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먹은 선생님

인욕, 욕된 것을 용서한다

by 석수
시원한 공기와 푸른 하늘 광릉


짧지만 옹골찼던 가운데 손가락


3월 어느 날이었다. 우리 학급에서 가장 관심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월요일 2교시부터 수업 방해를 시작했다. 그 학생은 국어시간을 가장 못견뎌하는데, 조용히 무언가를 읽는 일이 굉장히 괴로워 보였다. 책상을 연필로 내려치고, '알빠노무현키스쪽쪽'이라는 말을 하며 교과서를 구기는 모습을 보였다. 생활인권규정에 따라 수업방해 행동에 대해 지도했다. 첫 1회의 지도에도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기에 2회째 지도를 받았다. 교실 내 다른 자리로 분리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꿈쩍하지 않으며 '싫어요'만 반복했다.


이 대치의 순간에 나는 그 학생의 눈에서 정말 끝까지 자리를 옮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보였다. 보통 본인도 잘못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수긍하던데, 지금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인식이 없는 듯 했다. 작년의 경험으로 이 학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그런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이 진짜로 수업을 방해하고자 하는 경우는 잘 없다. 습관처럼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것들이다. 지금 그 학생 본인은 나름대로 억울한 것이었다.


하지만 교사로서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학생의 고집스러운 눈빛을 본 순간에 빠르게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겠다 생각했다. 여기서 질질 끌어놓고 결국 이 학생을 분리하지 못한다면, 다른 학생들로 하여금 '선생님이 쟤를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있구나'하는 인식을 심어 줄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도 해야하기에 빨리 이 지도를 마무리지어야 면학 분위기가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선생님이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1번, 자리를 옮긴다. 2번, 자리를 옮기지 않는 대신 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수업에 참여한다."


그 학생은 나를 가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 얼굴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너무 당황스러우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욕보인 적은 처음이었지만, 여기서 확실히 지도해야함을 알았다. 만약 이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거나, 다른 학생들 앞에서 지도하는데 확실히 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주변 학생들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선생님으로서의 체면을 다시 세워야 하는 계기였다. 그 짧으면서 통통한 가운데 손가락을 보자마자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복도로 나가."


사실 교실 밖으로 분리해 지도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여러 사람 앞에서 혼내는 것도 아동학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실제로 분리해서 혼낼 때 무섭게 하지 않더라도 안에서는 바깥 상황을 모른 채 기다리게 된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선생님이 무섭게 혼내는구나'하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몰랐는데 작년 학기 말 쯤,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학생의 입을 통해 들어서 알게 되었다.


복도로 나가라는 지시에는 그 학생이 단번에 밖으로 나갔다. 본인도 잘못한 것을 아는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학생을 응시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얘기한 내용을 들어보니, 연필을 쥐고 있다가 2번을 손가락으로 보이려 했는데 가운데 손가락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나는 화내지 않았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해주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선생님에게 예의를 지키지 못한 상황이고 큰 잘못임도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그 학생은 자꾸 다른 말만 하고 중요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려주었다. 정중하게 사과하는 방법을 말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 학생은 처음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브라만이여, 혹 그대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베풀었는데 손님들이 음식을 받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인가?"
"그야 당연히 내 것이지요."
"그대가 내게 욕설을 퍼붓고 난폭하게 화를 내고 있는데, 내가 그대의 욕과 화를 받지 않는다면 그대의 욕설은 바로 그대에게 돌아간다."

《법구경 마음공부》125


인욕(忍辱)하는 자의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


선생님이란 무엇일까, 먼저 선(先)에 날 생(生)자를 쓰는 이 낱말을 그대로 풀면 먼저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학생들 앞에 선생님으로 서면서 나는 무엇을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보다 고작 열댓살 쯤 많은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어울려 지내는 방법이었다. 나에게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 초중고, 대학, 군대를 거치며 스스로 알게 된 방법들 말이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올해 만난 학생 중 몇 명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아래 두 가지가 있다.


1. "죄송합니다."

나는 어릴 적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잘못을 저질러 크게 혼나본 기억이 딱히 없다. 그리고 혼나더라도 대개는 '네'라는 대답만 하다가 끝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못했을 때 우선 무엇부터 해야하는 지 몰랐다. 그런데 그것을 군대에 가서 크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군대를 스물 넷에 갔다. 친구들은 이미 전역을 한 상태여서 내게 군생활 요령을 여럿 알려주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말해준 것이 있다. 군대가면 무조건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 때 변명보다 빠른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죄송하다는 말이란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그 말에 뼈가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일병 1호봉 시절,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말직 근무를 서는 직순이어서 선임이 분명 나를 깨우고 갔는데, 내가 다시 잠들어버린 것이다. 군대에서는 이것을 '꼬라박았다', 또는 '꼴박쳤다'고 표현했다. 첫 꼴박 이후, 상황실에서 개같이 털렸다. 다음날에는 북카페에 불려갔는데, 내 윗 기수 선임 모두가 모여있었다. 상황실에서 혼났던 것은 잠들었던 일 때문이었고, 북카페에 불려갔던 것은 내가 상황실에서 혼날 때 변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잘못하면 우선 죄송하다는 말이 나와야 함을 알았다. 죄송하다는 말은 구태여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이 실수든 아니든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2. 무관심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을 계속해서 들춰내는 경우가 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적하는 사람과 지적당하는 사람은 결국 다툰다. 그래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유독 더 지적하고 싶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더 밉고, 꼴보기 싫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적하면 다툰다는 것을 안 뒤에는 다투기는 싫지만 욕은 하고 싶어 부끄럽게도 뒤에서 남을 욕하기도 했다.

사람에게 악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악행의 과보는 자신에게 돌아간다.
마치 바람을 거슬러 먼지가 날아가듯이.

《악행 이야기》125


하지만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왕왕 있다. 둘이 싫어하는 사이인데, 끊임없이 서로 관찰하고 있다가 지적한다. 그리곤 다툰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 사람의 말이 듣기 싫다면, 귀를 닫으면 된다. 행동이 보기 싫다면 눈을 감으면 된다. 엮이고 싶지 않다면 말을 아끼면 된다. 학생들에게 싫어하지 않는 사람과도 다투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적당히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방법으로 절대 학생 간에 지적하지 않도록 지도하였다.



학생들에게 위 두 가지를 알려주는 것은 어렵다. 나도 누군가 어렸을 적에 알려준 적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도 굳이 직접 겪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위 두 가지를 알려주고자 따로 불렀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예의를 지킨다. 잘못한 경우에 내가 불러서 이야기하면 반항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 그 학생은 나에게 불손한 경우가 많았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벽에 몸을 비비면서 '뉘예'하는 식의 대답, '저만 그런거 아닌데요', '아닌데', 한숨을 내쉬는 등의 모습이 그랬다. 반복해서 말해줘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학생이 어느 순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음을 발견했다. 내 생각에 손가락 욕 사건 뒤부터였다. 수업시간에 여전히 시끄럽게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면 서로 고개를 끄덕 한다. 그리고는 잘못을 안다는 멋쩍은 표정을 짓고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친구들에게 피해주는 행동을 하지만, 불러낸 뒤에 선생님이 왜 부른 것 같냐고 물으면 스스로 답한다. '몰라요', '나만 그런 거 아닌데'로 일관하지 않았다.


법구경을 통해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았다. 그 학생은 나에게 손가락 욕을 한 뒤 분명 선생님이 화를 내거나 크게 혼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화도 내지 않았고 크게 혼내지도 않았다. 선생님으로서 인욕(忍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욕하는 자의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


내가 욕보임마저 참아주었기에 나의 진심이 닿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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