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김부장이 있다면
나는 소기업에 이부장처럼
어느덧 기업에서 그냥 굴러가는 톱니바퀴처럼 그냥 한 부분만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후발주자 친구들은 밀려오고
나는 점점 좌천되어 멀리 떠내려가는 부표 같은 오늘이다.
사람이 몸이 바쁜 게 정신이 바쁜 것보다 나은 것 같다.
사람들이 AI 세상으로 바쁘게 떠들어 될 때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아날로그시계처럼 째깍째깍 다음 초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다.
회사에 틀어진 고요한 재즈의 선율은 마치 나의 눈과 같이 천천히 공간을 음미하고 있다.
퇴직연금운용사에서 메시지가 와서 확인해 보니 나의 퇴직금은 다른 어느 기업에 비해서 0이 하나 모자란듯한 금액이다.
볼품없는 금액에 예전에 집문제 때문에 이미 한 번 인출했더니 지금은 오른 물가 상승률에 비해 한없이 비루한 숫자가 적혀있다.
다시 현실을 마주하는데, 기업 리포트에 내가 주로 했던 분야의 담당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내 자리를 늘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윗사람인데, 유독 일욕심이 많이 지고부터는 나와 거리를 둔다.
한때는 그 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셀 수 있던 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늘어난 밥솥의 고무패킹처럼 오늘내일 언제 갈아 끼울지 날짜만 재고 있다.
나를 빼고 모두 하하 호호 웃는 것처럼 느껴지고 문득 외로움이 자주 찾아와서 이렇게 가끔씩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조금 늘어났다.
나는 점점 더 웃음을 잃어가고, 안 그래도 무표정한 표정이 노화가 겹쳐서 팔자주름이 겹치고 우울해지니 사람들도 나를 찾아올 때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이 달려왔다. 중간에 대학원과 잠시 여행을 위해 3개월 정도 쉰 적은 있지만, 늘 나에게 다그치며 주마가편처럼 채찍질을 모질게 해 왔던 나이다.
이제는 스스로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쉬어야 할지도 불분명해서, 이유 없는 휴가는 나에게 고민만 더욱 깊어지게 하고 왜 잘 놀지 못하는지 후회만 하는 시간이 되고야 만다.
얼마 전에 이직을 위해 찾아간 회사 면접에서는 나를 높이 평가했지만 나를 고용해 주진 않았다.
어느 회사는 나를 높이 평가했고 오라고 했지만 연봉이 크게 맞질 않았다.
나름대로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늘 당당하게 살아왔던 나인데, 어느 순간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게 나 스스로 결정한 건 아니었다. 윗사람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업무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는 미워하기보다는 등한시하기 시작했다는 게 맞겠다.
지금 이 회사에서 내 나이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게 맞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업무 하는데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는데 이게 고독함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그 고독함을 즐기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가 홀로 점심을 즐기기도 하고
회사 근처 제일 맛있는 커피집을 찾아가 라떼를 맛보며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때로는 책일 읽고 SNS를 보며 최근 트렌드를 읽으며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지도 고민해 본다.
그런데, 아무래도 번아웃이 온 것 같기도 하다.
즐거움을 찾으면 그때일 뿐, 나에게 남겨진 빈 껍데기 같은 지금 상황이 거친 파도처럼 뚫고 나갈 자신은 부족하다.
아니, 사실 뚫고 지나갈 마음도 없다. 그냥 이 시간을 견디고 있을 뿐.
이 외로움은 누구나에게나 찾아오겠지.
이 외로움을 어떻게 잘 걷어낼 수 있을까.
걷어낼 수 없다면 외로움과 같이 흘러가야겠지.
언젠가 갈 수 있다면 볼리비아 소금사막에 나의 걱정 한 움큼 내려놓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아뢰고 싶다.
다 보여내어 드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갈아 끼우고 싶다.
마흔 중반이 넘어 후반으로 익어간다.
후회만 가득 남은 요즘, 내 주위에 떨어져 있는 열매들은 상한 걸까 아니면 온전한 열매일까
오늘도 물음표를 남기고 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