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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17. 2022

약한 척하기 “示弱”

탁구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나는 지금껏 내가 귀찮아서 안 할 뿐이지 운동신경은 상당히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늘 체육 시간이면 여학생들 사이에서 군계일학과도 같은 존재였고 대학 때 남자친구에게 배운 포켓볼로 인문대 단과를 휩쓴 실력자였다.

그런데 마흔이 훌쩍 넘어 탁구를 시작하면서 내 둔한 몸뚱아리에 매일 좌절 중이다.

문어 같았다. 관장님 말대로 팔을 움직이면 허리가 흐물거렸고, 허리에 신경을 쓰면 팔이 제멋대로 흔들렸다. 총체적 난국과도 같은 내 몸 상태에 나조차 헛웃음이 났다.


아들의 사춘기에서 시선을 돌리고자 시작한 탁구였다. 번역 일도 끊기고 아직 출강은 정상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고 우리 세 식구의 공통 취미가 '고스톱'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창피하니 건전한 취미생활을 해 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막상 운동을 시작하니 잘하고 싶어졌다. 비록 이 비루한 몸뚱아리는 제멋대로 움직여 날 민망하게 만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는 아들에게 아파트 단지 내 탁구장으로 가서 같이 공 좀 쳐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흔쾌히 응했고 탁구장 관장님처럼 노련하게는 아니지만 제법 그럴듯한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다. 탁구를 치며 어릴 때부터 탁구를 가르친 보람이 있다 말해주며 아들에게 배우니 귀에 더 쏙쏙 들어온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아들의 얼굴에 비실비실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옳다구나!' 싶었다. 나는 이때를 놓칠세라 이제 갓 탁구의 세계에 입문한 어리바리 초짜의 티를 팍팍 내며 최대한 아들을 치켜세웠다. 잘 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건 다른 문제인데 너는 둘 다 잘하는 구나, 아하, 엄마는 그게 헷갈렸는데 네 말대로 하니 잘 되는구나 등등...


얼마 전 중국 사이트에서 사춘기와 관련된 글을 검색하다 본 문장이 있다.

 

 “不要和青春期的孩子‘较劲’,父母学会 ‘示弱’。”

사춘기 아이와 힘겨루기 대신 약한 척을 할 줄 아는 부모가 돼라.


부모는 늘 아이에게 지시하고 지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자리이고 상황이지만, 이게 다 아이 잘되라고 하는 바람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지시받고 지적받는 게 늘 달가운 일만은 아닐 테다. 부모님은 얼마나 잘나서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훈계만 하는지 아이의 불만이 용솟음처럼 터질 수도 있다. 바로 그럴 때 아이에게 조금 '약한 척'을 해보는 거다.

부모의 자리에 있어서 너를 가르치고 있지만 실상 엄마 아빠도 나약한 인간이고 서툰 부분도 많은 너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슬쩍 내비쳐 주는 거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조언을 구해보는 거다. 그럼 아이는 우쭐해지고 어깨가 으쓱거리면서도 부모에게 나도 필요한 존재이며, 부모에게도 내가 가르칠 무언가가 있다는 게 뿌듯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내 쌓아왔던 아이의 불만과 스트레스도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내가 엄마 아빠보다 잘하는 게 있고, 엄마 아빠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걸 보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난 앞으로 가끔 아이에게 탁구 강습을 빌미로 이런 '약한 척'을 해볼 작정이다. 탁구를 배우는 동안은 깍듯하게 아이를 대할 생각이다. 그렇게 아이에게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다 보면 정말로 내 아이의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자연스러워질 지도 모른다. 아이의 사춘기 시기에 아이를 한 인격체로 대하고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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