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버려요
“이건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야.”
살다 보면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어쩌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사람이
내 삶 깊숙이 들어와 마음에 자리 잡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인연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멀어지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인연은 ‘맺어지는 것’보다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고도 귀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람을 참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껴온 것이기도 해요.
학부모님, 제자들, 동료들…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대부분이 따뜻한 인연으로 남아 있더라고요.
대학시절부터 과외를 하며 만난 한 어머님이 계세요.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는데, 만삭인 제 모습을 보며
“쉬엄쉬엄 해요, 선생님” 하시며 조용한 방 하나를 내주셨어요.
그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깊이 남았고,
놀랍게도 그 인연은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요.
살면서 몇 번의 위기가 있었죠.
허리 디스크로 큰 수술을 받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이 제게 찾아와
손을 잡고, 따뜻한 눈빛으로 위로를 건넸어요.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엔
딱한 제 사정을 듣고 아무 조건 없이
도움을 주었던 지인도 있었죠.
“힘내요, 다시 괜찮아질 거예요.”
그 한마디에 얼마나 울컥했는지 몰라요.
이처럼 고맙고 귀한 인연들은
어쩌면 그 시절을 견디게 해준 가장 큰 힘이었어요.
생각할수록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분들 덕분에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한편, 아무리 가까웠던 인연이라도
사소한 오해로 멀어졌던 사람도 있었어요.
서운함이 쌓이고, 서로 말하지 않으면
그 사이엔 어느새 벽이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무르익을 즈음
조심스럽게 연락을 해보았어요.
“잘 지내요?”
짧은 메시지 하나가 다시 인연의 문을 열기도 하더라고요.
좋은 인연은 난초 같다는 말이 있어요.
향기롭지만 연약해서,
그저 두기만 해선 안 되고
정성 들여 보살펴야 하더라고요.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참 따뜻한 사람이었어.”
이렇게 남고 싶다고요.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 해도
그걸 지키는 건 결국 우리의 마음이에요.
작은 관심과 배려, 기다리는 인내,
그리고 먼저 손 내미는 용기.
그걸 담아내는 사람이
인연을 오래도록 향기롭게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며,
고맙다고, 소중하다고 말해보고 싶어요.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잘 지켜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다. 인연이란 인내를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인 것이다.
_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