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우는 어디에나 있다

『여우』,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번역, 파랑새

by Sunny Story
여우.jpg 『여우』,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번역, 파랑새(2012년)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마가렛 와일드(Margaret Wild)는 1972년에 호주로 이사했다.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으며,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70여 권의 어린이책을 썼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00년에 쓴 『FOX』는 론 브룩스가 그림을 그렸다. 2012년 파랑새 출판사에서 강도은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다.



‘세상은 넓고, 매일 새로운 책이 나오고, 읽을 책은 쌓인다.’ 20년 넘게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은 하는데, 참 모르는 책이 많다. 2019년에 처음 만난 책이다. 붉은 여우가 표지에 그려져 있다. 글도 위, 아래, 옆으로 삐뚤빼뚤 쓰여 있고, 그림도 어두운 색조이다. 밝고 따뜻한 느낌이 아니다. 스산하고 아픈 느낌을 준다. 아이에게 읽어 주기에 약간 망설여진다. 잠자기 전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낮에 밝은 곳에서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듯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개가 산불에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게 된 까치를 구해서 돌보아준다. 날지 못하게 되어 절망하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달린다. 까치는 개의 눈이 되고, 개는 까치의 날개가 되어 함께 지낸다.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난다. 개는 여우를 반겨준다. 까치는 개에게 여우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여우는 까치에게 자기가 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면서 함께 떠나자고 한다. “나는 개의 눈이고, 개는 나의 날개야.”라고 거절하던 까치는 여우의 등에 올라타고 개를 떠난다. 붉은 사막까지 달려간 여우는 까치를 등에서 떨어뜨리면서 말한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조심조심, 비틀비틀, 폴짝폴짝, 까치는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시작했어.’라고 끝난다.


어린 친구들보다 어른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내용이다. 어린이책에서 다소 어려운 소재를 다루는 작가라는 평에 고개를 끄덕인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복잡하다. 개는 어떻게 모두에게 너그러울 수 있을까? 까치는 자신의 날개가 개의 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우는 왜 그들에게 외로움이 뭔지 알게 하고 싶었을까? 까치는 여우가 나타나서 함께 떠나자고 말하지 않았다면 평생 개를 떠나지 않았을까? 서로의 눈과 날개가 되어 주면서 함께 살았을까? 개는 까치와 여우가 떠난 것을 알게 된 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까치를 버리고 떠난 여우에게서 들려온, 한순간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승리의 소리인지 절망의 소리였을까? 그림책 읽는 어른들과 이야기 나누기에 더 적합한 화두가 가득하다.


20211105_여우까치개 (2).jpg
20211105_여우까치개 (3).jpg
20211105_여우까치개 (11).jpg
20211105_여우까치개 (15).jpg 친구들과 책을 읽기 전 '개', '가치', '여우'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먼저 ‘개’, ‘까치’, ‘여우’ 세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을 이야기 나누었다. 생김새, 사는 곳, 떠오르는 이미지, 친구들이 나오는 동화책 등을 스케치북에 적는 시간을 가졌다. (Graphic Organizer 활동) 고사리손으로 스케치북을 채우는 기특한 아이들이다. 맞춤법이 틀린 곳이 더 정겹다.


20211112_이야기만들기 (3)_1.jpg
20211112_이야기만들기 (15)_1.jpg
20211112_이야기만들기 (17)_1.jpg '여우', '까치', '개'의 그림을 붙이고 말주머니로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아이들.


아이들과 책을 보았다. 의외로 아이들은 거부감이 없다. 미리 염려한 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아이들은 여우의 잘못을 말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마’, ‘얼른 사과해’라고 한다. 까치가 다시 개를 만나 사과하고 다시 잘 지낼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여우까지도 찾아와서 사과하고 셋이 잘 산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의 넉넉함에 부끄러워진다. 물론, 한두 명의 아이는 여우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아이들이 멋지다. 오늘도 그들에게 한 수 배운다.


20230406_여우 (8).jpg 여우와 까치에게 따끔한 충고를 개에게는 위로를 전하는 친구의 작품이다.
20230406_여우_하진.jpg 마음에 칭찬이 가득한 친구이다. 이상하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여우 뒷이야기_collage_1.jpg 『여우』뒷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출간한 친구들은 미래의 동화 작가들이다.



고학년 친구들은 『여우』 뒷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책 표지를 만들고 책 띠에 내용을 살짝이 담았다. 까치와 여우에게 배신당한 개가 다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내용을 담은 『불독과 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사람과 개』, 사막을 달리던 여우가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여우 2』. 미래의 동화 작가들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라는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라는 말이(에) 부끄럽지 않도록 스승인 아이에게서 배운다. 그 배움이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수련 중이다.



#마거릿와일드 #여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