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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un 03. 2022

모성의 무게

母爱,只有做母亲才知道。

아들이 작년에 학교에서 '효행 글짓기' 상을 받아왔었다. 무슨 내용을 썼길래 상을 받았냐고 물었더니 씩 웃으며,


- 엄마가 늘 하는 말 있잖아. 엄마는 빨간색이고 아빠는 파란색인데, 나는 하늘색이라며. 기질적으로 아빠를 많이 닮았고 엄마랑 안 맞는다고. 그 얘기 썼어.


어머나. 이런. 대 환장.

선생님이 뭐라고 생각하실까. 도대체 이 녀석은 그 얘기를 어떻게 효행과 관련해 풀었다는 말인가. 당장이라도 학교를 찾아가 아이의 글짓기 내용을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교양 있는 엄마니까. 흥분하지 말자.


늘 입버릇처럼 해 오던 말이었다. 내 아이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은 마음속 스승으로 모시는 오은영 선생님을 통해 아이의 '기질'에 대해 알고 있었고, 나 또한 힘든 육아의 근본적인 원인을 나와는 다른 아이의 기질 탓으로 돌렸다. 나는 부지런하지만 가끔은 정도를 뛰어넘어 급했고 당장 결과를 봐야 했다.

반대로 남편은 차분하고, 침착하지만, 때론 사람 속을 뒤집어 놓을 만큼 느긋했다. 아이의 천성은 아빠를 닮아 느긋한데 성급한 엄마 밑에서 자라 늘 채근과 닦달 속에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나는 얼마나 답답해했던가.

그래도 지금은 말 길을 알아듣고 대화라도 하니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지만, 아기 때는 하루하루가 전쟁 통이었다. 사실 육아 난도가 절대 높은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내 망할 기질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었다. 남편은 아이와 잘 지내는데 온종일 붙어있는 주 양육자인 내가 아이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끊임없는 자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다 우리가 다르니까 힘든 거라고, 다르니까 삐그덕거리는 게 당연한 거라고, 남편과 있을 때면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 떠드는 아이를 보며 역시 저 둘은 쿵작이 잘 맞는 거라고, 내가 못난 게 아니라 그저 저 둘이 더 맞는 거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얼마 전 맘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 친자식이지만 아이가 싫다는 글이었다. 기르는 내내 속을 끓게 한 탓인지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밉고 어렵고 힘이 든다고 했다. 도저히 아이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되도록 피한다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자신이 모성이 없는 엄마처럼 느껴져 괴롭다고 말이다.


딱한 사연이었다. 그 글을 보며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 엄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아이는 아이대로 또 얼마나 속상했을까. 나 또한 그런 시기를 거쳤기에 그 엄마의 마음이 십분 이해 갔다. 그저 아이마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시기가 다를 뿐 -아니 정확히 말해 엄마가 힘들다고 느끼는 시기겠지만- 힘듦의 총량 법칙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혹자는 엄마라면 마땅히 아이를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마치 엄마에게 모성은 당연한 것처럼, 당연히 지녀야 할 덕목처럼 말이다.


女子本弱,为母则刚

 běn ruò , wéi mǔ zé gāng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나는 가끔 이 말이 거슬린다. 엄마라는 존재를 모든 수고를 묵묵히 감내해 내야 하는 사람처럼 만들어 버린다. 엄마라면 모성으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다.


아니다. 아닐 말이다. 엄마도 약해질 수 있다. 엄마도 사람이라 지친다. 애정과 인내로 아이를 대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의 과정에서 나약해지고 무너진다. 아이가 미울 수도 있다.


모성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짠, 하고 저절로 생기는 본능도 아니고 쌓을 수 있는 素養도 아니다. 그저 남편의 눈매와 나의 입꼬리를 닮은 아이가 쌩긋 웃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차오르는 벅찬 감정과 고마움에 이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일 뿐이다. 내 자식이라고 다 예쁜 건 아니다. 미울 때도 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 부분에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엄마도 엄마 노릇이 처음이니까.


얼굴도 모르는 그 선배 엄마가 빨리 마음을 털어내길 바란다. 제 자식이니 예뻐해야 하는 데 자꾸만 미워 보인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감정까지 인정하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조금만 참아주기를. 그리고 그 엄마의 주위에서도 괜한 모성을 강요하지 않기를. 대신 많이 위로하고 토닥여주기를. 그 엄마에게 다른 즐거움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每到夜深人静,就处在对孩子教导上无尽的自责中,不知如何缓解。恨不得第二天赶紧到来,我从头开始做个好妈妈。


정적이 흐르는 깊은 밤이 오면 아의 틈바구니 속에서 끝없는 자책에 시달리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해한다. 그러다가도 얼른 다음날이 되길, 동이 트면 다시 한번 좋은 엄마가 되겠노라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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