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필
그날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비를 싫어하던 나였기에 평소라면 무시했을 텐데 , 그날따라 거센 빗소리가 창을 두드리며 자꾸만 나를 불렀다.
무심코 창문 앞에 섰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온통 흐릿했다. 누가 창문을 연한 회색 물감으로 칠해놓은 듯, 아무것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숨을 한번 내쉰 후 뒤돌아서려던 찰나, 내 눈길이 창문에 맺힌 작은 물방울 셋에 머물렀다.
쪼르르 일렬로 붙어 있던 그 셋은, 마치 출발선을 앞둔 경주자처럼 보였다.
조용히 그 앞에 앉았다.
그들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오른쪽 물방울은 크고 빠르게,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왼쪽 물방울은 작지만 길을 잘 골라 속도감 있게 움직였다.
그 사이, 가운데 물방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애써 흘러보려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자꾸만 멈춰 섰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가운데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 물방울 안에,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작은 창 위, 작은 물방울 하나 안에, 자꾸만 멈춰 서는 내가 들어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목표에 가까워지지 못하는 내 모습을 숨기려 노력했지만,
고작 하나의 작은 물방울에 의해 모두 들춰졌다.
너무나도 부끄러워 숨고 싶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지만,
고작 하나의 작은 물방울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른쪽과 왼쪽, 다른 물방울들은 끝까지 내려갔다. 자국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가운데 물방울만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창문 위의 경주는 끝이 났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내 얼굴 위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