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몇 살에 결혼할거야?

by khukoo

'너는 몇 살에 결혼할거야?'

이 질문,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다. 내일모레 서른이거나, 어제그저께 서른이거나, 뭐 그보다 어리고 늙은 많은 미혼 남녀들이 듣는 질문일 거다.


내가 그 질문을 처음으로 들은건 열아홉살 때였다. 2006년 12월 큰누나가 결혼하는 날이었고, 그 날 만난 생면부지 큰누나네 남자 선배들이 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그래서 나도 다짜고짜 물어보기로 했다.


"몇 살에 결혼해야 되는데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으니 또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그 아저씨가 고민에 빠졌다.


"서른 세살쯤 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오호"


나중에 알고보니 그 아저씨가 그 때 서른 두살이었다. 그리고 우리 큰누나 결혼을 축하하러 온 하객 중 한명한테 대시를 했다고 한다. 나한테 한 말을 굳이 그런 식으로 실천할 필요는 없었는데.


암튼 그때 신기했던 건, '33'이라는 숫자가 꽤 구체적이었다는 거다. 32도 아니고, 34도 아니고. 어떻게 33이 나왔을까.


3땡이라서? 그렇게 치면 4땡이 더 이득인데 왜 44살이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치면 또 5땡, 6땡이 있다. 아. 그러고보니 한국 사람은 3을 좋아한다. 4도 아니고 5도 아니다. 한국인은 역시 3이기 때문에 3땡이 최고다. 그래서 그 분은 서른 셋에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그럼 근거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제발 나에게 그 아저씨가 33에 결혼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 정확한 이유를 속시원하게 알려줬으면 한다 14년 동안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그럴싸한 이유는 3땡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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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아빠가 26세, 엄마가 20세 때 결혼하셨다. 그럼 우리 아빠는 왜 26에 결혼하셨을까? 여쭤봤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우리 아빤 늘 그렇다. 앞으로도 내가 아빠에게 중요한 질문을 종종 하겠지만, 참신한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다. 왜 스무살에 결혼했어요?


"스물 됐으니까 결혼했지"

"와우"


엄마는 스물에 결혼할 생각이 있었고, 그때 사귀던 게 아빠여서 결혼했다고 한다. 아빤 스물 여섯에 결혼할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마침 사귀고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여서 결혼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 결혼을 가장 후회하는 쪽은 우리 엄마다. 계획대로 된 건 엄마였을텐데?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인생이 잘 짜여진 계획과 정확한 숫자대로 흘러갈 필요가 있냐는 거다.


A는 서른에 결혼해서 서른 둘에 첫 아이를 낳고 서른 다섯엔 둘째를 낳겠다. 라는 계획을 가진 사람이 안타깝게도 스물 아홉에 결혼해버리고 말았다. 그의 인생은 실패했는가? 당연히 아니다.


B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아이도 가질 생각이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른 둘에 결혼해버리고 말았다. 아뿔싸 서른 셋에 아들까지 생겼다. 맙소사 서른 넷에 쌍둥이 여자아이를 낳아 다둥이 가장이 됐다. 인생 ㅈ망? 아니. 그냥 다둥이 아빠이실 뿐이다.


그럼 서른 다섯 독신이고 모아둔 돈도 딱히 없는 C는? 글쎄. 우리가 감히 판단할 수 있을까. 그가 서른 일곱에 결혼하고 싶을지, 영영 결혼할 생각이 없을지 우리는 모른다. 만약 그가 서른 둘에 결혼할 생각이었는데 실패했다면? 여자가 썅년이었을 가능성은? 아. 요즘같은 시국에 민감한 발언을 해서 미안하다. 사실 C가 개새끼였는데 실언을 했다.


이 정도만 해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파악했으리라 생각한다. 굳이 예를 더 들지 않겠다. 이미 앞에 말한 A, B, C 세 사람의 이야기로 충분했을 것이다. 왜 예를 3명을 들었냐면, 한국인은 3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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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하객한테 대시했던 형님은 어떻게 됐냐고? 시원하게 차였다. 그분이 맘에 들어했던 하객은 안타깝게도 내 대학동기였고, 스무살이었다. 놀랍게도 그 친구는 우리 엄마가 아니어서, 스물에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저마다의 인생을 살게 되어있다. 내 인생에 빗대어 남의 인생을 가늠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반대로 남의 인생을 나에게 대 보는건? 더 의미 없다. 나도 내 인생을 강동원이랑 비교해봤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행인 건 내가 강동원보다 공부를 잘했고, 그가 못 받는 4대보험 혜택을 누린다는 것이다. 어? 강동원 한양대 공대라고? 시발


내가 나를 강동원이랑 비교해보는 게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아니었다면 당신은 참 착한데 멍청한 사람이다.) 근데 내가 보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남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 중 무엇이 더 나은지 저울질하는 사람이 많다. 놀라운건 각자 들고있는 저울 상태가 다 엉망이다. 수평이 맞는 애가 하나도 없다. 웃긴건 저울에 올리는 것들 무게를 다 본인이 정한다. 100짜리를 올리면서 여기 올릴땐 50이라고 하고, 저기 올릴땐 150이라고 한다. 그 왜 있잖아요. 답정너?


그렇게 시덥잖은 짓 후에 남는 건 공허한 우쭐함과 출구없는 우울함 뿐이다. 둘다 간 건강에 나쁘다. 기왕 마실거면 한산소곡주를 추천한다. 저자가 애정하는 술이다.


우쭐하든, 우울하든, 둘 다 하지 마라. 어차피 당신이 들고있는 저울은 망가져있다. 남들도 다 똑같이 망가진 저울을 들고 있다. 망가진 게 정상이다. 사람 인생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저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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