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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Kim Nov 18. 2015

닭 이야기

요즘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예년보다 일찍 몬순이 찾아 온 느낌이다. 보통 네팔의 우기는 5월 중순부터 시작되어 길게는 9월 하순까지 이어진다. 우기가 시작되면 전기 사정이 조금 나아진다. 하루의 반 이상 정전이 되던 것이 몇 시간이 줄어 든다. 그것 만으로도 정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속 시원히 뚫리는 기분이다. 일주일 전에 정전시간이 줄어든다는 소식이 왔다. 그것은 이미 우기가 시작되었다는 사인이기도 한데, 시기적으로 보면 우기는 이르다.

어쨌든 오늘도 서북쪽에서 몰려 오는 비구름 때가 한바탕 비를 뿌리고 지나갔다. 마침 정부 공휴일이기도 하여 거리를 복잡게 하는 차량도 느슨하다. 저기압으로 인해 찾아오는 신체의 반응은 졸음이고 피곤함인데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비구름처럼 밀려오는 가운데 난데없이 장닭의 울음소리가 도심을 가르는 것같이 귀를 울렸다. 귀를 의심했는데 또다시 집안이 난데없는 장닭의 울음으로 가득했다.

아차 싶었다. 바깥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어제 시골 전도자로부터 닭을 한 마리 가져왔으니 몸보신을 해서 먹으라는 전화가 온 것이 생각났다. 급하게 옥상에 가 보니 장닭 한 마리가 대나무 바구니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녀석은 깃털이 멋지고 풍체가 그렇듯 한 장닭이었다.

네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육류 중 하나가 닭고기이다. 닭은 보편적으로 머슬라(가레가루 및 기타 양념가루를 섞어 만든 것)를 넣어 기름에 볶아 고기 떨가리를 만들어 먹는다. 튀겨서도 먹지만 우리가 먹는 후라이드 치킨하고는 좀 차이가 있다. 네팔에서 이렇게 저렇게 먹은 닭고기가 어느 듯 입맛에 베여 짜지 않으면 어딜 가든 먹을 만 하다.

오늘 집안을 쩌렁 거린 닭의 울음소리는 오랜만에 듣는 시골소리였다. 닭의 울음소리는 여명을 알리고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동물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는 닭이 울면 어둠이 끝나고 새벽이 오면 밤을 지배하던 귀신도 물러간다고 생각하여 상서롭고 신비한 길조로 여겨왔다.

언제부터 닭을 기르게 되었는지는 확실하게 기록된 것이 없으나 <후한서> 동이열전에 동이의 특산물로 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보다 휠씬 이전 인, 봉황을 상징한 염제신농 시대부터가 아닌가 그렇게 전한다. 우리나라는 닭을 길조로 여겨 숭배하는 풍속이 신라와 고구려에 널리 행해졌으며 건국신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닭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설날 혹은 정원대보름 꼭두새벽에 닭 울음 점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닭 울음 소리가 열 번 이상 울면 그 해 풍년이 들고 열 번 이하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또 닭이 홰에 오르는 시간에 따라 쌀값이 오르고 내린다고 생각했는데, 초저녁에 홰에 오르면 쌀값이 오르고 밤늦게 오르면 쌀값이 내린다고 하였다.

또 닭이 이동하는 공간에 따라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는데, 닭이 감나무나 담장 위에 오르면 재수가 좋다고 여겼다. 또 닭이 항상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그 집안에서 벼슬할 사람이 나온다고 여겼으며 장마 때 닭이 지붕 위로 올라가면 장마가 갠다고 생각하였다. 반대로 닭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불길하고 닭이 낮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겼다.

조선시대에는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어 두었는데, 닭이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이 있다고 칭송한다. 닭의 벼슬冠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이며, 때를 맞춰 울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신信이라 했다.

이러한 덕을 지닌 닭이 전통혼례 초례상에 반드시 등장한다. 신랑 신부는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서서 백년가약을 맞는다. 닭을 청홍보자기에 싸서 상위에 놓거나 어린 동자가 닭을 안고 옆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폐백례를 드릴 때도 닭고기를 놓고 절을 하는데, 이러한 것은 닭이 지닌 다섯 가지의 덕을 배워서 실천하라는 의미와 길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합총서>에 보면 닭은 삼 년 이상 키우지 말고 잡아 먹어 라는 기록이 있다. 삼 년 이상 키우게 되면 닭이 둔갑하여 주인을 괴롭힌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닭을 삼 년 이상 키우면 너무 질겨서 먹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 카트만두에 온 닭이 몇 년생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시골 토종 닭이다. 토종 닭 하면 일반적으로 육질이 질기다고 생각한다. 비록 삼 년이 넘었고, 육질이 질겨 먹기가 힘들어도 열 두 시간 넘게 밤 버스를 타고 생닭 한 마리를 안고 온 전도자의 정성에 감복해서라도 기꺼이 잡아 밥상에 올릴 것이다.

쩌렁한 울음소리와 빛깔 좋은 벼슬 그리고 멋진 털이 너를 잡기에 아까운 마음이나 그 보다 더 큰 정서에 감복하여 추호의 흔들림 없이 실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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