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관 앰프

by 설 야


보통 음향기기에 관심이 있고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왜곡이나 음질 저하를 최대한 줄이고 싶어하실 거에요. 왜냐하면 좀 더 선명한 음질, 원작자의 의도를 더 잘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 많으실 테니까요. 그 디테일, 숨소리와 악기를 치면서 나는 그 미세한 잡음들까지 같이 들릴 때면 진짜로 그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실제로 저도 그런 기분을 좋아해요.


좋아하던 노래라도 그냥 핸드폰 스피커로 듣는 것과 제대로 좋은 장비를 써서, 좋은 음원으로 듣는 것과는 그 생동감이 차원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는 동시에 그 두 가지를 피하지 못하는 진공관 앰프를 정말 좋아한답니다.... 사실 요즘에는 오히려 그 왜곡을 찾아서 진공관 앰프를 듣고는 하니까요.


진공관 앰프는 뭐랄까... 좀 더 살아있는 느낌을 주거든요. 물론 원래 소리 그대로 듣는 것도 좋지만 진공관 앰프로 들을 때의 그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많은 분들이 진공관 앰프를 좋아하시는 것일지두요? ㅎㅎ 확실히 음질이 엄청 좋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의 절절함을 좀 더 잘 살려주는 것 같아요. 192k로 들을 때보다 진공관 앰프에 연결해서 aac-44.1k로 들을 때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많은 분들이 좀 더 따뜻하다는 표현을 쓰시던데 제 기준에서는 따뜻하다기보다는 젖어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좀 더 축축하고... 좀 더 가슴에 스며드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 왜곡이 때론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 같아요. 마치 필름 카메라로만 담을 수 있는 감성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때로는 그래요, 바보 같더라도 우리의 삶에도 좀 더 따뜻한 왜곡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세상이 분명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있는 그대로보다 더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이 때로는 아픈 삶에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삶이 힘든 건 그걸 너무 똑바로 바라보려고 해서가 아닐까요? 분명 있는 그대로만 본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도 조금만 왜곡해준다면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요... 사람들이 찾는 그 의미 말이에요.


지금은 정보들이 넘쳐나죠? ㅎㅎ 과거였다면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었던 일들도 거의 다 이름 붙여져 있고, 그걸 알게 되면 더 이상 이 세상을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곳으로 바라볼 수 없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지금이 더 힘든 게 아닐까 싶네요.


전 개인적으로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감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그렇고, 별 거 아니고 그렇게 변해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래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예전부터 감성이 너무 넘쳐서 탈일 때도 있었죠. 하지만 동시에 그때는 사소한 일에도 정말 가슴 벅차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때론 사람들의 소리들을 들을 때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동네 뒷산 그 정상 가까운 곳까지 가서 멍하니 있어보기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보기도 하고 좀 더 그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한 그런 체험도 해보고...


그것만으로도 좀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들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 제 세상은 잿빛에 더 가깝지만요.


사실 이런 일들은 별 거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죠. 그런데 어쩌면 그런 의미들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는 것일지도 몰라요. 적어도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길 테니까요.


어쩌면 그런 왜곡이 우리의 삶에서는 꼭 필요한 것일런지도요... 삶은 너무 힘드니까요. 무언가를 사거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하는 일로 그 고통을 메우기에는 우리가 가진 건 너무 적은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노래를 듣고, 시를 읽고, 또 책을 읽으며 그 의미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아까 제 세상이 잿빛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하늘에도 제가 좋아하는 눈은 내리겠죠? 그 눈은 저에게는 죽음조차 애처롭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선율이기도 할 거에요. 그렇다면 제 잿빛인 삶도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오늘은 좀 더 세상을 왜곡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냥 조금만... 아주 조금만 우리가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말이에요. 좀 더 따뜻하게, 진공관 앰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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