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냄새
이제는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나의 외갓집은 양식 건물 5층짜리의 거대한 나무 서까래가 바치고 있는 곳이었다. 한눈에 봐도 두꺼운 나무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면 부산 특유의 바다냄새가 한껏 들이닥치는 마당에 벽돌로 쌓아진 화단 안에는 계절마다 꽃이 활짝 펴 있었다. 나는 주로 여름에 외할머니댁에 방문을 했는데, 아침 일찍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종일 이동하면 깜깜한 저녁이나 돼서야 외갓집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미더덕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해놓으셨는데 그 맛이 얼마나 감칠맛이 가득했는지 삼십 년이 훨씬 지나도 아직까지 그 맛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할머니표 전복죽은 내장이 녹진하게 들어간 고소한 전복죽이었는데, 고소하고 어린아이의 입맛에는 세월의 연륜이 녹아져 있는 맛인지는 모르고 깜짝 놀라는 색다른 음식의 세계였다.
나의 사촌들은 늘 그 집에 두런두런 모여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나를 기다리곤 했다. 그중에 동갑내기 사촌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데도 늘 만나면 반갑고 설레어서 부산에서는 짝꿍처럼 늘 붙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동네는 온천이 있다고 하여 온천장이라고 불리었다. 온천장이 있는 동네는 그래도 나름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동네였다. 동네에 관광객이 꽤나 다녀가는 곳이라 이곳저곳에 밀면이며 맛있는 식당들이 즐비했던 기억이 난다. 외갓집에 나와서 이백여 미터를 걸어가면 큰 네거리가 나오는데, 그 네거리 오른편에 닭을 튀기는 집이 있었다. 서울에는 한창 멕시칸치킨이 유행하던 때였는데 부산에는 그런 체인점이 전무한 때였다. 나는 양념치킨이 먹고 싶어 할머니에게 사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는 대부분 아나고를 사 와서 초장에 듬뿍 찍어 깻잎에 싸주거나 요구르트를 사 와서 도시의 향수를 달래주곤 했는데 그날 따라 양념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 할머니에게 졸라대니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동네 닭 튀기는 집에 데리고 갔다. 양념은 없고 그냥 누렇게 튀긴 닭을 몇 마리 포장해서 사촌들과 나눠 먹으면서 나는 '서울에는 이것보다 훨씬 맛있는 치킨이 있는데' 하면서 괜한 너스레를 떨곤 했다.
오늘따라 외할머니의 된장찌개가 참 많이 그립다. 이미 하늘에 계시지만, 그 맛과 할머니의 품이 참 그립고 보고 싶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 갑자기 변화가 생기거나 할 때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한다고 한다. 나는 오늘도 많은 환경에 처해있는데 그래서 더욱 옛날이 생각이 나나 보다. 오늘 저녁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녹진한 내장을 잔뜩 넣은 전복죽을 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