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지나간 자리

초단편소설

by 회색도서관

내 인생은 언제나 어두웠다.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것처럼, 사다리 없는 우물에 빠진 것처럼, 모든 빛을 집어삼킨 블랙홀처럼. 그러다 어느 날은 나도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고 빌며 잠에 들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똑같은 풍경이었다. 같은 침대, 같은 선반, 같은 방. 하지만 나는, 내 기분은, 내 생각은, 내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다 시들어버린 꽃처럼 축 처져 있던 기분이 이유 없이 밝아져 있었고, 무거웠던 생각들이 살을 뺀 듯 가벼워져 있었으며, 무게추라도 달린 듯 내려가 있던 입꼬리는 누가 위에서 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솟아있었다.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그러고는 아마추어 댄서라도 된 것 마냥 통통 뛰는 스텝을 밟으며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땐 원래라면 모자를 꾹꾹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채 이어폰을 끼고 지나갔을 복도를 당당하게 걸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좋은 아침!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네?"라며 말을 건넸다. 평소에 대화를 잘 안 해본 탓에 괜히 부끄러워 입꼬리만 조금 올린 채 고개를 끄덕이는 나였다. 다행히 그 친구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웃으며 지나갔다.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고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했다.


긴 종소리가 흘러나왔고 선생님께선 들어오셔서 바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평소였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내 머리가 점점 책상면과 가까워졌을 텐데, 그날은 모든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2교시, 3교시, 4교시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었고 친구들이 처음으로 나에게 밥을 먹자고 제안해서 나도 흔쾌히 수락하였다.


밝은 빛과 넓은 공간, 친구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 급식실에서 먹는 다양한 반찬과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이것은 어둡고 좁고 쥐 죽은 듯 조용해 먼지도 눈치 보며 날아다니는 체육관 창고에서 먹는 차가운 빵 한 조각과는 완벽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렇게 나는 따뜻한 밥 한 알 한 알을 느끼며 씹고 삼켰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밥을 먹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계속 조잘거렸다. 뭐, 덕분에 분위기는 좋았고 나도 몇 번은 조용히 쿡쿡 웃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다 같이 매점을 가서 시원한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사서 한 손에 들고 운동장을 산책했다. 걷다가 땀이 날듯하면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았고 친구들과 얘기하다가도 입이 텁텁해지면 또 한 번 핥았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에 빠져 있을 때 한 친구가 하늘을 보며 외쳤다.

"진짜 행복하지 않니?"


그랬다. 나는 행복..했...


어? 행복이라고..?


그때였다. 갑자기 내 주위는 까만 어둠으로 변했고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꿈이었다.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왜냐고? 낯설지 않은 어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축 처진 기분, 무거운 생각, 무게추가 달린 듯 내려간 입꼬리.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나로 다시 돌아왔다. 그 행복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너무도 익숙한 이 어둠이 나를 감쌌고, 나는 스스로를 속인 내가 싫어졌다. 한 줌의 행복을 경험한 죄로, 나는 두 배의 절망을 안게 되었다. 나는 침대에서 차마 일어날 수 없었고, 끝없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행복'을 잊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