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쌀국수 사장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by 로이홀릭

십 년도 더 된 그때, 나는 회사를 잠시 그만두고 미국 LA에서 3개월 정도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내가 있었던 곳은 산타모니카라는 곳이었다. 겨울이었지만 따스한 햇살이 가득 비쳐주고 거리마다 푸른 나무와 여유 있는 표정의 사람들이 거리를 거니는 곳이었다. 산타모니카 해변에는 비치볼을 하는 주민들이 늘 바글거리고, 주말이면 자전거 타는 사람이며 산책하는 사람이며 북적거리던 곳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둣가 근처에는 회전관람차가 돌고 있었고 작지만 있을 건 있는 놀이공원이 있었다. 당시에 돈이 많지 않아서 가보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던 부바검프(해산물 요릿집)는 위엄 있게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캘리포니아 정신을 담아 화려한 조명과 함께 늘 거기 있었는데, 결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이제야 그때 가볼걸 하며 아쉬워하는 마음이 든다.


가난한 여행자에게도 향수병이 도져서 국물 요리가 먹고 싶었는데, 코리아타운에 가서 한식을 사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국물이 너무 먹고 싶어서 찾다 보니 주로 중국인 혹은 이주민들이 저렴하게 운영하는 쌀국숫집이 있었다. 어디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집에서 버스를 2번 정도 갈아타고 1시간 30분간 버스를 타고 주변 관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이국적인 모습에 한껏 취해 있다 보면 어느새 다다르는 2층짜리 건물이 나오는데, 거기 2층에 작지만 강렬한 빨간색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간판 Pho 99(인걸로 기억하는데 이 기억도 어렴풋하다)과 함께 등장하는 곳이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듯했지만 5초 정도 흐르면 적응하는 냄새였고, 훅훅 들어오는 습도 가득한 가게의 온도는 쌀쌀했던 내 몸을 녹여주는데 한몫했다. 부디 베트남 사람이 사장님이었길 바랐지만, 중국 아저씨가 사장님이었고 서빙은 베트남계 청년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소스통 끝쪽에 말라붙어 있는 호이신 소스와 수차례 설거지를 당한 모습이 역력한 베트남식 숟가락과 젓가락은 비록 닳아있어도 이 가게가 잘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여 내심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는데, 엄청난 크기의 그릇에 쌀국수가 잔뜩 들어있고 방금 씻어 나온듯한 반듯한 숙주가 뜨거운 물에 반쯤은 담가져 있고 이제 앞으로 뜨거운 물에서 익혀질 고기는 선홍색 빛을 살짝 띠며 그릇에 무심하게 담겨 있었다. 국물을 좋아하는 나는 숟가락에 국물을 잔뜩 퍼서 한 입 먹어보았다. 한국에서 먹었던 쌀국수와는 차원이 다른 육중한 몸매와 국물에서 여러 가지 향신료 아니 사실 고수였겠지만, 이국적인 냄새가 잔뜩 올라오는 듯했지만 마지막 목에 넘어갈 때는 너무나도 익숙한 갈비탕 맛을 잠시나마 스쳐 지나가게 하는 깊이 있는 맛이었다. 숟가락에 고기를 얹고 숙주로 살짝 올려주고 호이신 소스와 스리라차 소스를 3:7로 섞어 놓은 나만의 비법 소스에 양파를 푹 담가 소스 가득 묻은 양파를 다시 숟가락에 올려 크게 한 입 먹었더니 새콤한 소스와 매콤 달콤함이 입을 가득 채우며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느낌이 났고 뜨거운 국물을 연거푸 들이켜니 한국에서보다 더욱 시원한 해장이 되며 몸이 뜨끈해지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쌀국수는 금방 동이 났고, 누가 봐도 냉면그릇의 2배 정도 되는 깊이와 너비를 가진 그릇인데, 거기에 있는 육수까지 모조리 다 먹어치워 버렸다.


쌀국수 가게문을 나서며 계산서를 보니 유학생 아니 여행객에게 딱 맞는 10불 언저리의 금액이 흐뭇하게 했다. 또다시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고라도 와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고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윌셔블루바드 어느 길에 있던 쌀국숫집. 그리고 LA 다운타운 가기 직전에 있던 곳이어서 금세 홈리스가 나타날 수 있어서 빠르게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그곳.


십오 년도 더 된 나의 추억 속에 살고 있는 그 쌀국숫집은 지금도 있을까.

나의 그릇은 사장님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그릇이고 손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가난한 여행객은 여행말미에 10kg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쌀국수 때문만은 아니고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은 게 화근이었겠지만, 아니 LA 어디선가 먹었던 손바닥 보다 컸던 브라우니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1센티 이상 두꺼웠던 스테이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 기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그 쌀국숫집.

그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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