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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31. 2022

오기와 허세 그 어디쯤


가끔 이상한 오기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1998년. 풋풋한 새내기에서 헌내기로 넘어가던 시절, IMF 여파로 '금 모으기 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그즈음 개봉한 타이타닉은 많은 관객 수를 끌어모으며 연일 흥행 돌풍을 이어갔다. 하지만 타이타닉을 보면 우리가 모은 금이 다 외화로 새어나가는 꼴이 된다는 얘기에 나는 극장에 가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있었음에도, 남자 친구가 여러 번 보러 가자고 회유했었음에도, 난 꿋꿋이 버텼다. 사실 우리가 애써 모은 금붙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애국적인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다 보니까 보기 싫었다. 뭐 재미있어 봐야 얼마나 재미있다고. 흥.


그리고 작년에 전 세계에 흥행 돌풍을 몰고 온 오징어 게임. 우리 집은 ott 서비스를 구독하지 않기 때문이긴 하지만 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그 이상한 오기가 또다시 발동했다.


난 보지 않겠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 보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보지 않겠다.


이상한 오기는 굳은 다짐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무장한 세계 속에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줄거리를 알게 됐고 결말도 듣게 됐다. 그래도 보지 않으리라.


뭘까? 이 오기는 뭘까? 남들이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도 아니고, 혹시 허세일까? 흥. 난 유행 따윈 쫓지 않아. 난 나만의 길을 갈 거야... 하는 그런?


그래 뭐. 이 정도 나이가 되니 오징어 게임 스토리를 좀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고 유행에 뒤처진다는 생각도 안 든다. 누군가 봤어?라고 물어보면. 아니. 아직. 그러면 그만이다.


이 허무맹랑한 오기의 시발점은 어딜까?


나는 비교적 튀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했고, 취업할 때가 되어 취업했고... 결혼 적령기에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렇다면 너무나도 평범하고 스페셜한 일 없는 인생에 부리는 나름의 소심한 반항일까?


큰 사고는 칠 깜냥이 안되니 이런 식으로 오기를 부리며 세상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까?

날라리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침 찍찍 뱉고, 애들 괴롭히는 일진 말고, 내가 하고 싶다면 설령 그 일이 어른들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일지라도 해내고야 마는! 예를 들어, 공부 아닌 다른  일에 푹 빠지거나, 상식의 틀을 깨고 과감한 도전에 이 한 몸 던지는... 그런 용기를 내보는 '건강하고 신나는  날라리' 말이다. 하지만 한 번도 선뜻 그런 용기를 내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나이를 드니 자유로운 날라리가 되는 건 더 요원해졌다.


어쩌면 내 허무맹랑 오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질지 모르겠다. 그냥 이 정도의 오기로만 남아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 피곤하게 하는 아집이나 독선이 아닌 딱 이 정도의 오기라면 좀 귀엽지 않을까.


사진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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