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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25. 2022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작년부터 엄마의 자질구레한 부탁이 부쩍 잦아졌다.


시작은 단순한 송금이었다. 단골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구매해 돈을 보내야 하는데 평상시 텔레뱅킹으로 송금을 담당하던 아빠가 부재중인 터였다. 와병 중이던 친할머니의 병간호 때문에 남원으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엄마는 물품 구매나 송금 거리가 생기면 나에게 부탁했다. 15년 전 뇌 수술 후 섬세한 일에는 서툰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고 아빠도 집에 없으니 초반 몇 번은 흔쾌히 도와드렸다.


그런데 점점 횟수가 많아졌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당신들이 먹고 있는 건강식품을 인터넷으로 사면 싸다며 부탁하기 시작했고 작게는 만두나 냉면을 구매하는 일부터 크게는 안마의자 주문까지.

막내딸에게 전화 한 통만 걸면 며칠 내로 배달되어 오는 상품들에 무척 흡족해했다.


하지만 내 쪽의 상황은 좀 달랐다. 부모님이 물품의  종류를 말하면 난 검색에 들어가야 했고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액수가 큰 것들은 아빠가 제때 송금해 주었지만 오만 원 이하의 물건들은 차마 달라고 말하기 껄끄러워 내가 알아서 처리했다.

그런데 이게 다달이 쌓이다 보니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 쓰는 입장에서 차츰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일 년 가까이 해온 번역이 끝나 일거리도 마땅치 않았는데 엄마의 잦은 부탁에 나가는 돈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어느새 나는 엄마의 도깨비방망이가 되어있었다. 뚝딱, 전화 한 통화면 모든 게 해결됐으니까.

부탁의 횟수가 늘어난 만큼 나의 짜증 지수도 높아졌다.


그러다 얼마 전 신문에서 '키오스크 공포'라는 사설을 읽었다. 코로나 이후 늘어난 키오스크의 도입으로 고령층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디지털 단말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에 겪는 고충을 지적하며 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젊은 층의 노력과 정부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교육을 호소했다.


나도 햄버거집에 갔다가 내 앞에서 이전 화면으로 돌아갈 줄 몰라 당황하던 어르신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도와드리겠다 하니 무척 고마워하셨다. 그때 부모님이 생각났다. 우리 부모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럴 때 나처럼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이 불효 막심한 막내딸은 푼돈 좀 나간다고 부모님의 부탁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신문을 보는데 어찌나 얼굴이 달아오르던지, 얼마나 부끄럽던지.

생면부지의 노인도 도와줬으면서 낳고 길러준 부모님의 부탁을 귀찮아하고 번거로워했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子欲养而亲不待

 yù yǎng ér qīn bù dài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큰 벌을 받으려고 매일 볼멘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것인가.

나는 늙지도 않고 평생 쌩쌩한 모습으로 모든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거라 자만하고 착각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철이 없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내가 지켜본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노인을 부담스러워한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 경제적 부담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햄버거 가게 키오스크 앞에서 혹은 마트의 셀프 계산대에서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하는 노인을 만나면 눈살을 찌푸리지 말고 조금만 더 친절하게 굴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노인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첫걸음마를 뗄 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준 사람들이다. 그들의 수고와 지혜로 우리가 자라났고 우리가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어 행동이 느려지고 새로운 기기에 서툰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젊은 우리가 도와주면 된다. 그들의 불편함을 우리가 먼저 눈치채고 움직여주면 어떨까.   

엄마의 부탁에도 인상을 찌푸리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싶지만 말이다.

 

关爱今天的老年人,就是关爱明天的自己。

guān ài jīn tiān de lǎo nián rén , jiù shì guān ài míng tiān de zì jǐ

오늘 어떤 노인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건 내일의 자신을 돕는 일이다.  


家家有老人,人人都会老;我今不敬老,我老谁敬我?

jiā jiā yǒu lǎo rén , rén rén dōu huì lǎo ; wǒ jīn bù jìng lǎo , wǒ lǎo shéi jìng wǒ ?

집마다 노인은 있고 누구나 늙기 마련이다. 오늘 내가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노인이 된 나를 누가 공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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