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
6월 말, 장마가 시작되고 모두의 불쾌지수가 높아졌다. 한동안 잔잔하던 생활에 또다시 파동이 일기 시작했는데, 정확히는 6월 마지막주부터였다. 주말에 결혼식 참석으로 멀리 다녀오고 그다음 주 공개수업과 예비군 훈련으로 괜히 마음이 바빴다. 혼자 조용히 쉬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습기 탓에 교실 바닥이 끈적해져 실내화를 붙잡던 날이었다. 나는 예비군 훈련을 간 동안, 보결에 들어온 선생님이 조금이나마 편하게 수업할 수 있도록 색종이를 이용해 무늬 꾸미기 활동을 준비해 놓고 갔다. 돌아와 보니 그 수업 이후로 교실에서 색종이를 접는 학생들이 몇 명 눈에 띄었다. 우리 반에서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는 그 학생도 마찬가지로 색종이를 접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색종이를 접는 것은 아무 말하지 않는다. 말 할 이유도 없는 게 쉬는 시간이기도 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평소에 늘 비슷하게 말해왔던 것을 알기에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되면 색종이를 스스로 집어넣었다.
그 학생만 빼고. 하지만 나는 그 학생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 학생은 흥미가 없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 타인이 제시한 규칙에 따르는 것을 못 견뎌한다.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억지로 시킨다면 하겠지만, 억지로 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기에 딴짓을 해도 적당히 못 본 척 그냥 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국어책을 꺼내 펴놓긴 했으나 작고 거친 손에는 색종이가 있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일전에도 약속을 해 놓았다. 네가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다면, 혼자 딴짓하는 것은 선생님이 못 본 척해주겠다고 말이다.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날은 그 학생이 내가 제시한 조건을 잊은 듯했다.
신음소리 내기, 노무현 조롱하는 노래 부르기,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기, 고함치기 등의 행동을 했다. 복도로 불러내 이야기하고, 이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도했다. 교실 내 다른 좌석으로 분리했을 때도 색종이를 꺼내 접고 있었다. 경고를 받아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이전에도 마찬가지로 수업 활동에 무조건 참여시켰기에, 그 색종이를 내가 가져갔다. 가져가서는 내 책상에 툭 던져놨다.
기분이 상했는지,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교과서 낱장을 하나하나 접어 꽃 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다시 풀어 놓으라 말했고 그 학생은 하나하나 빼서 풀었다. 꽃모양 만들기와 '풀어라'는 총 3번 반복되었다.
그다음 쉬는 시간, 그 학생은 교실 한 구석으로 쿵쿵거리며 걸어갔다. 곧이어 한 여학생이 나에게 큰일났다는 얼굴로 와서는 '선생님, OOO가 선생님 신고한대요'라고 전했다.
속상한 티 내는 방법을 잘못 배웠구나 싶었다. 더구나 선생님을 뭐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말하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기도 해 복도로 불러냈다. 또다시 조그마한 어린이와 신경전이 시작됐다.
'너 선생님 신고한다고 했니' 친절하게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분명히 '아닌데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호하게 지도했다. 20분 정도의 긴 대화 끝에 결국 사과를 받고 끝냈다.
어린이들은 대개 배려심이 부족하다. 그게 타고난 기질이 나빠서 그렇다기보다, 각자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학년을 향해 갈수록 눈치라는 것이 생겨 타인과 분위기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위의 그 학생과 다른 학생이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 학생은 남 앞에 서서 웃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듯 보였다. 실제로 이 학생이 그런 모습을 가진 덕분에 나도 학생들도 모두 웃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의 특징은, 웃기려는 마음이 커서 분위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고, 잘못을 했다는 것을 선생님들의 표정과 말투로 알고는 있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이 특징들 탓에 이런 메커니즘이 생긴다.
1.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
2. 주변에 있던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는다.
3. 본인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기분이 나쁘다.
4. 선생님에게 예의 없는 말투로 대꾸한다.
5. 태도로 인해 또 혼난다.
5월 말 무렵부터 이 학생을 몇 번 지도해 보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나는 1번을 발견하고는 어떤 행동이 잘못됐는지, 이럴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예를 들어 점심 먹으러 내려가는데, 계단에서 9칸을 뛰어보겠다며 교사가 보지 않는 틈을 타 뛰어내렸다가 굴렀다. 구른 뒤에는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이때 ①다 같이 내려오는 상황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은 점, ②학교에서 위험한 행동을 한 점, ③크게 소리를 지르며 웃은 점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고, 이런 상황에서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며 선생님이 왔을 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라 알려준다.
7월의 첫 금요일, 이 학생의 반항기가 오랜만에 터졌다.
1. 1교시 쉬는 시간에 다른 학생이 피멍 들도록 깨물음.
2. 다른 학생이 발표하는 중 의자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지름.
3. 발표하러 교실 앞에 나와 칠판지우개를 발로 참.
최대한 억지로 이해를 하려 해도 이해가 어려웠다. 복도로 불러내 지도하는 내내 억울하다, 화난다는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내면소통’ 이론을 말하는 연세대 김주환 교수님의 책과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내용 중 하나는, 부정적 감정으로 인식되는 것들은 전이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말썽을 피워도 화가 나는 편은 아니다.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하는데, 그걸 나에게 이르러 오는 학생들의 부정적 기운과 그에 대해 지도할 때 나를 향하는 분노 가득한 눈빛 등은 나에게도 옮겨진다. 하루에도 십 수 번을 보다 보니 종종 그것들이 나에게 옮겨오는데, 특히나 최근에 내 체력이 바닥이었던 상황이라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이 학생은 어떻게 했냐면, 그냥 봐줬다. 그 애가 화가 나있든 뭐가 억울하든 나는 일방적으로 내 할 말만 했다.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 ~~ 한 것들은 피해 주는 것이다, 선생님이 지적했다고 해서 네 기분 나쁜 티 내지 마라. 모르니까 배우러 학교 오는 것인데 가르쳐준다고 예의 없게 말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만 더 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너를 한 번 용서해 준다.”
그 후엔 교실로 데려와 다른 학생들과 함께 교실 놀이를 시켰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졌고, 또 까불었지만 그냥 한 번 더 봐줬다.
240. 저 쇠붙이 속의 녹이 결국은 쇠붙이를 갉아먹어 버리듯
그대 자신 속의 불순물(더러움)이
결국은
그대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간다.
「법구경 제18장·더러움 」
우선은 푹 쉬는 게 먼저였다. 금요일에 가야 하는 수영 강습을 빠지고 사우나를 갔다.
사우나에 가서 한 시간을 있었다. 온탕, 냉탕, 열탕, 건식사우나, 습식사우나를 계속 돌며 물이 움직이는 것, 몸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가만히 느꼈다.
내 안에 있는 녹을 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망치는 것은 나 스스로다. 교사로 살다 보면 분명히 이런 날들은 또 찾아온다. 더 한 상황도 생겨날 것인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갉아먹을 순 없다. 학생들이 나에게 전하는 부정적인 기운을 내가 오롯이 받을 필요는 없다. 접수만 하면 되지 흡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은 학생들이 전하는 긍정적인 기운들도 많다.
1학기가 15일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날은 집착을 버리고 흐르는 대로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