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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24. 2022

아이의 탄생: 작은 새의 느닷없는 방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구 씨 : 기 본 적 있어요? 기.

-마담 : 기... 본 지 오래된 것 같네요. 갑자기 기는 왜요?

-구 씨: 가게에 기가 왔었어요. 어떤 XX놈이 애를 데리고 와서.

-마담 :... 새가 날아들어온 것 같았겠네요.


그 장면을 보면서, 작고 예쁜 새가 갑자기 날아들어온 것처럼 놀랐지만 기쁘고 경이롭다는 말을 하고 싶나 보다 했었다.


이튿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파드득, 이상한 소리가 났다.

'잉? 핸드폰 소리도 아닌데. 뭐지?'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세상에나. 높은 성전의 천장에 하얀 새 한 마리가 세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깨달았다.

갑자기 새가 날아들어 왔다는 건, 놀랍고 기쁘지만 여기서 살라고 둥지를 마련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내쫓을 수도 없어 어찌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아, 아기가 온다는 건 경이롭다고 말하기 전에, 당혹스럽다는 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뜻이었구나.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 본다면,

아이의 탄생을 집안으로 갑자기 들닥친 한 마리 새에 비유할 수 있을까?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많은 준비를 한다. 육아용품을 사서 아기방을 만들고 육아 서적을 보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아기는 불시에 들이닥친 새가 아니니 '가족'으로 받아들일 자세를 취한다. 새에게는 보금자리를 내어주지 않지만, 아기와는 우리의 모든 공간을 공유할 다짐을 한다. 하지만 나름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여전히 당황하고 허둥지둥 댄다.

아기가 온다는 건 예상했지만 아기가 생겨서 벌어질 현실은 예측한다고 준비되는 게 아니니까.


매일매일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으로 가득 찬 육아 세계를 아이와 주 양육자(내 주위는 주로 엄마) 사이의 시소게임이라고 한다면, 나는 늘 엄마 편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을 일찍 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내 친구들의 상당수는 아직 초등이나 미취학 아동을 기르고 있다. 그들을 만날 때면 늘 육아가 가장 큰 화두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만남 끝에 난 늘 친구의 노고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너 진짜 잘하고 있는 거야, 너니까 이렇게 한다, 기특하다 기특해, 이렇게 잘할 줄 몰랐네.


엄마가 아이를 기르는 건 당연한 이치 같지만, 그 행위를 실천하기 위해 큰 노력과 눈물이 따른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엄마의 노고에 대한 칭찬에는 인색하다. '청춘이니까 아프다.'처럼 '엄마니까 당연하다.'라고 치부해버린다. 엄마도 처음이고 매일 부딪히는 상황은 다 낯선데도 우리는 모두 노련한 엄마가 되라고 요구한다.


육아에는 인풋만 있고 아웃풋이 없다. 아니 있지만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게 없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 정도는 흘러야 아주 조금의 성과가 보이지만 우리는 또 그걸 '성장'이라고 부르고 너무나 당연한 수순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건 한 가족이, 서툰 엄마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만들어 낸 성과가 분명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하고 당연하게 아이를 안고, 먹이고, 재우고, 키우고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칭찬을 해주자.

어쩜 이렇게 예쁘게 키웠냐고, 어쩜 이렇게 잘 키웠냐고. 대단하다고.

그 한마디면 족하다. 그 한마디로 잠시나마 웃을 수 있고,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致妈妈:别让你的辛苦付出成为理所当然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께: 당신의 노력과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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