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바람 Jun 17. 2022

서울 여행 2탄

조식은 신청하지 않았다. 만약 해외여행 중이었다면 입 짧은 아들의 배를 그나마 든든히 채울 수 있는 곳은 호텔 조식이었을 테지만 우리는 '서울'에 있으니까.

게다가 전날 뚜벅이로 다닐 걸 계획했었기에 이른 아침의 기상은 불가능할 거라 확신했다.


대신 첫날 체크인 때 호텔 앞 건너편에 봐 둔 설렁탕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검색해보더니 이 동네 맛집이라 했다. 우리는 설렁탕 세 개를 시켰고 유독 아침에 더 못 먹는 아들을 빼고는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밥을 먹고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쳤다. 하늘이 맑게 개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날씨면 충분했다.


체크아웃과 동시에 차를 몰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아이가 어릴 때 수원 화성은 종종 다녀봤지만, 경복궁은 올 생각을 못 했었다. 야간 개장 사진을 보며 참 예쁘다, 생각은 했지만 선뜻 경복궁을 보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 아들과 함께 꼭 경복궁을 들러보고 싶었다.


세종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광화문을 향해 걸어가는 데 어느새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오늘도 날씨 요정 우리 편이었다.


누가 아들이고 아빠인지 모르겠다.


의외로 아들이 경복궁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한창 사춘기라 이런 곳에 오면 심드렁할 줄 알았는데 날씨가 좋아서인지 연신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댔다.


사춘기 아들 녀석이지만 어느 때 보면 감성적인 면이 많다. 어릴 때는 만화 '또봇'에 슬픈 장면이 나오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얼마 전에는 학원을 다녀오는 길에 밤하늘의 달이 너무 예쁘다며 삼각대까지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경복궁의 구석구석 그리고 하늘을 보며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아들은 외모에서부터 성격까지 아빠의 거푸집이지만, EQ 쪽은 상당수 모계의 영향을 받았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질은 타고나지만 태어난 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의 영향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테니까. 아빠보다 공감 능력이 좋고 감성지수가 높다는 건 엄마인 내 덕인 게 분명하다. 히히.

아들은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의외였다.


복궁을 나와 삼청동으로 향했다. 16년 전 광화문에서 회사를 다녔던 나에게 삼청동은 그야말로 핫스폿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집이 있고 쫄깃쫄깃 맛있는 항정살을 파는 고깃집이 있는 곳. 아이와 걸으며 회사 선배들에게 비싼 걸 얻어먹을 때 자주 찾았고 엄마 아빠의 데이트 장소였다는 얘기해주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걸으며 한참을 구경하다 아직 배가 꺼지지 않은 관계로 빙수와 와플로 점심을 대신했다. 하지만 내 최애 파스타 집에 걸린 폐업 푯말에 잠시 마음이 쓰렸다. 간혹 오랜만에 서울을 올 때 내가 알던 음식점의 폐업 소식을 접할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삼청동 어느 팥빙수 집


그리고 남편의 염원이 담긴 수족관 방문.

전날 나름 강행군을 해서인지 밀려오는 졸음에 아들과 남편을 수족관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커피숍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발견한 면. 목. 시. 장. 

어머. 괜찮다. 가보자.

수족관에서 구입할 물고기를 고른 남편의 손을 끌고 면목 시장으로 향했다. 남들에게는 늘 있는 일상의 장소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장소마저 특별했다. 소박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즐겁게 구경을 마쳤다. 그리고 처음 들어올 때부터 눈여겨봤던 가게에서 새우튀김과 게 튀김을 사 가지고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고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하늘을 수놓은 예쁜 구름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비추었다.

우리는 이렇게 1박 2일간의 서울여행을 마쳤다.


人之所以爱旅行,不是为了抵达目的地,而是为了享受旅途中的种种乐趣。

rén zhī suǒ yǐ ài lǚ xíng , bù shì wèi le dǐ dá mù   , ér shì wèi le xiǎng shòu lǚ tú zhōng de zhǒng zhǒng  qù 。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착기 때문이 아니라 여정에서 만나는 많은 즐거움 문이다.


안다.

특별할 게 없는 여행이었다. 서울의 숨어있는 명소를 찾아간 것도 아니고, 소위 핫하다는 맛집이나 카페를 방문한 것도 아닌, 처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볼 법한 곳들만 다녔다는 것도 안다. 남들에게는 일상의 공간이고 일터였을 곳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추억여행이었다. 대학 시절,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무작정 대학로 거리를 누비다 우연히 발견한 '여행스케치'의 소극장 콘서트를 보기 위해 마지막 남은 용돈을 박박 긁어 인출해야 했던 그곳, 좌판 떡볶이로 저녁을 때우고 길거리에 앉아 통기타 아저씨의 공연을 보던 그곳.

그 추억의 장소를 이제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내가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찾아간 거다. 엄마에게도 이런 낭만이 있었노라고, 그 시절이 늘 그리웠지만 그래도 그런 추억과 낭만이 있어서 행복했노라고. 그리고 너에게도 앞으로 이런 예쁜 추억과 낭만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이번 여행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

아들이 내 시그널을 잘 알아차렸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들과 놀러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주말을 우리와 함께 보내준 것만으로도 아들이 너무 예쁘다. 시도 때도 없이 팔짱을 껴대고 애정 표현을 하는 엄마가 내심 귀찮았을 텐데도 군소리 한마디 없었던 게 고맙다. 아이에게도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걷고 얘기를 나눴던 시간은 분명 소중했으리라 믿는다.


虽然回家后,手脚酸痛,但是我依然会带上你,再次旅行, 不喂辛苦,之位让你认识不一样的世界。

suī rán huí jiā hòu , shǒu jiǎo suān tòng , dàn shìwǒyī rán huì dài shàng nǐ , zài cì lǚ xíng , bù wèi xīn kǔ , zhī wèi ràng nǐ rèn shí bù yī yàng de shì jiè 。

집에 돌아온 후 온몸이 다 쑤시지만 그래도 데리고 여행을 갈 거야. 너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깟 고생쯤 아무것도 아니!

작가의 이전글 서울 여행 1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