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삶의 의미

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할수록 괴로워지는가

by 사색

나는 한동안 삶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다.


삶의 실패, 되돌릴 수 없는 실수 그리고 스스로 내던져버린 나의 소중한 가치. 그 이유를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내가 삶의 의미,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다. 배부른 소리라는 거. 누가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따져가며 살아가는가. 사는 게 그냥 사는 것이지.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살기보다는 이미 태어났기에 사는 것이고 죽어야 할 이유가 없기에 죽지 않는 것에 가까운 것을. 말 그대로 배부른 고민이었고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여본 적 없는 어리석은 젊은이가 할만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이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계속해서 마음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원을 그리던 나는 어느 순간 마음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하고 뚫려버렸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정말 많은 것이 빠져나가더라.


지난 3주는 나에게 정말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군대라는 누구보다도 평등한 부조리 앞에서 누가 사회에서의 원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의 모든 허영과 지위를 내려놓고 우리는 공평하게 뒤섞이고 흔들렸다. 나조차도 모든 인연과 얽매임, 고민들을 사회 속에 내려놓은 상태로 마음의 구멍 하나만을 덩그러니 들고 온 채 군대에서 고민했었다. 나는 왜 사는가 하면서 말이다.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알은 하나의 세계라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격은 하나의 세계와도 같다고. 새로운 장소와 낯선 사람들, 무수히 많은 세계들과의 충돌을 통해 나의 세계는 깨지고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그 균열을 통해 나의 경계는 넓어졌으며 새로운 깨달음이 들어찼다. 나는 나라는 세계의 폐쇄성과 시간의 일시성, 모든 것이 찰나라면 무엇이 최선인가를 사색했다.


1. 나라는 세계의 폐쇄성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갔다. 미지의 만남 속 나는 낯선 이들 앞에서 기대와 두려움을 품고 조심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토로했다. 나의 불안의 이야기를, 우울의 연대기를 말이다. 군대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줄곧 정리하고 가다듬었던 나의 이야기였으므로 말하는 것에는 거침이 없었다. 아마도 이는 나의 통찰은 완벽했으며 나의 삶에 해결책은 없으리라고 타인에게 확언받고 싶다는 오만한 마음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나의 오만함이 누군가의 눈에는 너무나 가소로웠다.


날카로운 지적이 들어왔다. '너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너의 불행을 토로했을 것이냐? 그리고 그 모든 괴로운 이야기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들어준 이들이 너에게 진지하게 해 준 조언에 네가 귀 기울이고 바뀐 적이 있는가? 만약 네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라면 너는 애초에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아니냐? 너는 그냥 네 불행을 토로하고 싶어서, 남들은 관심도 없는 너의 불행을 주저리주저리, 타인을 너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


실로 날카로운 지적이었고 뼈아픈 지적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충격에 숨이 멎었고 눈물을 한 방울 찔끔 흘렸다. 나는 나의 모순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직면했고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렇다. 내가 주저리주저리 남들 앞에서 늘어놓은 말들은 그저 타인에게서 동정과 위로를 구걸하고, 스스로의 사고의 벽을 굳히기 위한 반복적인 행위였을 뿐, 나는 진심으로 나의 문제의 해결을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스스로의 불행의 원인이 내 삶이 아니라 나에게 있음을 회피하고, 세상을 탓하고자 하려고 했을 뿐. 나도 직면하지 못했던 나의 위선과 모순이 타인에게 들춰지니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젊은 꼰대였음을. 꼰대는 별다른 게 아니다. 타인의 말에 경청하지 않고, 본인의 말만을 내뱉는 자, 그 자가 곧 꼰대이다.


꼰대로움, 그것은 아마도 내가 평생을 거쳐 경계해 왔던 나의 가장 불길한 가능성일 것이다. 나라는 세계의 확장을 가로막고 나의 성장을 영구히 멈추는 것이었기에, 본질적으로 내가 가장 혐오하는 자들의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반복적인 사고와 글쓰기로 나의 세계를 굳건히 다졌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실 굳세짐이 아니라 굳어짐일 뿐이었다.


그래도 쓴 약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백 마디의 격려보다 한 마디의 독설이 사람을 깨우치게 하더라. 그 한 마디의 날카로운 독설이, 촌철살인의 기세로 날아와 나의 본질을 관통했고, 모순과 위선으로 매듭지어진 나의 연약하고도 닫힌 세계를 산산조각 내었다. 문제는 나의 어리석은 사고에 있었다. 내가 스스로 변하기 전까지는 남들에게 나의 불행을 토로하는 일은 영원히 무의미하고 위선적인 행위임이 분명했다.


2. 시간의 일시성


한 차례의 충격적인 사건 이후로 나는 진심으로 변화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내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나와 정반대의 사람들, 단순하고 명확하며 세상을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이들 말이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 경청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아 아침이다 하고 일어났고 밥을 먹을 때면 아 밥이다 하면서 먹었지, 좋은 일이 있으면 좋아했고,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그저 짜증을 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단순 명확했으며 당장의 상황에 대해 그 이상, 그 이하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날카로운 독설이 꿰뚫었듯이 나의 괴로움의 원인은 외부환경의 탓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었다. 아마 내가 당장 이들과 삶을 바꾸어 다시 산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여전히 행복하고 즐거울 것이며 나는 여전히 불행하고 괴로워할 것임이 분명했다. 결국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사고와 행동의 모순과 위선이었기에.


나는 줄곧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가 창조해 낸 관념이자,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결코 도달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오직 현재를 살아간다고 믿으며 말이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여전히 행동으로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하기에 불행할 수밖에. 하지만 세상을 단순하고도 즐겁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짧은 연락을 마치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녕 그동안 나의 모든 질문이 무의미했음을. 정녕 시간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면, 과거가 결코 재현하지 못할 불완전한 기억에 불과하고, 미래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미숙한 예측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항상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비가역적인 존재에 불과한데, 어찌 삶의 모든 순간을 관통하는 진리가 존재하겠는가. 그것도 20대 초반에 불과한 내가 말이다. 나는 그야말로 어리석고도 무모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시간의 일시성을 자각하고 나니, 우리는 오직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원불멸하는 삶의 의미 따위를 탐구하는 것은, 풀리지 않는 행복의 열쇠를 찾는 일만큼이나 그 자체로 무의미하고 무모하다.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삶을 관통하는 의미에 기대기보다는 잠깐의 행복이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에 가깝기에. 우리에게는 잠깐의 달콤함, 잠깐의 평안, 잠깐의 안식이면 충분하기에, 그 잠깐의 즐거움을 통해 우리는 현재를 만끽하고 지금의 괴로움을 참으며 버텨낼 수 있다. 우리는 찰나를 연속적으로 그리고 영원과 같이 살아가는 존재이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질박한 질그릇만을 가지고 망망대해가 펼쳐진 백사장을 걷는 것과도 같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 우리 삶의 존재가치를 찾는 일은 이러한 백사장에서 석유를 찾아내는 일만큼이나 요원한 행위일 것이다. 그 자체로 쉽지 않으며, 어리석고 스스로를 깊이 매몰시키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작은 삶의 행복들을 찾아 나서는 일은 백사장에 놓인 작은 조개나 유난히 둥근 자갈을 줍는 행위와 같다. 우리를 멈춰 세우는 대신 우리를 우선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 소소한 즐거움만으로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하루 작은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진주와 보석 같은, 삶이라는 파도에 밀려 들어오는 예상치 못한 작은 행운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젊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들이 채 몇 걸음 걸어오지 않은 현재의 발자국에서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요란한 목표에 매달려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기보다는 당신의 발아래에 놓친 작은 조갯조각을 놓치지 않기를,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을 쉬이 놓치지 않기를 말이다. 지금 그대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보잘것없는 존재이기보다는 그것이 본래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계의 무덤덤하고 무정한 속성이기에.


그러면서 점점 자신이 남겨온 발자국에 충분히 익숙해지다 보면 당신은 어느 순간 넘실대는 파도 속으로, 점점 깊은 삶의 격류 속으로 발을 내딯을 용기가 생길 것이다. 물길에 휩쓸려 중심을 잃기보다는 흐르는 물속에서 더 귀한 것들을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점점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삶의 의미 또한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3. 모든 것이 찰나라면 무엇이 중요한가


삶의 일시성, 우리가 오직 현재만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곧 모든 것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현명함과 어리석음, 심지어 지금의 깨달음마저도 말이다. 우리가 사진첩의 어느 한순간을 딱 펼쳐보았을 때, 아무리 동일한 장소와 시간, 외형과 동행인을 구현하더라도 결코 그때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깨우쳐지지 않는 삶의 의미가 괴로움이듯, 모든 것이 지나가는데 그때와 동일한 기쁨과 즐거움, 슬픔마저도 붙잡으려는 것은 아마도 미련일 것이다. 스스로를 괴로움으로 이끄는 미련 말이다. 그러니 그 괴로움을 계속해서 손에 붙드는 미련한 짓은 그만두고, 손을 떼 당신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일을 하여라.


지금의 찰나가 지나가면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현재를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으로 힘든 상황에서 지금의 고통을 생생히 느끼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그러므로 인생은 단순하면서도 진실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밥 한 상, 누일 곳, 막역한 친구 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연인 하나면 충분한 것이다. 괴로움이 다가오더라도 그것 또한 잠시 머무를 뿐이다. 삶이라는 동전뒤집기 내기에서 잠시 뒷면이 나왔을 뿐 그것이 진정 당신 삶의 전부요, 결말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한다. 삶도, 죽음도, 진리도. 당신이 이곳을 떠날 때까지 무한히 변화할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에 감사하며 입 맞추기를

우리의 손을 떠난 일들에 대해서 미련 없이 뒤돌기를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소유하고 긍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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