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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21. 2022

노화와의 전쟁

岁月不饶人

현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약간의 강박증이 있다고 한다.

나는 뭐 될 대로 살림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독 참을 수 없는 '그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흰. 머. 리.

보이는 족족 뽑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새치라고 하기엔 내 나이를 고려하면 너무 염치가 없어 흰머리라고 명하는 게 정확하다.

나름 동안이라 자부하고 독한 의지로 슬림한 몸매를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흰머리만큼은 도무지 막아낼 재간이 없다. 처음에는 정수리 쪽에서 한 두 녀석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난 가차 없이 뽑아버렸고 언제부터인가 아들에게 머리를 맡기며 내 시선과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의 '수색'을 부탁했다. 그리고 머리가 간지러운 곳이 생겨나면 어김없이 흰머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봐줄 수가 없었다. 날씬하고 동안인 나에게 흰머리는 가장 큰 노화의 상징이었기에.

주변에서는 다들 말렸다. 그렇게 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뽑다가는 국지적 탈모가 온다는 둥,  한두 개 뽑다 보면 근방에 흰머리 부대가 형성된다는 둥, 모두들 염색이나 컷팅 혹은 무관심을 권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화장실 거울 앞에만 서면 나의 시선을 자극하는 흰머리의 등장을 좌시할 수 없었다. 이마에 주름이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늘 흰머리를 뽑았다.

그러다 한참 바쁜 어느 시점이 지난 후 정수리에 한 무더기의, 일개 부대쯤 돼 보이는 흰 머리카락들을 맞닥뜨렸다.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나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정수리 부분에 보기만 해도 뻣뻣하고 굵은 흰머리 녀석들이 꽤 긴 기럭지를 자랑하며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어느새 이마선 부근 일대에 자리 잡은 흰머리의 등장까지. 그날 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보이는 족족 뽑아대던 시기는 끝났다. 이제는 이 녀석들과 평화 공존하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우선 코털 깎는 작은 가위를 들고 조심스럽게 잘라보았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정수리 부분을 하도 쳐다보고 있으니 눈알이 위로 뒤집혀 까지는 기분이었다. 화딱지가 났다. 이 방법도 글렀다.

결국 난 방치를 선택했다. 나의 반격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챘는지 흰머리 녀석들은 일주일새 내 머리에 종족의 씨를 마음껏 퍼트렸다. 난 패배했다. 역시 인력으로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저 순종하고 따르는 수밖에.


人自从来到这个世上,在成长的过程中不可抗拒地走向平庸和衰老。

이 세상에 온 이상 세월의 풍파 속에 사람은 누구나 평범해지고 늙기 마련이다.


나의 노화는 시작되었다. 사실 흰머리 말고도 자꾸만 생겨선 안 될 것들이 생기는 자궁, 그리고 핸드폰을 보다 티브이를 보면 흐릿해지는 초점 등등, 이미 나의 몸뚱이 곳곳에서 나이 들었음을 증명할 사건들은 줄지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영원히 청춘일 줄, 영원히 젊고 아름다울 줄 알았으니까.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건 기쁘고 감사해하면서 내 머리에 흰머리가 나는 건 그토록 싫어했다니. 정말 모순적인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조금씩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노력을 기울여봐야겠다. 자꾸만 눈에서 멀어지는 책, 교묘한 화장술로 가리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도드라지는 눈 밑 주름, 그리고 내 머리를 장악해가는 흰머리 부대를.

어제보다는 좀 늙고 힘없어지긴 했지만 흰머리가 많아진 만큼 주변을 감싸는 내 포용력과 이해력이 더 늘어났을 것이라 믿어 보면서.


坦然地面对老去,是对岁月最好的尊重

늙어가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세월에 대한 가장 큰 존중이다.

衰老最大的悲哀不是身体的衰弱, 而是心灵的冷漠。

늙어서 가장 큰 슬픈 건 쇠약해지는 몸이 아니라 무뎌지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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