말이다.
이따금 나는 그 빈칸 속에 무엇이 있었을지 생각한다.
아마 지친 표정, 무의미한 한숨,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던 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다.
기억의 뼈대만 남고, 살은 다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남은 건 ‘힘들었다’라는 건조한 한 문장뿐이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매일 울었을까, 아니면 생각보다 담담히 견뎠을까.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아팠을까, 아니면 덜했을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가끔은 누군가 내 기억에서 그 시절의 감정만 조심스럽게 지워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말한다. 뇌가 스스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고.
너무 괴로운 기억은 아예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그렇다면 내가 떠올릴 수 없는 것들은, 그만큼 나를 갉아먹던 순간들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2학년의 공백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빈칸을 더듬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그 시간을 견뎌냈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을 통과한 끝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