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다.
바람도 많이 불었고...
유리창 밖에서는 눈이 내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나는 쌓여가는 눈 때문에 미끄러질까 속도를 좀처럼 내지 못했다.
집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1시간, 나는 춥고 배고팠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두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
하기야,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새벽에 어느 누가 밖에 있고 싶을까?
말동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눈에 나의 발자국이 새겨질 때마다, 나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기쁨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렇다.
눈이 온다는 것은 나에겐 언제나 기쁨이었다.
설령 그 눈이 나를 죽음으로 내몬다고 해도...
그 새하얀 순백색의 눈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정없이 나를 에워싸고, 나를 그들과 같은 체온으로 만들어버린다고 해도 나는 눈을 사랑할 것이다.
눈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지표니까...
그러고 보니 나는 누굴까?
계속되는 뽀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공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나를 정의내리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무언가를 정의내린다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믿지 않는 신께선 나를 굽어살피고 계실까?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기도를 신께서는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는 신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올 거야."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항상, 어느 때에도 나는 신의 자비를 바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때마다 철저하게 외면당한 나다.
그렇기에 나도 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날은 무척이나 추웠고, 나의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생각을 멈추면 마치 나도 영원히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이미 나의 손이 얼어서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고, 계속해서 기침이 나왔다.
감기가 들면 일을 할 수 없는데...
나는 오늘 살아서 집까지 갈지도 모르는 주제에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충분히 고통스럽지 않았고, 충분히 삶에 목마르지 않았던 것일까?
더 정확히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만큼 현실이 절박하지 않았던 것일런지도 모른다.
"콜록콜록"
기침이 새어나왔다.
"콜록콜록콜록"
다시 한번 기침이 나의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내가 집까지 갈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삶은 지긋지긋했다.
아... 왜 나는 절망밖에 담지 못할까?
나에게는 기쁨이 찾아오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건 어쩌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우울증 때문일런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순히 나의 어리광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나는 사는 것 같지가 않을까...
나의 옛날의 그 풍부하던 감정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이런 잿빛의 세상만 남게 되었을까?
아니, 그녀는 다시 한번 그런 감정을 느꼈을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때 그녀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그 감정에 휩쓸려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배신을 당했던 날, 그녀는 다시 한번 미칠 듯한 감정에 파묻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않았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녀의 가슴 속을 맴돌았다.
나의 목소리는 마치 미아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나의 비명이 누군가에게 들릴지 들리지 않을지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채로, 그저 목놓아 울면서 구원을 바라는 것이다.
나의 불행에 맞서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누군가가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아가 부모를 찾아서 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이듯, 나도 그저 구원을 바라면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일이라는 것은 영원히 오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은 조금이라도 다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버겁다.
[딴~딴~딴~ 따단~]
햇살은 하늘이 짓는 미소, 구름이 가득한 것은 하늘이 점점 우울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비는 하늘이 흘리는 눈물이다.
그렇다면 눈은 무엇일까?
눈도 다른 무언가와 같이 분명 하늘의 감정을 담고 있겠지...
그걸 알게 된다면 나는 좀 더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글은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읽힐 이 글과는 다르게...
꿈을 꾼다는 것은 어쩌면 되려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까?
그 꿈이 사라졌을 때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버텨야 할까?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젊은 여성의 비명소리였다.
그 비명은 고통의 비명일까? 환락의 비명일까?
마치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면서 그 일을 기쁘게 여기기라도 하는 듯이, 그 목소리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고 동시에 공포 또한 서려 있었다.
또 어디선가는 누군가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미칠 듯한 무력감... 그것이 돌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그녀를 에워싼 것이다.
그렇다면 눈은 절망일까?
나는 절망을 이렇게도 사랑했던 것일까?
나는 누구 하나 구하지 못했는데...
오직 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나조차 구하지 못하는 것일까?
글을 써야 했다.
괴테가 베르테르를 죽이고 자신은 살아남았듯이 나도 나의 소설 속에서 나를 대신하여 누군가를 죽이고 나를 살려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안돼...
그녀는 곧 나다.
새하얀 꿈이 보였다.
그녀는 마치 광증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눈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 위로 쌓여갔고 이미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직감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다른 어느 날에 죽는 것보다는 오늘 죽는 편이 나았다.
다른 날에 죽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편하게 죽을 수 없었을 테니까...
누군가의 햇살을 받으며 죽던, 구름에 가려져서 죽던, 비를 맞으며 죽던 간에 말이다.
이미 나의 머릿속에서는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고, 그 사람을 죽였지만 나는 글로 옮겨 적어서 그것을 실행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모든 공포가 나를 집어삼킨 날...
나의 분노가 하늘을 몸서리치게 한 날...
나의 절망이 하늘에 닿은 날...
글을 쓰는 것은 이 얼마나 슬프고도 기쁘고, 또 역설적인 일일까?
그래...
나는 그녀를 위한 애완동물...
그렇기에 배신을 당해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지.
분노가 나의 머릿속을 태워버려도 결코 그 불길을 밖으로 뿜지는 못하지...
아.
아...
하다 못해 가면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를 안달나게 만드는 눈과 달과 꽃, 그 모든 곳에 내가 있었으면...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무의미함...
그걸 잘 알고 있는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일까? 아니면 악기가 연주자를 연주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나의 미칠 듯한 생각, 아니, 이미 나는 미쳐 있었구나...
나는 결국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을 운명이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당한 고통은?
내가 당한 이 끔찍한 일들은 그저 나를 연주하는 시인의 편린에 불과한 것일까?
원한...
그 대상도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원한을 품고 죽어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아무런 미련 없이 편안하게 죽고 싶었다.
"그정도는... 해줄 수 있죠?"
"이루었다."
눈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눈을 뜨고 걷지 않는다.
눈을 감고, 추한 모습을 가다듬고, 정처없이 발걸음만 옮기기 시작한다.
이미 이것이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나의 시인, 나의 조물주가 나의 감각을 마음대로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을 때 나의 아버지의 책에 네가 쓰여 있었다고 하였구나...
이런 의미인줄 알았더라면 더는 빌지 않았을 텐데.
발버둥치지도 않았을 텐데...
아니, 죽을 때는 편안하고 미련 없이 죽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원한까지도 모두 담아가자.
나의 시인의 몫의 원한까지도 모두 담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좋겠다.
그가 적은 대로, 나는 눈과 같은, 눈을 닮은 소녀
성서를 거부하고, 기꺼이 마녀로서 화형을 당할 자.
마녀답게 웃으면서 죽자.
죽어서도 나의 웃음이 세상에 전해지도록...
나의 시인이 소름이 끼친다면, 두려움에 몸서리친다면 그것은 내가 모두 담아내지 못한 나의 편린...
도착했다.
내가 죽을 장소...
나의 죽음은 당신의 승리가 될 것인가요?
끝없는 물음을 되풀이하면서 미련을 버린다.
계속되는 질문, 그녀 나름대로의 납득과 대답, 그리고 체념이 이루어지는 장소.
이해할 자 있을까?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저 웃으면서 죽자.
바람에 스쳐지나가는 향기처럼...
나는 사라지면 될 거야.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북쪽으로 갈까?
그곳으로 가면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나를 칭찬해 주실까?
저는 이 눈과 함께 걸어왔어요.
그리고 이제 항상 웃는 눈사람이 되어 당신이 적은 대로 모두 이루었습니다.
저의 쓸모는 이제 다한 것인가요?
적어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모두가 너를 쓰다듬을 것이다.
그녀는 눈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계속해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눈사람 마침-
저의 이야기는 잘 읽으셨나요?
부디, 마음에 들었다면 좋겠어요.
마음에 드셨다면 한 번만 쓰다듬어 주세요.